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똑같을 수 없잖아. 괜찮아, 그것도 정상이야.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어디서든 자유롭게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이었고,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아빠들이었으며, 아가가 자는 유모차를 옆에 두고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부모들이었다. 나름 한국에서는 참 자유분방한 사고를 한다고 주변인들이 나의 개방성(?)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는데, 초보 육아맘이 들어온 현지 육아의 세계는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엄마란 자고로, 아빠란 자고로, 부모란 자고로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딱 꼬집어 얘기할 수 없는 암묵적인 통념들이 아예 없는 곳이랄까. 거부감도 잠시, 그냥 편안한 기분으로 자연스럽게 나의 삶인 동시에 아이의 부모로서의 삶으로 녹아들 수 있는 분위기여서 편안하게 엄마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첫 아이를 낳은 병원에서는 동양 아가의 출산은 처음이라서, 온 병원의 간호사들이 구경을 왔더랬다. 책에서만 보던 몰골리안 스팟-몽고반점을 실제로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그녀들은 처음 보는 아시안 베이비의 까만 머리부터 까만 눈동자까지 신기해하고 예뻐했다. 우리가 백인 아가들을 보면서 갖는 다름에서 오는 신비한 아름다움을 그녀들 역시 자기들과는 다른 우리에게서 느끼는 바였다. 나는 심한 입덧으로 고생을 해서 임신 25주 차에 39킬로를 찍고 출산 당시 몸무게가 57키로였어서 가뜩이나 볼륨 없는 가슴은 주변의 풍만한 그녀들과 비교되는 바람에 더 쪼그라져 보였다. 보기에만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 작은 가슴에서는 출산 후 이틀이 지나도록 젖이 나오지 않았다. 아가는 울고, 가슴도 아프고 조바심도 났던 나는 내 병실을 수 없이 들락거리는 간호사들에게 매번 젖에 대해 물어봤지만, 그녀들은 한결같이 웃는 얼굴로 늘, 'It's normal!, don't worry'라고 말할 뿐이었다. 갓 태어난 아가들은 2-3일 정도는 안 먹어도 된다면서, 분유 먹일 필요 없다고, 자꾸 물리면 젖이 돌 거라며 쿨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체중이 줄어든 아가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의사와 간호사는 날 보며 네가 모유수유를 원하면 그냥 지금처럼 모유만 먹이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젖이 안 나온다는 걱정이나, 많이 들어봤던 가슴 마사지 혹은 보충 수유에 대한 이야기 등은 일절 언급이 없었다. 단지, 응 다 괜찮아, 정상이야. 원래 처음이 좀 힘들어. 다 좋아. 잘하고 있어.라는 말들 뿐. 주변의 출산 동기 엄마들은 모두 씩씩하게 걸어 다니며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불안했다. 어쩜 이렇게 아무것도 안 가르쳐 주지? 어쩜 이렇게 소홀하지? 어쩜 이렇게 대충이지? 모든 게 의문뿐이었다. 조리원이라든지 가슴 마사지라든지 아가를 위한 특별 용품 같은 건 없었다. 출산 후 3박 4 일의 입원 기간은, 건강한 출산을 축하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회복의 시간들이었다. 부산스럽고 요란함 없이, 새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고 새로운 삶을 준비할 뿐이었다. 나는 3박 4일의 입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게 유연하고 허용적이었던 병원에서 유일하게 단호하고 유난스러웠던 절차는, 아가를 데려가려면 무조건 카시트를 가져와야 한다는 규정이었다. 카시트에 아가를 태워야지만 퇴원이 허락되었다. 그렇게 모두 괜찮다며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던 병원 관계자들도 아가를 태워 갈 카시트 앞에서는 타협이 없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분명한 기준이 존재했다.
나는 조리원도, 가슴 마사지도, 산후 도우미도 없이 그 시절을 조용히 넘겼다. 엄마가 와주셨고, 신랑이 5시가 땡 하면 집으로 돌아와 주었다. 당시에는 뭔가 서운했었다. 남들 다 한다는 만삭 사진은커녕 아가를 낳고 조리원이니 가슴 마사지니 응당 해야만 할 것 같았던 그 모든 절차를 뛰어넘긴다는 게 나만 대접받지 못하는 것 같고 서러웠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길게 느끼기엔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바빴다. 작디작은 생명체는 어른 셋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갔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유난스러운 과정 하나 없이, 어떤 면에서는 서운할 정도로 그냥 일상으로 서서히 돌아갔다.
돌이켜보면, 그런 자연스러운 과정들 덕분에 나는 소위 말하는 산후 우울증 등의 울적한 기분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던 게 아닌가 싶다. 인터넷으로 수도 없이 찾아보던 수많은 변수들과 걱정되는 상황들이 닥칠 때마다, 여기 간호사들의 쿨한 '괜찮아' 한마디에 조바심 없이 기다릴 수 있었다. 젖이 3일을 나오지 않는데 괜찮다며 자연스러운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젖이 안 돈다며 울며 마사지받고 보충 수유하는 엄마들의 경험담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물론, 아시아 여성과 이곳 서양 여성은 신체적 다름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유수유를 비롯한 모든 문제 해결의 가장 큰 키 포인트는 바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지 않은가 싶다. 이곳에서도 분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도 많다. 그냥 그 사람의 선택이고 상황일 뿐, 그 사람의 개인사이자 개인 결정이지 타인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좋게 보면 따뜻하고 정 많은, 타인에게도 관심 많은 한국의 문화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관심이 아닌 오지랖이 되어 타인의 삶에 불필요한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지 않는가.
세상 모든 일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동전의 양면처럼, 좋기만 한 일도,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는 게 짧은 인생을 살아오며 내가 배운 인생 이론이다. 당장에는 나쁜 일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그렇게 된 편이 나았던 경험도 많았다. 반대의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래서 크게 기뻐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 이해가 가는 나이가 되었다. 대신, 주어진 것에 더 감사하는 마음이 커졌다.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 나는 이곳에서 한국 기준으로는 너무나 초라하기만 한 임신과 출산을 경험했지만 대신 모든 상황을 무던하게 넘길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웠다.
늘 그렇다. 지나고 나면 별 일 아닌데, 그 사건 한가운데 서 있는 나는 세상이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으로 헤쳐간다. 그럴 때 생각나는 말이 있다. 처음이라 그렇다고. 임신도, 출산도, 모유수유도, 그 모든 것이 그 당시의 나에게는 처음이었니까. 처음을 겪어낸 내가 다시 돌이켜 보면 별 일 아닐 수 도 있는 거겠지. 어느새 처음인 것보다 처음이 아닌 것들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었다. 어디에선가 첫 임신과 출산 앞에서 쏟아지는 정보들 안에서 불안해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면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몸이 아프지 않고 크게 이상이 없다면, 남들이 말하는 것과 조금 다른 나,
그것도 다~정상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