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
크로아티아에, 여름이 왔다.
예년보다 일찍, 강렬하게 돌아왔다. 7월 말은 되어야 느낄 수 있는 불볕더위가 6월 중순부터 찾아왔다. 햇빛이 강렬하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서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지중해성 기후가 무색하게 35도가 넘는 무더위는 푹푹 쪘다. 밤에는 서늘한 바람에 얇은 카디건을 입어야만 했었는데, 때아닌 열대야로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더위가 싫기보다는, 반가웠다. 워낙에 여름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중 가장 좋아하는 건 크로아티아의 여름이니까.
크로아티아는 우기가 시작되는 가을부터 서서히 그 빛깔이 바랜 회색의 날들이 시작된다. 쌀쌀해지는 바람과 함께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이 스산하다가 점점 짧아지는 해가 섬머타임이 해제되면서 오후 4시경이면 깜깜한 밤이 되는 초겨울의 날씨가 시작된다. 그럼 그야말로 내 우울한 기분이 절정이 다다르는 것이다. 이곳의 겨울은 한국의 겨울과 다르게 뭐랄까, 스산하게 춥고 우중충하다. 유년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내게 한국의 겨울은 따뜻한 이불속에서 귤 까먹고 코코아 마시면서 책을 읽던 기억, 밖은 볼이 에리게 매섭지만 안은 포근하고 훈훈해서 창밖에 몽울몽울 맺히던 물방울을 보며 안도감과 같은 따뜻함을 느꼈던 푸근한 기억들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크로아티아의 겨울은 영 달갑지 않은 손님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사실, 크로아티아의 겨울도 눈이 소복이 내리는 날은 정말 아름답다. 나무가 많이서 나무 곳곳에 알알이 핀 겨울 눈꽃을 보고 있노라면 한적한 이곳의 아름다움에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무래도 크로아티아의 겨울이 달갑지 않게 된 것은, 크로아티아의 여름을 너무 좋아하는 상대적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나는 4월의 끝자락에서 살짝 여름 냄새가 스며있는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아, 드디어 오는구나,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뜨거운 그날들이!
유난히도 쨍한 채도가 높은 파아란 하늘에 눈이 시~원한 녹음이 도처에 널려있어서, 여름의 자그레브는 파랑과 초록의 이미지이다. 게다가 유난히 조경을 잘하고 신경 쓰는 나라여서 도처에서 만날 수 있는 알록달록한 원색의 꽃들이 그 정점을 더한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답게, 여행을 온 수많은 관광객 특유의 들뜬 기분까지 공기에 둥실 실려 더할 나위 없는 생기 넘치는 도시로 변한다. 알록달록 색깔만큼 시원하고 달콤한 젤라또여도 좋고, 머리가 짜릿하게 차가운 생맥주 혹은 기분 좋은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샴페인 한 잔도 좋다. 그 무엇도 크로아티아의 여름과 함께라면 완벽한 한쌍이 된다.
자그레브의 여름도 설레지만, 사실 크로아티아 여름의 정점은 바닷가에 있다. 파란 하늘보다 더 파란 바다와 빽빽한 나무숲의 초록산이 아니라 하얀색의 돌산이 만나는 파랗고 하얀 크로아티아 해안은 언제나 숨이 막히게 아름답고 설렌다. 자그레브에서 차를 타고 바닷가로 향하다 보면, 자다르쯤 도착하면 저 멀리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가 빼꼼 보인다. 그럼 그때부터 우리 차 안은 환호소리로 가득 찬다. 나뿐 아니라 우리 신랑도, 우리 두 아들들도 모두 크로아티아 여름, 특히 바다에 푹 빠져있는 열혈 팬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일 년 내내 늘, 크로아티아 바다 언제 가지? 하는 설렘과 기대로 살아간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크로아티아의 여름은 우리 가족에게 언제나 기쁨과 설렘으로 기억되고 있다. 어쩌면 그런 추억들이 모여 크로아티아의 여름이 행복으로 기억되는지도 모르겠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여름은 파랑과 초록, 크로아티아 바닷가의 여름은 파랑과 하양. 쨍하게 높은 채도의 색감으로 떠올려지는 크로아티아의 여름. 나는 오늘도 그 여름날의 한 복판에서 행복한 하루를 보내며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나의 새파란 여름의 오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