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힘을 벗어난 재앙에 대한 두려움
단단하던 대지가 한번 뒤틀리자,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길게, 그리고 자주 나타났다. 늘 발 밑에서 흔들림 없이 나를 지탱해주던 내 세상의 기반이 수시로 흔들린다는 사실은, 단순히 신체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재앙에 대한 두려움은 정서적 불안을 야기했다. 모든 미디어에서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어쩌면 제2의 지진이 한 번쯤 더 올 수도 있다고 예측해댔다. 그러나 일어날 수도 있는 재앙을 예견만 할 뿐 그에 대한 대책도 해결책도 제시해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 불안한 날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예견들을 뒷받침해주듯이 몇 달에 걸쳐 크고 작은 여진들이 가끔 우리를 흔들었다. 불안해진 사람들은 지진 알림 앱을 깔기 시작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불안한 마음을 덜기 위해 설치한 그 앱 때문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지진 알림 앱은 아주 작은 지진에도 경고 문자를 보내왔고, 사람들은 느끼지 못했지만 있었다는 작은 여진들에 늘 불안해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학교에 가는 대로, 신랑이 출근을 하면 출근을 하는 대로, 가족이 떨어져 있는 시간들 동안 늘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한 채 지내야 했다. 그렇게 서너 달의 시간을 보내고, 여느 때처럼 진도 2.3의 지진 경고 알림이 울린 날 아침, 나는 지진 앱을 내 핸드폰에서 삭제했다. 이렇게 사는 건 나 스스로 불안을 안고 사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앱을 삭제하면서, 흘러가는 시간의 도움으로 불안했던 나날들의 기억을 지우고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2020년 여름 락다운이 해제되고 국경도 다시 열리면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여름휴가가 끝나자 무섭게 치솟는 확진자 수에 다시 유럽은 국경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도 국경 봉쇄에 이어 도시 간 이동금지라는 강수를 두었다.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새해는 바닷가로 넘어가 바다에서 떠오르는 새 해를 보며 맞이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발령된 도시 간 이동금지에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아쉬운 마음으로 연말을 어찌 보내나 속상한 마음도 잠시, 이 모든 상황을 잊게 할 만한 사건이 터졌다.
신랑은 출근을 하고, 아이들은 방학을 맞아 느지막이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2020년 12월 29일 오전 11시 30분경, 빨래를 개던 내 몸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옆 방의 아이들에게 달려가니 텔레비전이 위아래로 떨어질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있는 애들 머리 위에 쿠션 한 움큼을 쌓아 올리고 꽉 끌어안았다. 지난번엔 이렇게 흔들리다 말았는데, 도저히 멈추지 않는 진동에 두려움이 점점 커지며 지금이라도 뛰어 나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지진이 멈췄다. 멈추자마자 밖에 나가 있는 신랑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가 먹통이었다. 불안감이 커지면서 아이 둘과 우리 강아지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인터넷으로 확인하니 건물이 무너져내려 연기가 자욱한 끔찍한 사진들이 올라왔다. 연락되지 않는 신랑 때문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신랑이 연락이 안 되는데 무조건 어디를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우선 언제든지 나갈 수 있게 애들을 준비시키고 업데이트되는 뉴스를 찾아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 지진은 자그레브에서 60km 정도 떨어진 페트린냐 Petrinja 도시가 진원이라 상대적으로 자그레브의 피해는 적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했다. 밖에 나가 있던 신랑 생각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데, 올라오는 페트린냐의 피해 사진들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든 나 자신이 미안하고 무서웠졌다. 인간이란 뭘까. 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하는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안도하고 무엇을 미안해하는 것인지. 극도의 공포를 야기하는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재앙 앞에서야 삶의 본질을, 인간의 내면을 들여야 볼 수 있게 된다.
30여 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신랑과 연락이 닿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했다. 미팅이 있었던 사무실 건물 앞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건물이 좌우로 마구 흔들리더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는 킹덤에 빠져있었는데, 순간 킹덤 영화의 한 장면인 줄 알았다며 좀비라도 나왔나 겁이 났었다고 우스갯소리로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나의 불안이 전화기 너머로 전해졌던 것인지, 평소에 실없는 소리는 통 하지 않는 신랑이 하는 말에 좀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에서 연락이 막 오기 시작했다. 처참한 페트린냐 사진과 함께 크로아티아에 지진이 났다고 뉴스에 속보가 뜬 모양이었다. 우리는 다 잘 있다 안심시켜 드리고 한숨을 돌렸다. 페트린냐도 피해규모에 비해 다행히 사상자는 거의 없다는 속보가 올라와서 안심했다.
지진 때문에 크로아티아는 도시 간 이동 금지령이 풀렸다. 덕분에 우리는 계획한 대로 바다로 떠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자꾸 흔들어대는 여진 때문에라도 자그레브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주변의 자그레브 친구들은 모두 자그레브 지역을 벗어난 다른 곳에 있는 친인척 집으로 떠나는 추세였다. 한 해의 시작과 끝에 지진을 겪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자그레브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한 심정이었다. 내가 어찌할 수도 없고 예견할 수도 없는 재해란 알 수없고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긋지긋하던 2020년의 마지막을 조용한 바닷가에서 보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