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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Oct 30. 2023

혼자 살아도 고급지게 차려 먹는다.

언제였을까, 아마도 내가 옥탑방에 살때였을거다. 뭐 일 년도 안되게 살았지만 정말 많은 교훈을 얻은 곳이다. 옥탑방에 대한 낭만도 깨졌고 여름이면 펄펄 끓어서 살기 힘들고 겨울이면 거의 시베리아급 추위이고 그래서 다시는 옥탑에 옥도 꺼내지 않은 인간이 되었으니 말 다했다. 정말 중요한 건 엄마가 나에게 해주신 이야기이다.


옥탑을 구하고 여름방학이 되고 나는 나대로 알바를 열심히 하고 있을 때였다. 고향에서 엄마는 서울로 내 옥탑방을 구경한다고 오셨다. 엄마도 옥탑은 처음이라 이리저리 구경을 하시더니 여자 혼자 살기에는 벅차다며 고개를 흔드셨고 냉장고에는 뻔하지만 없는 식재료들은 다 넣어주시고 가셨다. 


아마 그날이었을 거다. 가시기 전날, 엄마는 그날 시장에서 국그릇과 밥그릇 그리고 접시를 일인 세트를 남대문에서 사 오셨는데 다 도자기로 사 오셨다. 처음 내 반응은 "아니 혼자 사는데 이렇게까지"였다. 그때 엄마는 "죄다 플라스틱에, 이게 무슨 사람이 먹는 음식에 이건 아니다"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 귀찮고 먹으면 설거지를 해야 하는 세트를 사가지고 오셔서 화를 냈다. 엄마는 "자고로 혼자 살아도 잘 차려 먹고 잘 비워야 하고 음식은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눈으로 향으로 맛으로 세 번이라고 했지!" 잔소리를 하시더니 그날은 정말 정갈한 한 상을 먹었다. 엄마는 가실 때까지 강조를 하셨고 막상 엄마가 가시고 나니 허전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도착을 하니 엄마가 해 놓고 가신 반찬들을 괜히 들여다보며 밥을 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주한 도자기 그릇들과 용기들을 보고서 엄마 말씀처럼 먹어보기로 했다.

정갈하게 그래, 최대한 정갈하게 속으로 몇 번을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혼자 먹으면서 이렇게 먹는 건 좀 웃긴데 하면서 나도 모르게 엄마처럼 그렇게 소복이 뜨고 있었다. 엄마는 평소 식사를 하실 때 조용하게 드시는데 간혹 클래식을 들으실 때도 있다. 난 그날 클래식을 틀고 책상을 펴고 엄마가 사주신 그릇에 밥을 담고 반찬 몇 가지에 국을 해서 먹었다.


이런 똑같이 플라스틱에 먹었을 때는 허전했는데 이렇게 먹으니 적게 먹어도 배가 불렀다. 무슨 효과가 있나? 싶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는 역시 모든 걸 알고 계시는구나 싶어서 그날 이후로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절대로 플라스틱에 음식을 놓아 먹는다거나 절제되지 않은 용품에 담아 먹지 않는다.


지금도 내 밥그릇 국그릇을 비롯한 식기는 다 세트다. 도자기 세트. 그리고 이렇게 가을이 되면 컵도 도자기를 주문해서 일 년에 한 번씩 바꾼다. 이것도 엄마 영향이다. 엄마가 도자기를 좋아하시는데 커피를 즐기시니 컵을 모으셨다. 그러니 나도 모르게 그 재미에 빠져서 나만에 사치로 도자기 그릇이나 컵을 모으고 있다.


집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에 새로 산 커피잔에 참 신기한 건 어떤 커피잔에 마시는가에 따라서 그 맛이 다르다는 거다. 요물이다. 


우리 할머니도 최대한 이쁜 곳에 담아서 먹어라, 하시며 내게 내어 주신다. 그러고 보니 두 분은 닮은 점이 많다.

난 혼자 살아도 고급지게 차려 먹는다.

그래서 가끔 먹는 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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