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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ug 29. 2023

자식을 양육하지 않은 엄마.

엄마의 모성애

너무 제목이 자극적이다. 그래 내가 썼어도 자극적이다. 내가 대학을 가고 회사생활을 하기 전에 생각한 우리 엄마는 적어도 자식을 키우지 않은 엄마였다. 너무 방목으로 키우셔서 한때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딸이긴 한데 우리 엄마는 자식애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남들은 모성애라고 하면 죽을 때까지 가진다고 하는데 우리 엄마는 모성애가 없다고 독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도 엄마는 비가 와도 단 한 번도 우산을 들고 오신 적이 없었고 비가 와서 비를 맞고 들어가서 엄마에게 엄마는 왜 교문에 없었냐고 물어보면 사는 게 바빠서 몰랐다고 뒤를 돌아가셨고 중학교 때는 눈이 많이 와서 겨우 겨우 집에 갔더니 찬밥에 김치 덜렁 해 놓고 어딘가를 가셨는데 그게 못 마땅해서 엄마에게 따져 물으니 다 이렇게 사는 게 삶이라고 하셨다.


꾸며줄 것도 덜어줄 것도 없는 게 우리 집이라고 하셨다. 너무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하셔서 그게 싫었다. 고등학교 기숙사를 들어가서는 남들은 집에 가면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온다는데 난 그런 거 없어서 그다지 그리 부러운 삶도 없었다. 엄마는 늘 이야기하셨다. 학생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냥 공부를 하면 되는 것이고 적당히 자신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라고.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들어가려고 하자, 엄마 아빠는 대학 등록금 한 학기를 지원할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하셨다. 그러니 결국은 내가 장학금을 받거나 알바를 해서 돈을 벌거나 아니면 휴학을 해서 어떻게든 바쁘게 살아야 했다. 따박따박 돈을 받으며 다니는 친구들이 가끔은 부러웠다. 하지만 부모님에게도 생각이 있으셔서 그러겠지 하고 열심히 살았다. 학교에 입학을 하고 친구들 부모님들은 놀러 오셨지만 우리 부모님은 아주 늦게 오셨다. 이유는 대학이 거기서 거기지, 하시면서 하지만 이야기의 후반부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다.


내가 자식을 키우지 않는 엄마라고 생각한 절정에 순간이 있었다. 대학을 휴학하고 난 기숙사를 나와야 했다. 그리고 복학을 하고 월세방을 구해야 했는데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알았다, 하셨다. 그럼 보통에 부모들은 돈을 걱정하거나 아이가 방을 잘 구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해야 하는데 걱정은 단 일도 없이 질문도 아예 하시지 않으셨다. 결국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인 옥탑방을 구했다. 그 이야기를 하고 나니 엄마는 하나하나 사면 돈이라며 고향에서 밥솥과 살림살이를 이것저것 보내주시고 한여름 서울에 오셨다.


난 엄마에게 "엄마 내가 방을 구하면 걱정이나 뭐 그런 거 없었어?"라고 물었다.

그때 엄마는 "이렇게 잘 구했잖니"라고 웃으시며 집 청소를 하셨다. 어이가 없어서 우리 엄마는 진짜 우주최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멘털은 어디서 나왔을까 생각하면서 엄마와 이야기를 하는데 옥탑방에서 엄마는 덥다는 소리 한 번 안 하시고 근처 재래시장에서 먹거리를 꽉 채워두시고 알바가 끝나는 시간에 밥을 하고 기다리셨다.


혼자 살면서 한 번도 밥을 먹은 적이 없었기에 귀한 밥을 보고서 나도 모르게 울컷 했더니 엄마는 " 수고했다. 엄마는, 엄마도 걱정했지. 그런데 엄마가 평생 네 옆에서 살 수 없으니 난 딸이 강하게 컸으면 한다. 네 아빠가 너 서울 가고 3일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우셨다. 그 고약한 양반이. 나도 덩달아 울었는데 부모는 다 그렇다. 누가 걱정을 안 하고 누가 사랑하지 않은 부모는 없어. 그러나 다 해 줄 수 없음에 아파하는 거지. 여기는 방학에만 살고 기숙사 알아봐라. 위험하다. 옥탑은"

그제야 엄마 속마음을 알고서 난 펑펑 울었다. 늘 엄마는 혼자서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우리 자매는 늘 씩씩했다. 여동생도 혼자서 집을 구하고 혼자서 돈을 벌어서 집세 내며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자식 잘 두었다고 했지만 우리 엄마는 부모 잘 못 만나서 고생이지,라고 하셨다. 난 그 말을 하실 때면 속없는 소리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우리 엄마만큼 모성애가 많은 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 느낀다. 내가 맡은 일은 내가 해야 하고 누가 대신 살아 주는 거 아니니 씩씩하게 살아야 하니 엄마는 미리 주사를 놓아주신 거다. 그러니 함부로 울거나 함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거, 함부로 다리가 휘청이면 안 된다는 걸 가르쳐 주신 거다.


서울에 방을 구할 때도 난 내가 구했다. 그리고 엄마는 잘 구했다고 하셨고 지금 방도 엄마는 마음에 들어 하신다. 그리고 달라진 점이라면 예전보다는 지금은 더 살뜰하시다. 그래서 난 우리 엄마는 나이가 들어갈 수 록 더 모성애가 많으신 엄마라는 걸 느낀다. 그래 우리 엄마도 다르지 않은 모성애가 많은 대한민국에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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