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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un 13. 2023

바나나 우유, 넌 내게 추억을 줬어.

집에 들어가는 길, 헛헛함에 편의점에 들렀다. 편의점 모든 음식과 음료수 변경 시간대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 사이로 고민을 한참 하는데 눈에 들어오는 게 없어서 역시 물이 맛있지, 하고 물을 잡으려고 할 때 바나나 우유가 보였다. 얼마 만에 보는 이 통실한 바나나 우유였던가. 순간 반가운 마음에 냉큼 사서 편의점 앞 구석진 자리에서 하늘을 보며 쪽쪽 마셨다.


하긴 편의점에서 이렇게 사서 마시니 내가 부자가 된 느낌이라면 다들 웃겠지.

어렸을 때 내게 바나나 우유는 사치품이었다.

우유 하면 학교에서 늘 주는 흰 우유가 생각이 난다. 늘 받아서 그 고마움을 몰랐기에 때로는 먹기 싫어서 가방에 방치했다가 터져서 책과 한 몸이 되어서 결국은 엄마에게 엄청 혼나서 그 책을 말려서 한 장 한 장 때어가며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후회와 반성을 할 때 즈음 흰 우유가 먹기 싫을 때는 그냥 집에 가져와서 냉장고에 넣는 게 정답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 때는 우유를 받아 와서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담당자를 정해서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역할 분담을 했는데 정말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이 초콜릿우유나 딸기 우유가 3-4개 정도 있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서로 가지려고 했기에 그때만큼은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먹고 싶은 사람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가위 바위 보, 를 해서 정정 당당하게 승부를 걸어서 했는데 초콜릿우유를 좋아하는 나도 역시 손 꽝이지만 열심히 해서 딱 한 번 운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그날은 정말 기분이 좋아서 야금야금 마셨는데 학교는 왜 그렇게 흰 우유만 주는지 질렸다.


엄마는 우유를 먹어야 키가 큰다며 절대로 빠트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지만 여름, 특히 여름은 정말 싫었다. 그때 생각에 여름에는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 


그래, 바나나 우유 이건 목욕탕에 가면 가끔 엄마가 사주셨다. 썰은 이렇다. 두 딸을 목욕탕 앞으로 전진 배치 시키고 물에서 때가 불으면 목욕탕 값을 다 하겠다는 엄마의 엄청난 파워는 우리 두 딸을 다 밀고서 자신을 또 미셨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엄마는 월드 파워 슈퍼우먼이다. 


 여동생은 탕에서 수영을 하고 난 첫째라 거의 끌려가는 수순에서 아파도 소리 한 번 못 내고 구석구석 엄마가 밀어주면 참고서 땀방울과 사투하는 엄마를 보면서 '그래 엄마도 힘드실 거야' 하면서 순순히 엄마 루틴을 따라 하며 장작 두 시간을 밀고 나면 엄마도 사람인지라 매우 지쳐하셨다. 냉수 마시듯이 시원한 냉탕에서 한 바퀴 샤워를 하시고 다음 여동생을 또 그렇게 페스티벌로 하시면 우리에게 늘 하시는 말씀이 있으셨다. "엄마가 아주머니에게 이야기해 놨어. 가서 초코우유 먹고 엄마 기다려" 그렇다. 엄마는 늘 마지막에 샴푸와 기타 등등 시간이 걸렸으니 우리는 밖으로 나와 옷을 입고 아주머니에게 "저기요 저희 엄마가 말씀하신 거..." 하면 작은 동굴 같은 곳에서 아주머니가 "그래 여기 있다" 하시면서 초콜릿우유를 주셨다. 동생과 난 아주머니들 이야기를 들으며 웃기도 했고 때로는 늦게 나오는 엄마 때문에 지루하기도 했다.


말없는 엄마도 때로는 찬스를 주실 때가 있으셨다. 바로 등이다. 등은 자기가 밀수 없으니 우리 두 딸 몫이다. 그럼 너나 할 것 없이 엄마 등과 엄마 손이 미치지 못한 곳을 밀었는데, 엄마 내심 기대와 흐뭇함을 가지신 듯하다. 그날은 두 딸이 손에 때밀이를 장착하고 열심히 밀었다. 내가 처음 밀어서 초석을 닦으면 여동생이 마무리 거의 이렇게 엄마는 호강이라며 좋아하셨는데 엄마는 이럴 때 "오늘은 바나나 우유 먹어라" 하시며 특별한 날에만 먹는다는 바나나 우유를 사주셨다.


그럼 그날도 다르지 않게 쥐구멍에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저희.." 하면 "응, 오늘은 바나나 우유" 하시면서 주셨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정말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동생과 나 엄마 이렇게 목욕탕 문을 열고 나오면서 엄마에게 감사하다고 말을 했고 나는 엄마에게 어른이 되면 바나나 우유를 마음껏 사 먹을 정도로 돈을 벌 생각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는 그렇게 될 거라고 흐뭇하게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이 있다. 문제는 엄마는 음료를 드시지 않으셨다. 어린 나이라 그걸 지나쳤다.


그래서 우리 자매는 늘 반반 먹고 엄마에게 양보를 하면 그걸 모르지 않으신 엄마는 "엄마에게 뭐 하러.." 하시면서 한 모금 드시고 다시 주셨다. 


며칠 전 엄마와 목욕탕에 갔다가 집으로 가야겠다고 옷을 다 입고 뭐가 있나 하고 봤더니 다 자판기라 바나나 우유가 없었다. 예전 목욕탕 감성은 없었다. 거의 찜질방으로 돌아가니 어쩔 수 없는 거다 하고 나왔다.

엄마와 난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그 옛날을 기억했다. 그리고 약간 더운 날씨라 여름을 대비해야 한다고 골짜기에 들어간 부모님 시골길이 그립다고 말을 했더니 놀러 오라고 그렇게 엄마는 버스를 타시고 가셨다. 


바나나 우유, 내게는 그냥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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