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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피 Jul 15. 2019

3. 혼자가 아니었던 베를린

필름 카메라, 아이폰, 6년 된 DSLR로 풀어가는 이야기

함부르크에서 10시에 출발하는 플릭스 버스를 타러 걸어갔는데 거리 조절을 잘 못해서 40분 일찍 도착하게 되었다. 주말의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한산했다. 그런데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전광판에 나오지 않아 초조해져서 옆에 사람을 붙잡고 베를린에 가는 버스가 여기가 맞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했다. 그리고 그분은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았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본인은 아시아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라고 했다. 그래서 아시아 정치도 관심이 많은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물어 보통 대중들의 생각을 말해 주다 보니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는 3시간 반이 걸리는 제법 가까운 거리의 노선이었다. 전날 사두었던 1.7유로짜리 계란 햄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햄이 끝까지 들어있고 알찬 맛에 독일 물가 찬양을 했다. 나는 식이 장애가 있어서 맛있다고 생각한 음식을 질릴 때까지 계속 먹는 버릇이 있는데 독일에 머무르는 2주 동안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마트 샌드위치를 꼭 먹게 되었다.

함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플릭스 버스 안 (아이폰)

숙소는 알렉산더플라츠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나오는 로자 룩셈부르크 플라츠 역 근처에 위치한 움밧 호스텔에서 일주일을 묵었다. 일주일에 10만 원도 안 하는 금액이어서 여자 전용실인 거에만 만족하자는 생각으로 체크인을 했는데 방 안에 있는 개별 화장실과 방 카드키로 언락을 할 수 있는 락커에 중앙에 테이블이 놓여있고 6인의 거대한 캐리어를 완전히 펼치고도 남을 정도로 넓은 방이었다. 독일의 물가를 다시 한번 체감했다. 나는 보통 여행을 갈 때 일주일 이상 가는 것을 선호하는데 거기에는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 가고 싶은 것도 있지만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인가 하고 나만의 방법으로 랭킹을 메긴다 그중 중요한 방법은 마트의 물가를 비교하거나 부동산을 내 맘대로 분석하는 것이다.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긴 하지만 주로 가까운 중국하고 일본이 전부여서 이번 유럽 여행을 매우 기대했었었다. 침대 맡에 캐리어를 묶어 두고 감탄을 마친 채 알렉산더플라츠로 향했다. 가운데 광장에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있어서 지나가다 1유로짜리 핫도그를 시켰는데 생김새가 투박해서 웃음이 나왔다. 브뤼셀에서 샀던 머스터드는 나의 취향이 아니었어서 잊지 못할 그 맛의 두려움에 애매하게 소스를 짰는데 투박한 소시지가 우스광스러워져서 기분이 들떴다.


알렉산더플라츠에서 먹은 핫도그 (아이폰)

알렉산더 플라츠에 있는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고 역으로 향했다. 독일 지하철은 개찰구가 없는데 이유는 결국 정부에게 돌아간 돈은 시민에게 쓰인다는 자율적인 시민의식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 대한 배려(?)하려고 한 것이라고 한다. 아마 독일 친구들에게 들은 것 같다. 타기 전에 30유로짜리 7일 지하철 패스를 끊었는데 여기에도 일화가 있다. 선배 중 하나가 런던에서 워홀을 갔는데 독일 여행 중에 유로가 떨어져서 ATM기가 있는 곳까지 무임승차했다가 배로 벌금을 물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래서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 교통비에 대해서 여유 있게 준비를 해서 얼른 티켓을 끊었다. 역 ‘hackescher markt’ 발음도 어려운 하케셔 마켓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Do You Read Me?’라는 서점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여행은 미술관 여행이 타이틀이고 부제는 책방 투어이기도 했다. 워낙 종이를 좋아하고 사진집이나 동화책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기도 하고 유럽 특유 서점마다 판매하는 에코백을 구매하기 위하여 들렸다고도 할 수 있다. 이곳저곳 어슬렁 거리다가 호스텔 직원에게 물어 근처에 있는 ‘REWE’ 마트로 향했다. 1유로 대의 샌드위치와 샐러드, 각종 치즈들, 병맥주 눈이 돌아갔다. 다람쥐 마냥 장을 잔뜩 봐서 숙소 냉장고 한편에 포스트잇에 이름을 적어 넣어두었다. 8시까지 함부르크에서 만났던 일본인 친구 유이를 만나기로 해서 베를린 장벽에서 슈프레 강 건너 ‘Markthalle 9’ 마크트 할레 노인 안에 ‘Heidenpeters’를 찾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마르키쉬 뮤지엄 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러 구글 지도에 의지해 가는데 도중에 버스가 지나가 버렸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데 종점역에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길목이었는지 하늘은 어둑어둑해지고 조금 무서웠다. 버스에서 내려 Heidenpeters라는 맥주집을 찾으러 가는데 약쟁이 소굴이 있다면 이곳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둡고 힙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8시가 되기 전인데도 정말 깜깜하고 가는 길목에 가로등의 거리는 너무 멀어서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만 싶었다. 마크트 할레 노인 문 앞에 다 다르니 새로운 세상이 나왔다. 마감시간인데도 사람이 많고 높은 천장의 창고 같은 곳에 마켓들이 엄청났다. 어렵사리 유이를 만났는데 구석에 맥주 기계와 계단식 의자가 있고 몇 개의 스탠딩 테이블만 존재했다.

어두운  마크할레노인 안에서 첫잔을 마시며 찍은 함부르크에서 만난 인연 유이 (필름카메라)

알고 보니 유이는 나보다 7살이 많았으며 캐나다 와이너리에서 가이드로 워홀을 했고 내년에 결혼을 해서 교토로 돌아가기 전에 혼자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술 종류에 관심이 많으며 보통 일본인보다 술에 강하다고 했다. 나는 서울에서 영화학과에 재학 중이며 취미로 사진을 찍으며 일을 한다고 소개를 했다. 그리고 워킹홀리데이와 결혼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유이는 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이행하고 사는 내가 바라는 모습이었다. 종류별로 먹어본 맥주 때문인지 우리는 4잔 정도 마셨을 때 기분이 좋을 만큼 취했다. 직원에게 근처에 있는 펍을 추천받아 걸어서 20분 걸리는 ‘Lager Lager’로 향했다. 추운 칼바람이 불어서 손도 시린데 우리는 웃다가 뛰다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사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즐거웠다는 것만 기억한다. 라거 라거에  도착해서도 우리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딱 2잔을 더 마시고 다음날 유이의 오래된 교토 친구이며 폴란드에서 폴란드어를 공부 중인 친구가 유이와 베를린 여행을 같이 한다고 했다. 거기에 함께하자고 권해 주어서 베를린 중앙역으로 함께 친구 마중을 가기로 했다. 다음날 나는 수제 맥주는 숙취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7년 12월 9일 그 날의 일기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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