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라떼? 카바 스 미예콤 Kava s mijekom
그런 날이 있다.
문득 눈을 떴는데, 오늘 아침은 생전 잘 마시지도 않는 까페라떼가 한잔 하고 싶은 거지. 라떼라고 해야 하나? 여기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주로 마시는 카바 스 미예콤Kava s mijekom, 뜻은 까페 라떼가 맞긴 하는데, 또 한국의 그것과도, 이탈리아의 그것과도 오묘히 다른 그냥 카바 스 미예콤. 마침 가게도 쉬는 날이고, 신랑도 바쁜 일정 없고, 딱이다 싶어서 얼른 나가서 커피 한잔 하고 오자고 물었더니, 내 맘과 다르게 그는 시큰둥~ 달갑지 않아 하는 뜨뜻미지근한 표정인 거지.
그럴 수 있지. 내 맘과 다를 수 있지. 그런데, 그냥 귀찮은가 보다~ 하면 되는데 또 왜 그리 그게 서운하고 섭섭하고 커피 한 잔 마시러 가는 게 구차하고 내가 외로운 것 같고, 아주 그냥 세상의 온갖 궁상맞은 생각이 다 찾아오는 거지. 아무 일도 아닌데. 아니, 급한 메일만 처리하고 가자고, 가지 말자고 거절한 것도 아닌데. 아니, 또 뭐 거절하면 어때. 그깟 커피 한 잔인데. 아니면 집에서 버튼 하나 누르면 내 손가락이 누르는 순간 신선하게 커피콩이 갈아져 향긋하게 나오는 세상 비싼 커피 머신도 떡 하니 있는데. 우유 까짓 거 귀찮아도 따르기만 하면 알아서 몽글몽글 구름 같은 우유 거품을 딱 만들어 주는데.
그런데 또 이게 커피 한 잔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 기분이라는 거지. 그냥 서운하고 섭섭하지만, 그렇다고 뭘 그렇게 따져 물을 것도 안 되는. 햇수로 14년 차가 넘어가는 중년 부부인데 어디 신혼처럼 막 토라지고 그럴 열정이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마음 한편이 섭섭한지. 내 마음은 누가 알아주나 싶고. 그깟 커피 한 잔.
내가 운전을 못 하나, 커피 사 마실 돈이 없나. 그렇다고 싸우긴 싫고 구차하고 해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차 키를 들고 명랑하게 나와서 내 최애 카페에 앉아 그놈의 카바 스 미예콤 한 잔에, 훈제 연어에 크림치즈 잔뜩 발린 베이글 하나 주문하고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니, 에이, 이게 뭐라고. 웃음이 픽 하고 나오는 거지.
참 별 거 아닌데.
그런 날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가슴에 행복이 차오르는 날이 있고, 방금 설거지 끝내고 식기 세척기 돌리고 자러 들어 간 안방에서 발견되는 컵 하나에 짜증이 차오르는 순간이 있다. 애가 게임에 정신이 팔려서 우유를 쏟아도 컵이 안 깨지고 안 다쳤으면 되었다는 온화한 나인 날도 있고, 쓰고 뭉쳐 걸어 둔 수건에 화가 단전에서부터 훅 올라오는 사나운 나인 날이 있다. 그 모든 순간들의 나는 같은 나인데 매 순간 다르다. 오늘의 나는 괜스레 서러운 나였었는지도.
인생은 참 재미있다.
야무지게 베이글 하나를 다 먹고 옆의 마트에 들러 한아름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 트렁크에 짐을 싣고 문을 닫고 나니, 차 문이 요지부동이다. 트렁크는 열렸었는데, 짐을 싣고 문을 닫는 순간부터 아무리 애를 써도 잠긴 차 문은 열릴 기미가 없다. 며칠 전부터 스마트키 배터리가 낮다며 교체하라는 경고등이 들어왔었는데 배터리가 하필 그 순간 운명을 다한 것이다. 한 짐 가득하던 장바구니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차에 다 실렸는데, 나만 차 밖에 덩그러니 남았다. 별 수 있나. 집에 있는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차 문이 안 열려."
신랑이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마디를 한다.
"기사님이 와야 집으로 오시는 건데, 내가 잘못했네."
내가 대답했다.
"그러게 꼭 일을 두 번 하더라. 그냥 내 말을 들어. 몸 고생시키지 말고."
14년 차쯤 되면 말 한마디로 서로를 슥- 보듬을 수 있는 능력치도 생기고 그러는거지. 그렇게 나의 그런 하루가 지나가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