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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ug 07. 2023

         수정과

편의점에서 수정과를 사 마시다가 엄마가 아시고 직접 만들어 주셨다. 사실 수정과에 대해서는 안 좋은 추억이 있다. 어릴 때 엄마는 여름이면 마시라고 수정과를 만드셨는데 어린이 입맛에 계피향이 싫어서였는지 딱히 맛도 없었고 쓰다는 맛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다들 잣을 동동 띄운 이 수정과를 왜 그리 찾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없어서 못 먹는다는 표현을 하셨고 집에 귀한 손님이나 동네 이웃이 오시면 "수정과 한 잔 하실래요?" 하시며 그렇게 한 잔 한 잔 내셨는데 음식 솜씨 좋은 엄마 덕분에 동네에서는 "우리 수정과 부탁해도 될까, 내가 하면 그 맛이 안 나서"라고 은근히 부탁하는 집이 늘어서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아주 저렴한 돈을 받고서 수정과를 동네에서 팔았다. 


뜨거운 더위에 그렇게까지 하는 게 싫어서 "엄마 그냥 하지 마"라고 하면 "너 좋아하는 그 콜라 보다 이게 훨씬 건강에도 좋고 치아도 덜 상해" 하시며 땀에 수고로움을 넣어서 수정과를 만들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여름을 이겼다. 


내가 정확하게 수정과를 좋아하게 된 건 대학교 때였다. 그날은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편의점에 가서 빵과 음료를 사러 갔다. 친구는 간단한 빵과 음료를 크림빵에 수정과를 샀다. 다소 충격이라 친구에게 "수정과 맛 별로 없는데"라고 했더니 친구는 "무슨 말, 야 없어서 못 먹어. 먹어봐" 하면서 권해서 난 손을 저으며 먹지 않겠다고 했는데 친구는 끊임없이 권했고 결국 그 한 번만에 넘어가서 난 한 모금을 했는데 이런 이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도 수정과를 먹게 되었다. 

난 어린 시절에 정말 맛없게 먹은 수정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이건 어른을 위한 음료"라고 정의를 내리며 사라졌다.


그 이후 여름이면 어김없이 수정과를 사서 가방에 넣어 다닌다. 사람들은 "신기하다" , 혹은 "어머 오랜만이다"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럼 난 "드셔 보시겠어요?"라고 응답을 하면 나이가 있는 동료는 "한 잔 만?" 하고 호로록하시고는 "야 진짜 맛있다" 하시고는 그다음 날이면 "나도 샀어"라고 가방을 보여주셨다.


그렇게 수정과로 대동단결 된 그날 한 잔 하는데 각자 수정과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했다.

동료 k는 "저는 수정과를 정말 좋아했는데 계피향이 좋아서 일부러 계피를 많이 넣어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잣이 더 좋아서 엄마 몰래 잣을 한가득 몰래 먹다가 들켜서 혼났죠."

우리는 웃으며 "맞아, 그 잣이 예쁘기도 한데 맛이 좋지" 하면서 동료 l은 "요즘은 중국산 잣도 있고 그 잣이 묘한 게 씹는 재미도 있지만 수정과랑 단짝인 게 색도 그렇고 선조들이 그러고 보면 미식가였어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풀어가던 중 한국차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왔다.


수정과는 내가 여름이면 보약처럼 먹는 음료이다. 그런데 시중에서 파는 수정과는 너무 달아서 엄마에게 꼭 부탁을 드린다. 당분은 최대한 빼다고, 물론 힘들어서 난 그냥 시중에서 먹겠다고 하지만 엄마는 엄마,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으셔서 이렇게 여름이 되면 귀신같이 만들어 주신다. 늘 감사드린다.


엄마가 만들어 주신 수정과는 냉장고를 채우고 그렇게 하나씩 없어질 때는  여름이 지나간다는 뜻이라는 생각에 이 여름도 잘 버텨보자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다.

작은 것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어릴 때는 마시면 괜히 속이 불편했던 음료가 어느새 내 손에서 떠나지 않은 이 수정과는 그렇게 나이가 들어서 나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


음료 하나에 감사하며 요즘 산다. 그렇지 않으면 요즘 같은 불쾌지수 높은 환경에서는 웃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운다. 그리고 이 더운 여름에 수정과를 만들어주신 엄마에게 감사드린다.

늘 자식을 위해서 희생을 하시는 엄마에게 죄송하다. 이런 말을 하면 엄마는 "네가 잘 먹어야 내가 힘이 난다"라고 대답을 하신다. 눈물이 나기도 하고 웃기도 하지만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늘 이렇게 마음이 뭉클하다. 감사합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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