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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댁 Mar 26. 2022

일본 사람? 에서 한국 사람?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부터 오징어 게임까지 이르는 시간들을 지나며

 2008년 예비 신랑이 일하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공항에 내렸을 때의 기분이 생생하다. 작디작은 비행기에 올라 타 비행기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왠지 불안한 마음이 꿈틀 했었는데, 공항은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여권 검사하는 곳에서 밖의 마중 나온 사람들이 보이는 것이었다. 여권 심사도 하기 전인데, 먼발치의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마중 나와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안보였다 했다. 여권 검사를 하고 나오면 짐을 기다리면서 위가 뻥 뚫린 유리 안전문 사이로 대화가 가능했다. 아니 그래도 유럽인데, 아니 내가 결혼하고 살아가야 하는 나라인데, 이거 좀 너무 후진국 아니야?라는 생각에 좀 불안해졌다. 작은 공항의 규모에 맞게 내가 도착한 시간에는 우리 비행기 승객뿐이었다. 텅텅 빈 공항에 양 끝으로 있는 까페는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모두 문을 닫은 뒤였다. 오랜만에 연인을 만난 기쁨도 잠시, 나는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깜깜한 밤중에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집도, 건물도, 가로등도 많지 않은 조용한 동네. 공항에서 자그레브 시내까지는 고작 20분 남짓이면 되었다. 긴 비행에 지친 나에게 비친 자그레브의 첫인상은, 그냥 참, 뭐가 없는 곳이구나,였다.


 그런데, 서로가 낯설긴 피차 마찬가지였다. 자그레브도 몇 안 되는 까만 머리 아몬드 눈을 가진 동양 사람이 돌아다니는 걸 낯설어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몇 안 되는 차이나 타운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더니, 정말 외지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동양인은 가끔 찾아볼 수 있다 쳐도, 동남아 사람들이나 피부가 까만 아프리카 계열의 외국인은 정말 드물었다. 인종차별이 심해서는 아니고, 외국인이 정착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유고 시절 공산주의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는 나라, 사람들은 순하지만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민족, 여느 유럽과는 다른 분위기의 유럽 속의 또 다른 유럽이었다. 


 만으로 아직 스물다섯, 갓 스물일곱이 되던 해 봄이 채 오기도 전에 결혼해, 꼭 일 년 뒤 아기를 가졌더랬다. 한국에서도 꽤 빠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 건데,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물여덟에 배 부른 채로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돌아다니니 현지인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더군다나 유럽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어려 보이는 동양인의 외모도 현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 한 몫했다. 가끔은 부른 배로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산책을 하다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가와 너 몇 살이냐고 묻기도 했다. 옆의 남편을 이상스레 쳐다보면서... 아마도 어린 나이에 끌려 온 불쌍한 동양인 여자쯤으로 생각했던 거 아닌가 싶다. 지금은 웃으며 추억하지만, 그 당시 신랑은 꽤 기분 나빠했었다. 그럴 때에도 우리가 좀 멀끔히 하고 나가면, "너 일본에서 왔니?" 하고 묻고, 집에서 대충 머리 질끈 묶고 초라한 행색으로 나가면 "중국사람이지?" 이렇게 물었더랬다. 그 어느 물음에도 한국은 없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북한에서 왔는지, 남한에서 왔는지 물었었다. 과거 유고연방이어서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북한을 더 가깝게 듣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나에게 북한에서 왔냐니, 처음엔 기가 찰 뿐이었다. 


 그런 던 중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흔들면서 그 여파가 조금씩 크로아티아까지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그 인기는 실로 대단했는데, 어느 날은 크로아티아 라디오 방송에서 강남스타일 가사를 크로아티아어로 번역을 해서 마치 시처럼 낭송해 주는 걸 듣게 되었다. 웃기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참 복잡한 기분이 들었더랬다. 그 후로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가면 종종 너 한국사람이니? 하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화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여기도 삼성의 가전제품이나 핸드폰을 최고로 쳐주고, 현대기아차를 많이 타고 다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냐고 물어보는 경우는 적었었는데, 노래 단 한곡이 미치는 파급력은 대단했다. 


 그러던 중 "꽃보다 누나"의 크로아티아 촬영으로 크로아티아가 핫한 여행지로 부상하면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무서운 속도로 늘어났다. 점점 늘어나는 관광객들로 거리에서 한국 사람 보는 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중국 관광객을 비롯한 동남아 여행객도 급증해서 거리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돌아다니게 되었다. 한식당을 경영하는 나는 덕분에 바빠졌다. 한식은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특히 동남아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이었다. 이 또한 K 드라마 덕분이었다. 사진이나 번역된 한국어를 가져와 떡볶이나 치킨, 심지어 보리차까지 찾는 외국인이 늘어났다. 좋아하는 가수 어느 누가 먹었던 음식,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즐기던 음식 등이었다. 물론 크로아티아의 어린 친구들도 K POP에 빠져서 춤을 연습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등 열정적이었다. 문화의 힘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 변화의 중심에서 한국인으로 해외살이를 하는 나는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흔히 말하는 국뽕이 차오르는 기분이랄까? 아마 요즈음의 해외 살이 하는 한국 사람들의 모든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한식당 크로케이에 방문해 주신 박찬욱 감독님(좌)과 자그레브 영화관에서 상영된 그의 영화 아가씨(우)


 2016년에는 영화 '아가씨'가 크로아티아 극장에 정식으로 상영이 되기도 했었다. 크로아티아 영화관에 걸린 포스터를 보면서 뭔가 울컥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넷플릭스로 오징어 게임을 보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 한창 유행일 작년에는 아이 학교에서 공지 이메일이 날아왔다. 학생들이 '오징어 게임'을 보지 않도록 지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몰래몰래 애들끼리 보여주고 공유하는 모양이었다. 저학년 아이들이 시청하기에는 부적절한 내용이니 집에서 넷플릭스 비밀번호를 잘 관리해달라, 는 내용이었다. 새삼 그 인기가 실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종종 학교 친구들이 우리가 한국을 갈 때,  BTS나 블랙핑크의 앨범 등을 사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했지만 그냥 관심 있는 몇 아이들이려니 했었었다. 지금은 아이가 가끔 들고 가는 카카오 프렌즈의 굿즈들이나 학용품 등은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그래서 근래에는 한국을 다녀올 때, 친구들 생일선물용으로 애들이 좋아하는 학용품이나 미니 선풍기 등을 사 오기도 한다. 그런 작은 선물들이 현지에서 사는 비싼 선물들보다 훨씬 반응이 좋다.


 지금은 넷플릭스를 틀면, '오늘 크로아티아 인기 TOP 콘텐츠'에서 한국 작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며칠 전까지는 크로아티아 중앙 광장 백화점 전면에 샤넬 향수 광고 모델로 '정호연'씨의 얼굴이 크게 걸려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몇몇 음식점에서 Korean 메뉴를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기껏해야 일식이나 태국의 팟타이 정도가 전부이던 이곳에 한국식 치킨이라던가 한국식 소스라는 메뉴가 종종 보인다. 맛이 있고 없고의 문제나 진짜 한국식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메뉴가 등장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현지에서 실지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경험에 비추어봐도, 크로아티아 현지 손님이 눈에 띄게 많이 늘었음을 실감한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KPOP을 좋아하는 어린 친구들이나 그런 자녀의 생일을 맞아 같이 오는 가족 손님들이 드문드문 있었던 반면, 근래에는 한식을 경험하려는 크로아티아 현지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불과 2,3년 사이 한국이라는 국가의 입지가 해외에서 얼마나 달라졌는지 실제로 체감이 되고 있다. 해외 살이 하는 한국인들이게는 반갑고 기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해외에 나가면 누구가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그냥 우스갯 소리가 아니어서 이러한 변화들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실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찌되었든 이곳에서는 이방인이니까. 북한에서 왔니?라고 질문을 던지던 사람들이 나에게 가보고 싶은 나라 한국에서 왔냐고 묻는 2022년이다. 대한민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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