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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Feb 20. 2023

몽글몽글 미역국

엄마가 해 준 미역국

겨울이 지나갈법한데 다시 다시 추워졌다. 아침에 목도리를 두르고 다시 일터로 나오는데 갑자기 며칠 전부터 미역국이 먹고 싶었다. 생각을 해보니 안 먹은 지 꽤 되었다.

미역국은 나에게 애증의 음식이다.


가난했던 우리 집에서 많이 먹은 음식 세 가지는 첫 번째 미역국 두 번째 김치볶음밥 세 번째 라면이었다.

엄마는 늘 공무원 월급에서 한계가 올 때즈음에는 이 세 가지 음식 중 하나를 하셨다.

내가 이를 알아챈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그날도 날이 이렇게 추웠다. 하교를 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들기름 냄새가 집을 덮쳤다.

엄마는 미역을 준비해서 들기름에 볶고 계셨고 난 또 미역국이네, 하며 별 기대 없이 숙제를 하며 아빠를 기다렸다.

초인종처럼 울리는 아빠의 자전거 소리에 맞춰서 우리는 미역국을 먹었고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아빠의 칭찬에 엄마는 무슨 소리냐며 없어서 먹는 게 미역국이라고 들통 한가득 한 것을 보여주며 앞으로 우리는 그것을 다 먹어치워야 한다는 엄마의 말없는 눈빛이 무서웠다.

그렇게 매일 아침저녁으로 무슨 보약도 아니고 그렇게 먹고서 난 질리겠다,라고 하는 순간 어렵게 먹고 돌아서면 귀신같이 그 들통은 사라지고 엄마는 다시 다음 음식인 라면으로 깔끔하게 입안을 정리해 주셨다.


이렇게 우리 집의 미역국은 일종의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음식이었다.

내가 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미역국을 먹을 때는 생일이 아니라 이렇게 춥고 입맛이 없을 때이다.

엄마는 늘 미역국에 들기름에 볶아서 없는 것 있는 것 다 넣어서 해주시는데 그 몽글몽글한 미역이 쑥 하고 빠져나갈 때 따뜻한 흰쌀밥에 한 입하면 그것만큼 약이 되는 게 없다. 그래서 가끔 죽집에 가면 난 일부러 미역국을 시켜서 먹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이유는 아무래도 엄마의 레시피가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한다.


어제 엄마가 오셨다. 아주 잠깐 집에 들르셨는데 귀신같이 작은 들통에 미역국을 해 놓고 가셨다. 냉장고는 열어봐야 알 것 같다시며 잔소리를 급 줄이시더니 시장으로 내빼시고는 미역을 어디서 한가득 사 오셔서 누가 봐도 미역국을 끓이셨다. 요즘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그 물가에 소고기까지 사 오셔서 미역국을 한참 끓이시다가 나에게 갑자기 "약처럼 먹어라" 하시며 그렇게 쏜살같이 나가셨다.


오늘 아침 한 그릇을 먹고 나왔다. 그래서 그런가, 정말 보약을 먹은 기분이었다.

가끔 이럴 때 엄마와 같이 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을 알면서 내적갈등을 느낄 때마다 난 참 많은걸 스스로 힘들게 한다는 생각에 신발을 신고 나섰다.


몽글몽글한 미역국 한 사발을 마시고 나온 난 아침에 늘 마시는 커피 대신 녹차를 마시고는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인이 추천해 준 책을 읽으며 다독을 결심하며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삶도 미역국처럼 몽글몽글해서 그냥 쓱 ~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어제 나의 지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보다 단단한 것이 잇몸이며 대나무 보다 단단한 것이 잡초이니 너무 힘주고 살지 말어라> 그렇다. 나의 인생 스승께서 보내셨다.

출근길 아침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귀신같은 사람, 미역국을 먹은 걸 알고서 이렇게 보내셨나 싶어서, 아니라면 텔레파시를 보내셨나 싶어서 괜한 미소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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