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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ug 01. 2023

약사님이 샤넬 종이백을 건네주시며 "다 지나갑니다"

그렇다, 약사님이 내 약을 샤넬 종이백에 넣어주셨다.

이야기 시작은 이렇다. 약을 많이 먹는다. 안 그래도 많이 먹는데 약 3가지 종류 약을 먹는데 여기저기서 약을 처방받아 너무 힘들어서 한 곳에 몰아서 먹어도 될까 해서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한 곳 빼고는 약국에 약이 있다면 가능하니 한 번 전화를 해서 물어보겠다고 하셔서 집 근처 약국에서 처방을 받기로 했다.


그날은 정말 기분이 우울했다. 평소 불면증이 심해서 정신과 약과 갑상선약, 두 가지 약을 처방받아야 했다. 문제는 이 약알 개수가 정신과는 10알이 넘고 갑상선은 한 달 치라 기본이 30알이 넘어서 한숨이 나왔다. 약이 늘었다. 이렇게 사느니 , '그냥 다 접고 살아볼까' 하면서 자조적인 말을 하며 약국을 갔다.


평소 자주 가는 약국이었다. 씩씩한 약국 약사님은 다르지 않게 인사를 하셨다.

너무 더운 날이라며 당신이 드시던 음료를 권하셨다. 괜찮다고 했지만 더울 때는 서로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며 남은 게 있다며 갑자기 어디로 가시더니 수박주스를 주셨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수박주스를 받고 처방전을 전달했다.


명랑하신 약사님은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지시더니 , "아니 약을 이렇게 많이 드셨어요?"

난 "네"

약사님은 "아 그래서 얼굴이 많이 어두셨나?"

난 "그랬나요?"

약사님은 "아니 어떨 땐 괜찮은데 어떨 땐 어둡고 그래서 난 가끔 그랬지. 사람이 늘 좋을 수 없으니, 오늘은 기분이 별로인가 보다...ㅋㅋ"

난 " 약이 저를 슬프게 하네요"

약사님은 " 그렇네요... 약알이..."


갑자기 한숨을 쉬시더니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명랑하신 약사님은 오늘 이 약은 가방에 넣어 가실 거죠?

난 "네"

갑자기 또 사라지셨다. 야금야금 수박주스를 마시며 기다렸다.

그리고 나타나신 약사님은 "아이고 이 종이백, 이거 샤넬 종이백이 찌그러져 있었네.ㅋㅋ, 이게 친구가 그러니까 한 달 전에 저에게 선물로 준 걸 제가 박스만 싹 빼서 갔거든요, 그런데 이때 쓰려고 여기에 뒀나 보네. 사람도 사물도 다 쓸모가 있다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갑자기 미소가 나왔다.

약사님은 연이어 말씀하셨다.

"음.. 약은 많은데 , 바꿔 생각해 보죠. 약이 없어서 못 고친다. 그럼 더 슬퍼요. 

인생 뭐  있어요. 이렇게 약 먹고 버티고 또 고치고 , 제가 보기에는 고칠 수 있어요. 제가 이 가방에 넣어 드릴게요. 평소 명품 이런 거 안 좋아하시죠? 호호호

난 " 네, 뭐 그리고 제가 돈도 없고"

약사님은 " 아이고 겸손하시기는"


난 "저 주셔도 되는 건가요? 친구분에게 받으신 건데"

약사님은 "아니 친구가 준 선물은 그대로 있어요, 그리고 친구가 준 거니 더 의미 있게 쓰는 거죠"

난 "뜻이 좋은데요"

약사님은 " 저도 이렇게 봐도 많이 아파요. 인생 별 것 없어요. 밥 먹고 어지간하면 이렇구나 하고 넘기고 아프면 약 먹고 시간 나면 책 보고 아니면 짤보고 저도 약국 하면서 수많은 빌런을 만나요. 그래서 하루에도 열두 번은 이 약국 닫아? 하는데 참아요. 그러니까 스트레스가 엄청 쌓이는데 그런데 어째 내가 차린 건데, 내가 차린 약국 안 그래요? 호호"


난 미소를 보였다. 약사님은 " 다 지나갑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약국을 나왔다.

약을 가득 받은 가방을 보고서 헛웃음이 나왔다.


생각지도 못 한 샤넬 종이백에 약을 받아보기에는 처음이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약사님에게는 정말 감사했다. 엄마는 생각이 태도를 바꾼다고 하셨다. 선입견이 병을 고칠 수 없으니 적극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고치라고 몇번이나 강조를 하셨다. 다시 나오는 한숨을 접고 하루를 허투로 쓸 수 없다는 생각에 그날에 일기에는 성실이라는 글자를 더 많이 썼던 것 같다.

법정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았을때는 살았음에 최선을 다하고 죽을때는 죽음에 최선을 다하라, 물론 이건 정말 힘들다. 늘 이 글귀를 생각한다. 삶은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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