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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잇 부엉이 Nov 18. 2016

부끄럽고 창피하다

-인사가 만사라는데-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별별 일을 다 당한다지만, 내가 들어본 역대급 얘기 중 가장 스펙터클한 일이 바로 내 옆에서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그날 그날 흥미로운 일들을 올릴거다. 내 스스로 두고두고 창피하도록)


일전에 업무상 찾아간 클라이언트 미팅에서 참으로 그 조직으로서는 매우 부끄러웠을 경험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서열 순으로 '상사A-상사B-중간급C,D-중간E'가 있던 조직이었는데, 모든 이들이 참석하는 미팅이 끝난 후 불현듯 '상사B'가 재회의를 제안했다. 얘기인즉슨 '상사A를 믿지 말아라. 미팅 땐 저렇게 얘기했지만 실은 책임질 생각이 없다. 그걸 명심해야 할거다'는 게 '상사B'의 제언이었다.  뭐 조직이라는 게 서로 안 맞는 사람끼리도 있을 수 있고, 나하고 정말 잘 맞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땐 그렇게 넘겼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닐 꺼리도 못되는데다가 업무엔 크게 지장이 없을 것 같아서.

프로젝트는 좋은 평가 속에 마무리됐다.

후속 프로젝트를 위해 찾아간 어느날. '상사B'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싸우고 나갔다는 것. 뭐 조직에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뜻이 안 맞으면 그럴 수도 있고.


제3자 입장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신경쓰이는 일은 아녔다. 

막상 지금의 입장에서 다시 곱씹어보건댄 그때 어떤 교훈이라도 얻었어야 했나. 뭔가 찜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넘겼는데, 그랬어야 하는 것이었나? 싶은 게 있다.


꼰대 소릴 들을지언정 이 말은 해야겠다.


내 커리어 상에서 지금, 그리고 2011 or 2012년도에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 본인(들)은 어디가서 자랑해도 부끄럽지 않은 스펙들을 쌓았다 하지만, 한 마디로 자기 밖에 몰랐다.  철저하게 그간 본인(들)이 쌓아 올린 스펙에 견고하게 기대어 속칭 나이건, 직급이건 자기보다 못하다 싶은 사람의 말은 일절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직에 어디 그 사람이 낮게 평가할 만한 사람만 있는가.  혹은 저성과자라고 하면 무조건 그 조직에서 내쳐야 하는가.  그리고 당장 성과를 못 내더라도 조그만 가르쳐 주면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없겠는가. 문제는 그간 본인(들)의 스펙이 어떤 조직으로 옮겨가든간에 늘 유지가 되고 존속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마치 초등학교 때 반장을 했다고 해서 고등학교 때 반장도 아닌데, 반장처럼 행세를 하고 초등학교 때 반장을 했던 걸 자랑하고 심지어는 반장이 자신보다 조금 못났다고 생각하면 아예 반장을 무시한다. 

이 얘기를 들으면 분명 이렇게 무릎을 탁 치는 사람이 있을거다.  '어? 내 주변에 있는 '누구' 얘기 아냐?' 오해마시라. 그런 사람은 어디든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간의 착각과 환상이 만들어 낸 자신을 시공간이 바뀌어도 마치 그대로 유지되는양 행동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주변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해 주길 바라는 거다.  그러면서 행여 자신을 몰아부치는 사람이라도 나타나면 앞서 말한 자신의 종전 스펙을 그것도 심하게 인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내가 말이야 사실은 이런 이런 사람이고 이런 이런 일들에서 엄청 잘 했고, 지금도 나 되게 잘 하고 있는데...(근데 회사는, 팀장은 그런 건 아랑곳도 않고 나 하는 일마다 딴지 걸고, 비뚫어진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이야기를 들은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최면이라도 걸린 듯이 하나같이 그 회사를 욕하고, 팀장을 뭐라하고 위로하면서 온갖 조언을 해 댄다.


HR을 잘 하는 분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다.  조직원들의 업적 평가를 위해 서비스를 받은 고객들로부터 조직원의 서비스에 대해 '매우 좋음'부터 '매우 나쁨'으로 평가해 달라고 하면, 우리는 은연 중에 일종의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매우 좋음'보다는 '좋음'으로, 그리고 한발 더 들어가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을 얘기해 달라'고 오픈엔디드질문을 던지면, '잘 기억은 안 나지만...음 저를 대하면서 표정이 일그러졌던 거 같아요. 뭐가 제가 고객으로서 맘에 안 드는 말이나 행동을 했더라도 나는 고객인데, 고객을 앞에 두고 그러면 안 되죠'라면서 없는 말 있는 말 덧붙여서 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진짜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듯이 10명에 9명은 다 얘기하는 사람에게 동조하는 반응을 보이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온갖 조언을 해댄다.  그런 사람은 이렇게 대해야 한다는 둥, 저렇게 대해야 한다는 둥.  


내가 일전에 귀가 두개인 이유에 대해서 쓴 글이 있다.  귀가 왜 둘일까.  그리고...눈은 왜 둘일까.  양쪽 얘기를 다 들어보고 양쪽을 다 보라고.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ㄹ이 집단 최면에 걸릴 수 밖에 없는 건 바로 한쪽 얘기만 듣고 한쪽 사람만 봤기 때문이다.  


재판정에 세워볼까? 아까 그 나쁘게 얘기했던 회사, 그리고 팀장의 변호를 들어볼까?(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은 제안서 작업을 하는데, 정말 간단한 작업이예요.  이런이런 내용을 도식화해서 가져와봐라.  비록 퇴사를 앞둔 상황이니까 이런 걸 왜 나한테 시키나 했겠죠.(결과를 받아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리긴 그려왔는데, 정말 딱 '나 하기 싫고 여기 싫어서 나갈려고 하는 사람이다'라고 도식화된 슬라이드에 써 있게 작업해서 보냈더라고요."


"출근하면 하는 일이요. 정말 성의없이 오전 업무 딱 하나 해 놓고 그 담엔 보이질 않아요.  원래 하는 일이 좀 신중해야 하는 면이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약은 걸 수도 있는데, 그 일을 하면 자기가 더 돋보이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만 골라서 하려고 해요. 조직에서 그런 일이 어딨어요 세상에... 업무 성격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죠.  근데 정말 딱 그런 일들만 하려고 해요.  조직이라는 게 일을 하다 보면 나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이 나타나잖아요?  그 사람이 딱 그런 일을 맡고 자기가 그렇지 않은 일을 맡으면 자기가 더 돋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해서 불만이예요.  아직 한참 어리다고 생각했죠.  거기서 끝났으면 되는데 왜 맨날 자기는 그런 일을 시키냐며 따져 물어요. 그릇이 준비 안 된 건 생각 안 하구요.  자기한테 기회를 안 줬다는 거예요."


대충 여기까지 들으면 앞서 얘기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조직 내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다 분명해 졌을 것이다.  조직이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도록 만들어졌다면 그건 실패한 조직일 수 있고, 더군다나 업무 성격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없는(겉으로는 절대 그럴 수 없거니와 혼자서는 더더욱 안 된다)걸 몰랐다면 커리어를 잘못 택한 것이다.  흔히 커리어패스를 택할 때 흔하게 범하는 오류가..."너 뭐할래?" 하면 "아...저는 전략을 세우고 싶습니다" 그런다.  "그래, 너 아는 게 뭔대?" 되물으면, "아는 건 없지만, 제가 대학생 때 어디 나가서 상도 탔고요, 기획도 해 봤고요, 바로 직전까지 이런이런 일을 했었으니 잘 할 수 있습니다"

답변은 뻔하다.  미안하지만 너같은 쌩초보 전략을 믿고 나갈 수 없다.  그래 기획서를 한번 써 보도록 해 보자.  


온갖 내용을 다 긁어 모아 기획서를 만든다. 기획서를 '평가'하는 공모전에 내면 상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필드에선 전혀 써 먹을 수가 없다. 여기저기서 조합된 조악한 내용들로 멋있는 미사여구만 잔뜩...  시중에 책 10권만 진짜 미친듯이 빡세게 읽고 정리하면 책 한권은 거뜬히 쓴다.  그렇지만 알맹이가 없는 책이지.  프랑켄슈타인 같다고 해야 할까.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불량품만 양산될 뿐.


옛말에 다문, 다독, 다상량이면...? 글을 잘 쓴다고 했지, 좋은 전략이 나온다거나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대단한건데... 심지어 나 저 많은 책 다 읽었다...그러면서 나보다 더 많이 읽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심심찮게 주변에서 자랑하는 사람이 많지 않나?  책은 잘 쓰겠지. 말은 잘 하겠지.  하지만 전략가는 절대 절대 될 수 없고, 그걸로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조언을 하는 것 자체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내가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말이야..너가 딱 들으면 좋을 내용이야.  내가 왜 그 재미없는 책을 읽으려고 졸린 눈 비벼가며 읽었나 했더니 너한테 해 줄 얘기가 담겨 있어서 그랬던 거구나"


졸리며서 눈 비벼가며 재미없게 읽은 책에서 본 얘기를 해 주겠다?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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