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의 꿈-
난 태어나길 가난하게 태어났다. 엄마 아빠가 공무원이셨지만 많은 빚보증에 정말 가난했다. 그런 사정이 있었음에도 학교에서는 무슨 일만 있으면 나에게 "몽접아 엄마 학교에 좀 오시라고 해라" 하시면서 , 알맞지 않은 감투를 주셨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화를 내셨다. 나도 이해를 했다. 엄마는 우리 두 자매가 회장이나 부회장 선거에 나가는 걸 싫어했다. 그때만 해도 반장이나 부회장이 되면 반에다 빵과 우유를 돌리는 문화가 있어서 돈이 없는 우리 집에서는 당연히 거부이다. 그렇지만 여동생은 정말 그런 감투를 좋아해서 번번이 해와서 엄마는 한숨을 쉬셨고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 웃으라고 했다.
자 그럼 붕어빵집 첫째 딸은 왜 썼는지 적어야겠다. 엄마는 빚을 좀 더 빨리 갚으려고 동네에서 이미 붕어빵을 팔고 계신 꿀꿀이 슈퍼집 동네 아주머니에게 어렵게 부탁을 하셨다. 동네 장사에서 파이를 늘이는 게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도 인심이라고 바로 알려주시겠다며 엄마는 그렇게 일주일을 따라다니시며 배우셨다. 엄마는 할머니에게서 배운 음식솜씨로 이미 동네에서 손맛이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서 알려주시는 아주머니는 "자기 정도면 금방이야" 하면서 그렇게 금방 한 달을 채우고 엄마는 나를 깨워서 시작을 하셨다.
처음 아빠와 여동생은 싫어했다. 좁은 동네 한가운데서 팔면 오며 가며 다 아는 사람들인데 민망하다는 이유였는데 그때 엄마는 "그럼 언제 돈 다 갚으려고?"라고 하시면서 아주 당차게 이야기를 하셨고 반대하는 여동생을 뒤로하고 나를 깨우셨다. 아침 6시 정확히 본인은 그전에 일어나셔서 아침상을 준비하고 내어 놓고 나를 이끌고 중앙시장으로 이끌고 갔다. 처음에는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말처럼 되지 않았다. 그렇게 태워먹은 붕어빵은 많았지만 그렇게 대략 2주 정도 되어가니 엄마와 나는 어느 정도 붕어빵을 파는 사람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과 인사를 하면서 엄마는 팔았지만 나는 내 친구들과 만나기 싫어서 괜히 의자에 앉아서 팔았다. 그때 생각했다. 나는 성공해서 절대 빚 없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부모님을 원망한 건 아니지만 불편한 삶은 맞았다. 그래서 어린 나에게는 그 삶이 그렇게 좋을 리 없었고 결국 나는 결심을 한다. 저축과 빚 없는 삶을.
그리고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고. 그래서 아마도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던 이유였는지 모른다. 가난한 집에서 성공이라는 것이 공부밖에 없었으니 좁은 내 생각에는 내 꿈을 가지고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남들보다 일찍 했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 모르겠다. 지금 아이들은 꿈이 없다고 하는데 그때 나는 일찍이 꿈을 가졌다. 그래서 앞뒤 없이 정말 열심히 꿈을 이루겠다고 팬클럽에 빠져서 열심히 애들이 노래를 부를 때 나는 시와 소설을 읽으며 대학을 상상하며 공부를 했다. 운 좋게 국문과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으로 배정이 되어 내 꿈은 더 앞당겨진 느낌으로 고등학교를 버티며 살았다.
고등학교 1학년 첫 학기 첫 면담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그래요, 가고 싶은 과에 국문과라고 적었는데 본인이 원하는 과인가요?"
나는 아주 수줍게 "네"
담임 선생님은 "나도 국문과예요, 잘해봅시다" 그리고 음료수를 주셨는데 얼마나 떨렸는지 수줍게 받고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뒷문으로 나오는데 세상을 다 가진 기분으로 복도를 뛰었다.
그리고 고 2도 담임 선생님은 똑같으신 분이었고 고 3도 같은 분이셨고 마지막 대입원서를 쓸 때 "너 정말 국문과냐?"라고 물으셨고 "네" 선생님은 "국어교육도 있어"라고 하셨고 나는"아뇨 국문과요"라고 했다.
선생님께서는 "알았다"하시며 미소를 보이셨고 내가 합격했을 때 정말 좋아하셨다.
그리고 선생님께 "선생님 국문과 열심히 배워서 학자 할게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그래 너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힘든 사람이니 열심히 해라, 충분히 자격이 있고 할 수 있다"라고 대학교 3학년 때 말씀해 주셨다.
난 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집에서도 교수가 되지 못한다면 그냥 대학원으로 마무리 지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으로 마무리 지었다. 후회는 없다. 다만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간다면 내가 국어교육으로 갔을까?라고 생각을 한다면 어쩌면..이라는 생각은 있는데 하지만 그때도 국문과를 지원했을 거다. 내게 문학이 없었다면 붕어빵집 첫째 딸은 꿈도 없고 희망도 없는 그저 그런 삶을 살았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