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은 인생의 메타포

후쿠오카 마라톤2

by 고빈다

그때, 뭔가 변했다. 어느 마을을 지날 때였다. 몇몇 학교들에서, 초-중등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각자 준비한 공연도 하고 악기도 연주하며 우리를 힘껏 응원했다. 마라톤은 우리의 행사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행사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그런 응원들을 수차례 받았을 때였다. 어떤 학교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치어리딩을 했다. 공연을 하지 않는 학생들은 펜스에 기대어 러너들에게 사탕을 전달하며, 온 힘을 다해 “간바레!”“화이토“ 외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응원이 계속되어 나는 무감각해진 상태였다. 다리가 너무 아프고, 도대체 끝은 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이 전달하는 사탕이나 과자는 목이 너무 마를 것 같아 먹을 수도 없었다. 왜 자꾸 주는거야. 이런 배은망덕한 생각이 나기도 했다. (사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뛰면 많이 힘듭니다.) 그래, 이렇게 계속 주는데 하나 받자. 플레이리스트가 이찬혁의 '멸종위기 사랑'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사탕을 까서 입에 넣는 순간, 모든게 변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너무 힘들어서 였나, 혈당 스파이크 때문이었나. 분명 아니었다. 무언가 변했다. 그것은 응원에 대한 감사함과 감동에 대한 감정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너무나도 진심이었다. 나는 그냥 뛰는 것 뿐인데, 이들은 아무 조건없는 응원을 보내준다. 처음엔 신기하다가도, 이상하다가도, 이제는 너무 감사하고 미안했다. 또 놀란건 급수대에서였는데, 중학생정도 되어보이는 친구들이 열심히 물을 따르고 있었다. 우리가 물을 마시고 뛸때면, 우렁차게 “간바레!!” 외친다. 이들의 외침은 점점 더 간절해진다. 힘껏 물을 따르고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그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고 비장하다.


제목 없는 디자인 (9).png
IMG_7178.JPG
제목 없는 디자인 (8).png


그 감사함의 감정은 이내 내면의 억눌린 감정들의 문을 열어젖혔다. 사실 나는 3년동안 회사생활을 하며 내 억눌린 감정들을 외면해왔었다. 수없는 무력감과 분노, 답답함들을 그저 묵묵히 쌓아왔다.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겪는 것이고, 상당히 수직적인 분위기를 체득해가며 무식하게 받아내는게 미덕이라고 생각해왔다. 식장까지 잡고 미래를 약속했던 여자친구와 모종의 이유로 6년 연애의 끝을 고했다. 나는 감정을 마주하고 해소하는게 아니라 어쩌면 계속 외면해왔다. 다른 사람으로 잊어보려고도 하고, 방황의 핑계로 삼기도 하고, 그냥 시간을 보냈다. 30 킬로미터를 달리고서야 비로소, 나는 내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똑똑히 보았다. 커져가는 불안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마주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나를 응원해준다. 언어가 다른 그들의 응원소리였지만, 나에게는 마치 이렇게 들렸다. ”당신, 잘해왔어.“ ”잘 살고 있어.” “괜찮아.” “힘내서 가보자.“ 달리기는 뇌의 스포츠라고, 움직이는건 다리뿐만이 아니다. 손상되었던 내 뇌 신경세포가 다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마음 깊숙한 곳까지 잠수를 하고, 다시 힘차게 수면으로 올라왔다.


이제 10km 남았다. 희한하게 오히려 힘이 났다. 얼마 안 남아서 그랬던 건가. 너무 힘들어서 정신이 나가버린건가. 다리가 다시 움직여졌다. 오르막은 걷고, 내리막은 뛰었다. 목적은 명료했다. 이제 눈에는 독기가 가득하다. 머릿속에는 자기확신으로 가득찼다. ‘거의 다왔다.','10km면 기어서도 간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파도는 거세졌다. 이제 바닷길에서 논밭을 뛰고 있다. 어느정도는 제정신이 아니다. 오히려 1km, 1km이 빨리간다.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마지막 1km, 나는 거의 전력질주했다. 오월 오일의 'Cherry Roman Candle' 을 들으며. 피니쉬.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아주 짜릿했다. 어라, 그런데 생각보다 기쁘지는 않네. 여튼 길고 긴 여정이 끝났다. 울고 웃고, 뛰고 걷고, X도 싸고.


스크린샷 2026-03-28 092703.png
스크린샷 2026-03-28 092645.png
IMG_7192.JPG


마라톤은 아마 인생에 대한 가장 적확한 메타포로 생각된다. 흔히 작은 인생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목표에 있지 않다.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든 여정과 고난, 사소한 웃음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그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분투한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마라톤 전과 후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말했던것 처럼 풀 마라톤을 뛰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훈련량이었다. 그럼에도,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나는 나를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해하고 만났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다들 자신만의 마라톤이 있겠지만, 왜 사람들이 마라톤을 마치자 마자 다른 마라톤을 찾는지 어느정도 알겠더라. 마라톤도 사람이 만들고, 하는 스포츠라고 42.195km 딱 뛸만하게 만들어놨다. 꼭 한번 도전 해보시라. 그 속에서 모두 각자와 만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 보시라.


IMG_7211.JPG
IMG_7214.JPG
IMG_7161.JPG


작가의 이전글있는 힘껏 뛰어본 적이 언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