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접 May 16. 2023

인생은 아마추어도 프로도 없다, 그걸 야구에서 본다.

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다. 매일 시계를 보면서 체크를 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 지으면 내가 하는 유일한 재미는 출퇴근 시간에 딱 두 가지 책을 보거나 최강야구를 보는 일이다. 야구팬으로 가을야구에는 꼭 직관을 하는 편으로 매번 갈 수는 없으나 한 번은 꼭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광 클릭을 해서 간다. 어떤 팀에 팬인 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야구를 좋아한다.


어릴 때 엄마가 야구를 즐겨 보셨다. 게임 룰도 모르고 그냥 방망이와 공 하나 있으면 되는 경기를 뭐 그리 재미있다고 보시는지 텔레비전이 생기고 보는 고등학교 야구는 그야말로 꿀잼이었다. 아 우리 집은 내가 태어나서 고등학교 2학년 때 텔레비전이 있었다. 그전에는 라디오가 사회를 연결해 주는 서비스망이었다. 아침밥 먹으면서 듣고 저녁에 듣고 뭐 그러다 보니 남들은 다 보는 드라마 만화 이런 이야기가 친구들 사회에서 나오면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귀 닫고 살다 보니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그리 불편한 건 없이 살았다.


그러다 어느 여름 집에 갔더니 큰 텔레비전을 샀다. 이유는 아빠가 그때 주식을 하셨는데 나스닥부터 24시간 송출되는 텔레비전이 필요해서 사셨단다. 그때부터 우리 집은 각자 영역에서 좋아하는 드라마 스포츠 만화를 즐겨가며 보게 된다. 엄마는 야구를 참 좋아하셨다. 나도 따라 보면서 물어가면서 경기를 봤는데 그때는 포수와 투수와의 거리가 그렇게 거리가 있는지 몰랐다. 실제로 보니 엄청 난 거리였고 흔히 말하는 슬라이더, 직구, 등 여러 가지 기술을 눈앞에서 보니 이건 뭐 황홀경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돈을 벌면서 야구 경기를 직관하게 되었다.

그럼 최강야구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프로그램은 지인이 내게 추천을 해주었다.

내가 야구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 자신도 좋아한다며 요즘 최강야구라는 프로가 있으니 보라고 추천을 해주었는데 텔레비전이 없으니 볼 수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래도 추천이니 어떻게든 뚫어서 보라는 거다.


이런 어렵게 뚫어서 봤는데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투수와 타자들이 뭉친 프로였다. 이제는 은퇴를 하고 다시 야구라는 이름으로 다시 모여 그때는 그때고 지금 다시 프로의 모습으로 선 이야기를 닮은 뭉클한 이야기였다.


처음 이야기는 이승엽 감독 지금 김성근 감독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 김성근 감독은 좋아하는 감독이다. 한동안 논란이 많았다. 선수를 혹사한다부터 여러 가지 구설이 있긴 했었지만 김성근 감독이 말하는 아주 객관적이고 냉철한 평가는 솔직하다 못해 돌직구이다. 그래서 난 보면서 그 이야기가 나에게 꽂히는 것 같아서 매우 좋다.


김성근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돈을 받으면 프로이다- 역시 김성근 감독이 할 수 있는 발언이다. 프로와 아마추어 차이는 별로 없겠지만 더 중요한 이야기는 그 뒤에 있었다. 한 명이 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팀만 아니라 팀을 위해 일하는 스텝까지 언급을 하며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를 더 설명했다.


그들에게 야구는 인생에 전부였고 화려했던 시절과 은퇴를 하면서 수많은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가끔 인생이 야구와 다르지 않다고 하셨다. 그 이유에 대해서 꾸준히 물어보지 않았지만 한 줄로 정리하자면 -끝까지 알 수 없으니까 그리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그리고 한 번에 안 좋은 일이 연속으로 일어날 수 있으니까 대충 이 세 가지를 언급하셨는데 야구에서는 흔히들 그 분위기를 얻어가지 못하면 다음 경기에서는 실점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야구를 평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요즘 야구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다. 이들에게 야구는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면서 난 나에게 나를 대표하는 게 뭐가 있을까를 생각한다.

요즘 박사논문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치기 어린 시절에는 대학에 들어가서 동아시아 문학을 관통하겠다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치기 어린 생각이었고 대학원을 들어가서도 달라지지 않자 교수님께서는 내게 늘 -힘을 빼자-라고 하셨다.


나를 정말 잘 아는 지인은 -너 요즘 좋지, 공부하니까?-라고 말한다. 정말 아는 지인들은 내가 문학으로 먹고살고 평생 죽을 때까지 공부만 하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것도 치기 어린 시절에 이야기했었다. 수학과목은 죽어라 해도 오르지 않았지만 문학은 해도 해도 갈증이 나서 더 하고 싶었고 글 잘 쓰는 작가들의 뇌는 어떤 뇌인지 궁금해서 파고 싶었다. 그런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대학을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그 흔하다는 미팅도 소개팅도 나이트도 못 가봤지만 후회는 없다.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면 이런 게 대학원 생활이라면 안 했을 거라는 지인은 고개를 흔들지만 난 정말 솔직히 좋다.


난 웃으며 공부는 짝사랑을 하면 언젠가는 해결이 되니까,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가장 힘든 게 연애인데 사람을 이해하는 것보다 문학을 이해하는 게 더 빠르고 쉽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공부하면서 그 말은 다시 목구멍으로 넘기고 살고 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라 나보다 더 젊은 친구 들과 공부를 하면서 친구들은 내게 -나이가 들면 편해지냐라는 말을 많이 물어본다- 그럼 난 -인생에서는 아마추어도 프로도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프로도 아마추어도 어느 순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야구와 비슷한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시간을 내어서 잡담을 했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라는 생각에 건방진 것 같다고 손사래를 치니 후배들은 아니라고 했지만 난 아직 인생에 있어서 아마추어라고 말했다.


언제 인생을 사는데 프로가 될까? 늘 생각하고 일기를 쓰지만 답이 없다.

누가 알려준다면 참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자전거로 20년 밥벌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