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잘하는 게 멍이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멍 때리는 거.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지나가는 저 사람은 행복할까? 웃기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커피숍에서 나 스스로 의문을 만들면서 간단한 메모를 하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멍을 매운다.
한동안 행복에 대한 생각을 한참 생각했다. 대학을 같이 간 친구가 대학을 그만두었다. 쉽게 말해서 대학을 4년 다니면서 마지막 학기에 그만두었다.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이유는 가정사였다.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잠수를 탔다. 너무 걱정이 돼서 그다음 날 전화를 했더니 없는 번호가 되었고 메일 보내도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다 한 달이 지났을까 연락이 왔다. 막노동을 하면서 버틴다는 이야기를 했다. 답답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도 했고 나로서는 답안을 해주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는 내가 더 답답해서 내가 싫었다. 그 친구는 그때부터 키워드가 '돈'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서 만났는데 대학교때와 다르게 나타났다. 순진함은 사치이고 대학을 그만두고 일찍 사회로 뛰어든 자신에 대해서는 일말에 후회도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친구는 회사에 입사를 하기보다는 자신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이야기를 했고 요식업을 한다고 했다. 난 잘 됐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나에게 사는 게 힘든걸 일찍 배워서 그런가 이제는 어진 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다며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제일이라며 대화에 주제가 '돈'으로 몰아가서 마지막에는 내가 불편했다.
그런 나에게 철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난 너와 다르게 벌면서 사는 거니 너와는 다르지"라고 이야기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나도 모르게 정말 돈이 많아야 행복한가를 생각했다.
마침 그해에는 일 년에 일억 모으기가 유행이었다. 그래서 소금왕이라는 조크나 별명이 어색하지 않았다. 시대가 그렇게 흘러갔다. 사람들은 나에게 돈 벌어서 뭐 하냐고 물었고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냥 적금을 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명품도 화장도 옷도 관심이 없고 그저 한 달에 벌어서 약간의 책을 사서 출퇴근에 읽는 다면 그걸로 족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해에 친구 한 명을 더 만났다. 그 친구는 정말 1억을 모았다. 나에게는 큰돈이라 축하한다고 했다, 그러자 친구는 "왜 방법은 안 물어보니?"라는 피드백받았다. 생각해 보니 그런 궁금증은 없었다. 그저 각자 방식에서 벌었겠지 했다.
1억을 모은 친구에게 "행복해?"라고 물으니 묻지 않았으면 섭섭해했을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 또래 중에서 가장 빨리 서울에서 집을 샀다. 친구들은 부럽다고 입모아 이야기를 했고 그중에서 난 서울에서 집을 사고 좋겠다 하면서도 괜히 내 통장을 생각했다.
이후 친구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한참을 끌어안고 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으면 좋은 거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데 난 행복기준에는 내게는 아직 아니다. 그냥 조금 더 있으면 행복은 할 것 같다. 다른 사람보다 한 권의 책을 더 살 수 있고 한 잔의 음료수를 더 마실 수 있고 조금 더 있으면, 그래서 많은 돈을 노리면서 살아 본 적은 없다. 그래서 로또에 걸리는 사람들은 전생에 무슨 공을 쌓아서 걸리는 걸까?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부터 늘 마음이 시끄러웠다. 내 안에 가진 질문들을 가지면서 이 질문들을 화두로 붙잡고 살면서 죽어야 이 생각이 줄어들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때 호기로운 시절에는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때 내 행복 기준은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더 내 마음을 더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