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지나간 흔적
비가 오면 땅속 생명들이 꿈틀댄다.
흙속에서도, 흙위에서도.
제법 사는 동네가 오래면 재밌는 광경들을 이따금 목격한다. 그 중 하나가 땅속에 있던 생명체가 땅위에서 꿈틀대는거다.
어딜 그렇게 부지런히 가는 걸까.
다리도 없는 것이 물만난고기마냥 내린비로 촉촉해진 땅을 열심히 기어간다.
아는지모르는지 쏜살같이 달려가는 택배 트럭에 치여서 두동강 날 지라도.
잠깐동안이나마 땅위엔 지렁이 기어간 흔적이 남는다. 하지만 정작 그가 어디로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빠르게 어디론가 자리를 떴기 때문일까.
사람은 흔적이 남는다. 물리적 흔적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남길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그 흔적에 연연해서 살고, 뻔뻔한 사람은 그 흔적을 무시하고 살고, 또 다른 사람은 그 흔적 가운데 다른 주변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다가 더는 필요없어진 한 지점에 계속 머무르려한다. 마치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그리워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