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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Nov 23. 2023

사는 건 결국 돌고 돌아 한길이다, 엄마의 말씀

언제였는지 아주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대기업을 퇴사하고 이직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때 확실하지도 않았고 몇 명 뽑지도 않은 곳에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 나름대로는 고민을 했었다. 흔히 말하는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이 두 가지를 놓고 첨예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처음 대기업을 했을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남들이 들어가니 한 번 해보자고 야심 차게 갔지만 실패를 했으니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시작한 이직이었다. 힘들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있겠는가.


한참 힘이 들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속으로 늘 하면서 살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향으로 와서 밥 한 끼 먹고 가라는 전화였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알겠다고 했지만 가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괜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너질까 싶어서 마음을 잡고 가야겠다고 날을 잡아서 갔다.


엄마는 늘 그렇듯 딸이 온다니 이렇게 저렇게 반찬을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 놓으셨고 아빠는 "딸 왔어" 하고 웃으며 반겨주셨다.

흔히 하는 대화로 힘들지 않냐부터 처음부터 붙으면 이직이냐부터 내게 최대한 힘을 빼라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결국은 이직을 3년 정도는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그러기에는 내게는 돈도 시간도 없었다.

말은 알았다고 했지만 마음은 바빴고 그날 하루 밥을 먹고 바로 서울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표를 예매했다.

엄마는 벌써 가냐는 말씀을 하시고는 가벼운 반찬과 과일을 싸주셨다. 그날밤 엄마와 함께 자는데 엄마는 내게 "힘들지?"

나는 "그렇지 뭐"

엄마는 "세상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다. 엄마가 생각하기에 말이야. 조심스러운데 , 살면서 굴곡진 일이 있잖아. 어려운 일 쉬운 일. 그런데 그거 알아? 다 한길이다. 쭉 일직선. 그래서 엄마는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일도 언제가 지나고 보면 내가 걸었던 그 산길이 엄청 높았던 산길이었던 게 아니었구나, 그때 나는 평지를 걸으면서 내 마음이 힘들어서 높아 보였던 건지도 모르겠구나" 

처음에는 이해가 어려워서 "엄마 그럼 지금 내가 힘든 게 마음이야?"

라고 되물었다.

엄마는 "그러니까 어려움도 쉬움도 결국은 한길이야. 엄마는 너 낳고 정말 힘들게 너를 살려서 이제 내 인생은 끝이다,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길도 결국은 평지였어. 더 어려움도 있었고 너로 인해 많이 웃는 날도 있었고 결국은 제로였던 거지. 인생에 마이너스도 플러스도 없어. 그냥 제로"

그제야 알아듣고서 "응, 알겠어" 하고 엄마 옆에서 잠을 청하고 그다음 날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난관에 부딪히면 제로다,라는 생각을 한다. 인생사 모두 좋을 수 없고 그래서 인생이 어렵다고 하니 뭐든 내가 하기 나름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판단과 선택은 개인 몫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이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함을 점점 더 느끼니 요즘 부쩍 주위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쓸데없는 생각부터 사람까지, 사람이 쓸데없다는 게 아니라 그냥 연락도 안 하면서 그냥 있는 번호들부터 괜히 있는 번호까지 싹 다 정리하면서 간결하게 살아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아지면서 한 분 한 분 인사를 정중하게 드리며 올해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세상을 혼자 살아간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 그러니 나 혼자 산다는 말은 어쩌면 오류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연이 아닌 사람들을 억지로 붙잡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제는 정리를 하고 간결하고 적확하게 살려고 한다. 이게 엄마가 말씀하신 제로에 살아가는 삶에 포함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진: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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