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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Oct 02. 2024

할머니의 수정과

할머니는 수제를 좋아하신다. 처음에는 당신도 누군가 만들어 주신걸 드셨다. 그러다 독한 시집살이 막내를 경험하시면서 처음에는 겸상은커녕 밖에서 식은 밥을 드셨다고 한다. 5형제 막내에 시집을 오셔서 시어머니가 얼마나 독하신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손수 하시는 양반이라 할머니는 너무 힘드셨고 며느리들끼리 화합은 잘 되는데 제일 큰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무슨 관계인지 잘한 건 말이 없고 못한 건 죄다 말씀을 하셔서 할머니는 늘 혼나셨단다. 곱게 커서 하나도 모르고 시집을 오셨으니 알만하다. 그렇게 언제 분가를 하나 싶어서 세월을 기다리다가 이러다 죽지 싶다 할 때 분가를 하셨단다.


그리고 할머니도 자식을 낳아서 결혼으로 며느리를 보셨는데 우리 할머니는 좀 특이하다. 굉장히 쿨하다.

못하는 건 못한다, 잘한 건 잘했다. 칭찬과 잔소리가 함께 나온다. 그렇게 당신도 어렵게 배운 걸 며느리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처음 우리 엄마가 딱 할머니셨다. 막내로 그것도 딸이 한 명인 집안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 외할머니는 시집가면 다 안다고 정말 밥도 못하는 딸을 시집을 보내셨고 나중에 우리 할머니가 깐깐하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잠을 이룰 수 없으셨단다.

엄마는 다른 집과 다르지 않게 3년을 할머니댁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음식을 배우셨고 무슨 관례이듯 결혼하면 3년은 할머니께 음식을 배워야 했다. 음식이라는 게 늘 다르다. 장부터 김치 그리고 반찬까지 아, 직접 수정과 하며 유과 기본 과자까지 만드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할머니 이제는 사서 먹으면 안 될까?" 하면 할머니는 "어디 그게 " 하시며 단칼에 자르신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할머니는 가을이 시작되면 수정과를 정말 많이 만드신다. 그리고 직접 계피를 사서 집에서 가마솥에 넣어서 수정과를 만드시는데 요즘 제로콜라를 마시는 내게는 할머니 수정과는 물릴 수 없는 유혹이다. 할머니는 설탕을 그리 좋아하시는 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음식이 달면 안 된다는 편이셔서 당신은 그렇게 사셨다며 설탕에는 엄격하시다. 


며칠 전 수정과가 한 박스가 배달이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전화를 하셨다.

"나다 받았어?"

나는 "응 할머니"

할머니는 "아이고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힘들어 어째"

나는 "이제 사 먹어요"

할머니는 "무슨 , 내가 이렇게 살아있을 때 하는 게 낙이여"

나는 "할머니 그냥 힘들어"

할머니는 "이게 그래도 너 좋아하는 콜라보다 백배는 맛있어"

나는 깔깔 웃었다.

나는 "할머니는 믹스 커피 드시잖아"

할머니는 "그건 보약이고"

나는 "그게 무슨 보약이야"

할머니는 "나도 몰랐는데 요물이다."

웃으시고 나도 웃었다.

"할머니 이거 나눠 마셔도 될까?"

할머니는 "그럼 이야기를 하지, 더 많이 하지"

나는 "아니 그냥 우리 팀만 나눠 마실게"

할머니는 "그래 좋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엄마에게 말씀드렸더니 엄마는 다음 주에 다시 만들어줄 테니 돌리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엄마도 할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으시다. 직접 만드시고 철철마다 과일 보내시고, 내가 어렸을 때 마신 수정과는 쓰다,라는 표현을 해야겠다. 어린 입맛에는 어른의 입맛을 기억하기는 버거웠다.

그래서 "윽 엄마 " 하면서 표정이 별로였다. 그럼 엄마는 "이거 만들어서 먹는 음료는 사도 이만큼 못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엄마는 저녁이 되어 쌀쌀해지면 약과와 수정과를 내어 놓고서는 "간식 먹자" 하시며 우리를 부르셨다. 약과는 기억에 달콤했는데 수정과는 씁쓸했다. 그래서 마시는 척했는데 엄마가 확인하면 웃으며 "엄마 그냥 물" 하면 엄마는 "먹을 줄 모름 힘들어" 하시며 미소를 보이셨다.


지금은 야금야금 아껴서 먹는 수정과, 엄마는 그때가 언제인가 하시면서 웃으신다. 그리고 당신도 나도 한 잔을 앞에 놓고 바람 부는 곳으로 앉아 옛날이야기를 하면 추억으로 마신 수정과가 그리 달 수 없다.


할머니가 보내주신 수정과에 엄마의 수정과에 난 참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듯하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그리고 엄마.

이 가을에도 수정과를 함께 하네요.

시원하게 그리고 맛있게 알뜰하게 마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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