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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댁 Mar 30. 2022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동거

원했든 아니든 이제 가족이니까.

 어릴 적 다리를 물려 크게 다치신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는 아빠와, 여동생과 개에 쫓기다 결국 여동생이 개에 물려 광견병 주사를 맞는 등의 사건을 겪으신 엄마 사이에서 나는 자연스레 반려동물과는 인연이 없는 채로 자랐다. 부모님 두 분 모두 강아지를 싫어하시는 게 아니라, 무서워하셨기에 우리 집은 그 흔한 햄스터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서 지냈다. 어려서부터 늘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니 주변에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친구들도 드물었다. 그런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반면 시골에서 자라며 개, 고양이와 함께 지내던 신랑은 늘 반려견과 함께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혀서 언제나 생각뿐이었고, 현실의 우리 삶도 주변의 도움 없이 부부 단 둘이서 아이 둘을 키워내느라 고군분투했기에, 또 하나의 생명을 들인다는 건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그래도 늘 크로아티아 구석구석에서 열리는 Dog Show를 찾아 가 그 아쉬움을 달래고, 때로는 분양을 받는다며 연락처를 얻어오기도 하는 등 신랑은 늘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고 있었다.  


돌 지난 우리 아들이 보자마자 개 대신 말! 이라고 했던 그레잇 댄(좌)와 아들과 내가 홀딱 반했던 이집트 벽화에 그려져 있는 개 도센지(우)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운명처럼 하얀 레트리버가 우리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강아지도 아니고, 일 년 반 정도 된, 남의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입양하게 된 것이다. 두브로브니크에 있는 한인 민박에서 키우던 개인데, 개를 좋아하는 손님도 있지만 개를 싫어하는 손님들도 있어서 더 이상 키우기가 곤란했던 모양이었다. 얼마 전 애들과 그곳에 머무를 일이 있었는데, 우리 애들이 그 하얀 개를 엄청 따르고 좋아했던 참이었다. 가뜩이나 마음 약한 신랑인데, 개가 오갈 곳이 없게 될 것 같게 되자 측은한 마음에 자기가 데려가 키우겠다고 덜컥 질러놓은 것이었다. 내게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상황애 애들을 앞세워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해댔다. 나는 그 어떤 마음의 준비도 못했는데, 자그마한 강아지도 아니고 20kg이 넘는 대형견을 집으로 덜컥 데려오다니 기가 막혔다. 크로아티아에 처음 왔을 때는 동네 산책을 하다 보면 길거리 여기저기 목줄도 없이 돌아다니는 대형견을 자주 만나는데, 그럴 때마다 얼어붙어서 길도 못 가고 서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다 큰 커다란 개와 오늘부터 같이 살라니 황당할 뿐인데, 아이들은 그저 좋아서 온 첫날부터 개 옆에 이부자리를 깔고 아예 같이 누워있는 것이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아, 나 하나 눈 질끈 감으면 세 남자가 행복하겠구나, 싶어서 두 손 들고 에라 모르겠다, 알아서 키워보라고 허락해버렸다. 


아예 이부자리를 가져와서 두브(개 이름) 곁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의 모습


 근데 뭐 내가 허락 안 하면 어쩔 것인가. 이미 저렇게 우리 가족의 삶에 폭 들어와 버렸는데. 아이들은 상상 이상으로 새로운 식구를 좋아했고, 두브도 우리 집에 잘 적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반려동물과는 생활해 본 적 없는 나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다. 무수히 날리는 털부터 배변 교육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고, 내가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우리 집으로 온 개는 두브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두브로브니크의 두브와 하얀 두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전해 들었다. 우리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고, 가뜩이나 새로운 곳으로 온 가여운 아이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아 그 이름을 그대로 불러주기로 했다. 두부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살면서 여러 스텝들의 손을 탔던 탓에 교육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배변보다 힘든 교육이 식사 교육이었다. 오고 가던 손님들이 예쁘다며 주던 사람 밥상의 고기들과 갖가지 반찬들, 개를 좋아하던 스텝과 지낼 때에 그저 다 허용되어 이것저것 먹던 버릇들, 반면에 개를 좋아하지 않는 스텝과 지낼 때에는 눈치를 보며 지내던 기억들, 집 밖으로 돌며 길거리 쓰레기통을 뒤지던 버릇들 등 고쳐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게다가 이미 다 커서 온 터라 새 주인의 말이 권위 있게 들릴 리 없었다. 사람 밥과 고기 등을 좋아해서 건식 사료는 쳐다보지도 않아서 습식 사료를 먹이느라 일주일에 한 번씩 캔 사료를 사다 날랐다. 무거운 캔들이 힘도 들고 돈도 너무 많이 들어서 고민하던 중, 두브의 털이 심각하게 빠지기 시작했다. 동물 병원을 데려가니 건식 사료를 주식으로 먹여야 개가 오래 건강할 수 있다며 식습관을 고치길 권유받았다. 그날로 건식 사료만 남기고 모두 치웠버렸다. 두브는 굉장히 순하고 겁이 많은 편인데, 쉽게 포기할 줄 알았던 녀석이 장장 3일을 꼬박 굶었다. 서서히 걱정이 되어 아, 그만두어야 하나 갈등하던 하던 다음 날 아침, 사료가 깨끗이 비워져 있는 걸 보고 너무나 기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두브는 하나씩 우리 가족과 맞추어 나가며 우리의 삶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숨 돌리려던 찰나 찾아온 현타는 털이었다. 계절이 넘어가는 시기에 빠지는 녀석의 털은 상상을 초월했다. 유선 청소기로는 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 그 길로 나서 무선 청소기를 사 가지고 들어왔다. 반나절이면 마룻바닥에는 새하얀 러그가 생겼다. 자기 전 청소기를 돌려도 다음 날 아침이면 아침 햇살에 빛나는 하얀 털 무더기가 나를 반겼다. 두브는 우리 방 앞에서 곤히 잤는데 도대체 털들은 어디서 생겨난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모든 옷은 아무리 돌돌이로 제거해도 하얀 털 한 두 가닥씩은 꼭 붙어 있었다. 건조기에는 개털과 먼지가 반반씩 섞여 나왔다. 이 털들을 박멸하리라 무섭게 청소해대던 나도, 시간이 지나며 그냥 그러려니 무뎌져 갔다. 그냥 하얀 털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새로 사 온 청소기를 돌리자마자 그득한 털에 기가 막혀 남겨놓은 사진.


 같이 지내면서도 나를 행여나 물면 어쩌나 싶어 직접 손으로 간식도 주지 못하고, 얘가 내 말을 듣지 않을까 두려워 데리고 산책도 나가기 무서워했었던 내가 두브와 산 지도 7년 차로 들어섰다. 어떤 글을 보니, 강아지 데려오면 버려 버린다던 아빠가 버린다던 그 강아지를 끌어안고 주무신다던데, 내게는 그런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우리 두브와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다.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어떤 날엔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지 않고, 아직도 우리 둘만 길을 나서려면 조금 긴장되는 여전히 그런 사이로 남아있다. 하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던 개 간식 코너를 빼먹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면 두브 물그릇부터 챙기는, 용변 잘 가리는 아이가 설사라도 하면 코 찌푸려지는 게 아니라 어디가 아픈가 걱정부터 되는, 그 정도의 개엄마로 변했다. 두브는 그냥 그렇게 우리 식구가 되었다. 객이 아니라.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한, 있는 게 당연한 그런 사이가 되었다.


 두브는 우리 가족의 모든 순간에 함께 있다. 처음에는 뒤치다꺼리가 너무 힘에 부쳐서 개를 덜컥 데려 온 신랑을 원망하기도 하고, 나는 왜 남들처럼 예쁜 강아지 시절부터 키우지 못하냐고 투덜거렸었다. 소파를 다 물어뜯고 발톱으로 문을 긁어놓아 집주인에게 2000유로를 물어 줄 때도, 개가 너무 짖는다며 항의를 받아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되었을 때도, 늘 그러면 우리 식구인데 어떡해? 라며 묵묵히 책임을 지던 신랑. 우리와 살기 전, 하루 종일 홀로 떠돌아다니던 습관이 남아 집을 나가버린 두브를 밤새 찾아다니며 속상함과 원망이 뒤섞이던 기억들. 부끄럽지만 나는 그런 순간들에 그냥 이 개와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왜 내가 책임져야 하지?라고. 힘든 이 모든 걸 왜 내가 겪어내야 하는지 왜 내가 책임져야 하는지 화가 났었다. 내가 키우겠다고 데려온 순간 내가 너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 건데, 나는 그걸 몰랐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예뻐하는 것과 책임지는 것은 다르다고. 내가 더 이상 키우기 싫고, 힘든 거지 내가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된 이유 같은 건 없다고. 그래서 사실, 우리 두브가 가끔 더 짠하다. 우리 만나기 전의 생활이 기억이 날까? 그리울까? 싶어서.


 우리는 그냥 그렇게 함께 지내고 있다. 나는 여전히 개가 예뻐 죽겠는 애견인이 아니다. 새로운 식구를 들이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그런데 두브가 없는 우리 집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이름 한번 부르지 않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그냥 우리는 서로 그 자리에 있는 거다. 뭐, 두브 역시 내가 엄청 좋은 건 아니니까. 내가 들어오면 누워있다 고개를 쓱 들어왔어? 하고 쳐다보고 만다. 아빠나 오빠들이 오면 꼬리가 부서져라 흔들며 뛰면서. 그래 봐라, 너 그래도 니 간식 사 오는 건 나뿐이다.


  

바다는 좋아하지만 바다 수영은 무서운 우리 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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