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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ug 30. 2023

배추 전을 굽는 중입니다.

그리워요 외할머니

어릴 때 그리고 지금도 많이 먹는 음식이 있다면 배추전이다. 경상도 음식에 대표이다. 그래서일까 처음 서울에 와서 엄마가 서울 친구들과 같이 먹으라고 싸 준 배추 전을 기숙사 메이트에게 권하자 서울 토박이 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런 음식이 다 있냐며 한참을 보다가 배추가 가진 순 기능에 대해서 한 참을 말하더니 한 입을 먹고서 정말 진기한 음식을 먹은 사람처럼 나를 보았다.

경상도에서는 제사상에 올리기도 한다고 했더니 신기한 사람처럼 나를 보고 내가 무슨 외국인도 아닌데 잠깐 같은 한국에 살아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가장 맛있게 먹은 배추 전은 외할머니가 해주신 배추전이다. 물론 엄마도 배추 전을 엄청 잘하신다. 그러나 외할머니 음식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다.

이렇게 여름 길목에서 지나서 가을 초입에 가면 외할머니는 손녀에게 뭐 해줄 게 없나고 하고 주변을 살피시고는 전을 좋아하는 나에게 육전을 해주셨는데 사실 육전은 고기라 그리 당기지 않았고 배추로 해주시는 전은 정말 맛있었다. 지글지글하면서 위에서 꾹 눌러주는 힘에 배추가 가지는 그 심심함과 무심함에 정말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음식이 나에게는 최고였다. 


외할머니는 특별히 기름은 참기름을 두르고 해 주셨는데 "우리 손녀는 이 배추 전을 아주 좋아해서 이 할미는 다 해주련다. 보자 , 실한 거 찾아보자" 하시며 몇 장을 해주셨는데 난 그런 외할머니에게 "할머니 나 두장이면.." 하면 외할머니는 "갈 때 가져가" 하시며 아직은 있는 더위를 참아사기며 해주셨다.


가을에 고추농사를 마무리 짓고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서 누워서 땀을 식힐 때도 할머니는 국과 반찬을 내어 주셨고 그때도 배추 전을 해주셨다. 그럼 난 배추전만 골라서 먹었다. 그럼 외할머니는 편식이라는 말씀 대신 그렇게 맛있냐 물으시고는 가르쳐 주셨다. 혼자 살면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으니 외할머니께서도 당신에 어머니께 배우셨다고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엄마가 외할머니 음식솜씨를 물려받았다고 다들 그런다. 그래서일까. 비가 오거나 내가 기분이 꿀꿀하면 엄마는 "딸 배추전 해줄까?" 하시며 외할머니 맛을 재현하셨다.

난 간장에 찍어서 먹기도 하고 기름을 많이 두르지 않았기에 그냥 먹기도 한다. 엄마에게 엄지를 들어 올리면 엄마는 미소를 보이시며 "이게 보약이다" 하시며 집 식구들이 한 장씩 들어먹었다. 지금도 엄마는 열심히 배추 전을 하신다.


나에게 배추 전은 외할머니와 추억이고 위로에 음식이고 엄마에게는 자식들에게 딱히 간식거리가 없을 때 주신 음식이다. 그래서 엄마는 애증에 음식이라고 언젠가 회고하셨다. 질리도록 먹은 배추 전이라고 고개를 저으셨지만 사람은 익숙한 것이 더 아는 맛이라고 가족들이 모이면 동동주에 배추 전을 먹으며 어릴 때 추억을 기억하며 잊지 못할 이야기들에 울며 웃으며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참 음식은 신기하다. 후각 청각 시각 이 모든 것들을 들어내어 잊을 법도 한데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까지 해내는 용한 녀석이다. 그래서 그런가, 얼마 전부터 엄마가 해주신 배추전이 먹고 싶어서 주말에 집에서 직접 해 볼 생각이다. 처음 내가 배추 전을 한 게 고등학교 때였다. 입은 심심하고 냉장고에 배추가 있어서 엄마에게 배워서 처음으로 한 배추 전은 실패였지만 엄마는 잘했다며 고치고 고쳐서 처음으로 한 장에 배추 전을 사진으로 남겨 놓으셨고 그 배추 전은 결국 아빠 퇴근에 맞춰서 다 같이 먹었다. 


단순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배추전이 그리운 요즘 엄마도 외할머니도 보고 싶은 요즘이다.

음식은 매직이다. 그래서 나도 그 매직을 잠시 빌려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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