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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Oct 31. 2023

보리차가 익어가는 시간

가을에 깐부는 보리차입니다.

가을이면 엄마는 늘 델몬트 병에 보리차를 넣어주신다. 올해도 어김없이 보리차를 직접 만드셨다. 처음 시집오셨을 때 음식이라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셔서 너무 난감했는데 다정한 시어머니는 그런 엄마에게 다 알면 재미없다 하시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 주셨다는데 엄마는 그 시간을 처음에는 인내라고 하셨지만 지금은 자산이라고 하신다. 그렇다. 손재주 좋으신 우리 할머니는 못하시는 게 없는 만능이다. 할아버지 식성이 깐깐해서 어떻게 살까 하지만 그걸 또 맞춰서 사신 할머니는 며느리들에게 솜씨를 알려 주시고 보리차도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한다고 가을에 며느리들을 한꺼번에 부르셔서 강의를 하셨단다. 엄마는 살면서 이런 강의는 처음이라고 생각을 하셨는데 처음 배우는 내용에 인고의 시간을 내며 보리차를 마셔보니 과연 그 맛은 정말 경의로웠다고 회상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집안에 내력이다. 익혀라"라고 하시고선 지금도 우리 집안은 엄마의 노력으로 보리차를 끓여 먹는다.


해마다 엄마는 보리를 직접 볶으신다. 아무래도 촌으로 들어가셔서 가마솥에다 장작불로 뜨거운 기운을 모조리 덮어쓰시고는 이마에 나는 땀을 닦으면서 허리에 수건 한 장 두르시고는 배테랑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신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엄마가 큰 프라이팬에다 보리를 볶으셨다. 아마 이 무렵이었을 거다.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고무줄 한 하고 놀다 오면 그 고소하면서도 뭐라 딱히 형용하기 어려운 냄새가 집안에 돌았다. 그럼 엄마는 어김없이 보리를 볶고 계셨고 난 그걸 지켜보면서 "엄마 그냥 사 먹으면 안 될까?"라고 말을 했고 엄마는 그럼 "할머니가 직접 전수하셨어" 하시면서 부채바람을 일으키시며 보리를 볶으셨다. 그리고 얼마 지났을까 동네 사람들이 집에 몇 분 오시면 구경을 왔다고 하시면서 정말 구경을 하셨고 오시면 집안 이야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며 시간을 보내셨고 엄마는 그냥은 못 보낸다고 그렇게 볶은 보리를 나눠 주셨다.


맛은 말해 무엇하겠느가, 맛을 본 이들은 그다음 해도 우리 엄마가 보리를 볶을까 싶어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어린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했지만 아빠는 정말 좋아하셨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시면 물 한 잔이 보약이라고 드셨고 보리차가 커피보다 맛있다고 드셨으니 어린 내 눈에는 괜히 먹을 것 없으니 저렇게 드시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보리차는 정말 좋은 차였음에 분명하다.


환절기 나는 감기에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이래저래 비상약을 먹는데 참 용한 것은 엄마가 끓여 준 보리차를 마시며 금방 낫는다. 며칠 전 보리차 티백을 사서 주위에 놓고 마셨더니 맛은 좋았다. 그런데 엄마가 델몬트에 담아 준 그 보리차 맛보다는 맛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역시 음식은 정성이라 그런가, 갑자기 그 맛이 그리웠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여쭤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런 집에 도착을 하니 이미 집에 보리가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다정한 쪽지와 함께 배달된 택배에는 홍시도 같이 있었다. 집에서 먹는다는 게 쉬운 줄 알았는데 노력과 정성은 정말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엄마는 또 이걸 볶으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다. 감사한 마음에 전화를 드렸더니 늘 하는 해마다 행사인데 번잡스럽게 전화를 할 필요는 없다시며 웃으셨다.

때로는 당연하게 먹던 것들이 이렇게 노력이라는 단어와 함께 보이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손목이 아파서 울끈거리는 것을 참아가며 볶으셨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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