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생각을 해 보면 일기를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엄마는 나에게 딱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공부는 못 해도 되니 독서를 많이 하고 일기를 꼭 써라. 생각해 보면 내가 살아가는 아주 중요한 줄기를 잡아주셨고 그때는 몰랐다. 그냥 공부를 잘할 필요가 없구나라는 생각에 정말 편하게 살았다. 이 말씀은 대학가서도 이어졌다. 엄마는 내가 대학 가서 제일 처음 질문하신 게 "도서관은 어때?"라고 물어보셨는데 내가 처음 한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엄마 엄청 큰데 ,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책들은 그다지"이라는 답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소설은 같은 책으로 여러권이었는데 인문학으로 깊이 있는 책은 여러 권의 아니었다. 그래서 그게 좀 힘든 점이 있어서 늘 발 빠르게 다녔다.
내게 글은 글 이상이었다. 낙서도 글이었고 갇힌 삶에서 나갈 수 있는 공간이었고 그 공간에서 일탈을 꿈꾸며 살았다. 그래서 모의고사가 끝나면 끊임없이 글을 썼고 일기장을 늘 들고 다니면서 아무 뜻 없는 이야기들을 쓰고 다녔다. 친구들은 뭘 그리 쓰냐고 물었지만 난 그때마다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그저 그냥 , 이라는 짧은 단어로 마무리 지었다. 그래 나는 왜 글을 썼던가, 생각해 보면 내가 오롯이 가장 나다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라 즐겼던 것 같다. 물론 어리고 치기 어린 시기에 잠깐 받는 상에 괜히 어깨가 으쓱한 적도 있었지만 그 반대로 상을 받을 때는 "왜?"라는 답을 받으며 어이가 없을 때가 있었다.
수많은 작가들 작품을 읽으면서 이 작가들처럼 쓰고 싶다고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각 작가마다 색깔이 있기에 그 작가를 따라간다면 베끼는 행위라 늘 나 자신을 경계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작가라는 명칭을 얻고서 나도 모르게 어색했다. 내가 작가라고? 그럼 내 글은 뭐가 되는가?라는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요즘 내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 중이다. 물론 사는 것에 답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 격랑에 바다에서 끊임없이 중심을 잡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내 브런치 제목이 맨땅에 헤딩이다. 늘 백지에 내가 그려 넣는 그 헤딩에 글을 넣으려고 한다.
아주 작지만 세심한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