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허구가 아닌 현실의 투영
홍길동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건 신분제라는 사회적 규범, 울타리를 넘어서는 클라이막스다.
홍길동의 아버지가 홍길동에게 '주인님'으로서가 아닌 '아버지'라 불리는 걸 허하는 장면.
현재는 그런 족쇄와 같은 신분제도 없고,
누구나 선택의 자유란 게 있다.
먹고 싶은 거 맘대로 먹고,
사고 싶은 거 맘대로 사고.
수중의 돈이란 게 충분하면 누구든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일까.
오늘 여기를 지지하다가도 금방 맘이 변해 반대편을 지지할 수도 있는 것이지.
누구나 국민은 자신들의 정치 성향을 외부로 표출할 권리가 있는 것이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그 어느 누군가에게든 부끄럽지 않으면 된다.
떳떳하게
근데 아닐 거 같다.
그 선택을 '도덕성'과 결부시키는
소위 그 '판' 위에서는.
하긴 요즘은 물건 하나를 사도 가치소비니, 환경소비니,
그런 거 안 따지고 사면 몰지각한 사람이니 이런 소릴 듣는데.
왜 선택은 도덕성의 문제여야 할까.
그렇게 무겁게 생각을 안 해도 될텐데.
이유를 따지고, 배경을 따지는 건 구차해 보일 수 있지만,
선택이 책임이 뒤따를 수 있는 문제에 있어서는
중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
홍길동 아버지는 신분제를 뒤흔드는 그 결정을,
자신 스스로 책임질 생각으로 했을까.
허균은 그런 서슬퍼런 시대에 태어나
글을 쓴다고 했을 때 그런 '파란'을 짐작했을까.
그런 글을 쓰고 퍼뜨린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