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닝 루틴
모든지 내가 하겠다는 '내가' 병에 걸린 어린아이는 아니었어도, 꽤 혼자 해내는 걸 좋아하고 누가 참견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나는, 내가 제법 혼자 잘해나가는 자립심 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스물하나 어린 여자아이가 밤 12시에 낯선 이탈리아 땅에 떨어지는 데도, 그 흔한 픽업 서비스 한번 신청하지 않고 스스로 씩씩하게 택시를 찾아 타고 유학길을 시작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 가서 아기 낳고 산후조리도 좀 하고 오라는 대도, 나는 낯선 땅 크로아티아에서 애 둘을 낳았다. 크게 돌이켜 보면, 난 참 씩씩하게 자립적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착각했다. 내가 꽤 자립적인 어른이라고. 착각은 뭐, 자유니까.
복이 많았던 건지, 내 뒤에는 늘 누가 있었다. 유학길에는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부모님이 계셨고, 낯선 타지 땅에서 출산과 육아를 겪을 때엔 온갖 궂은일을 맡아해 주던 신랑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난, 그 어느 순간에도 경제적으로 내가 나를 책임졌던 적은 없었다. 내가 겪으며 스스로 대견하다고 착각했던 순간들은,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나를 향한 화살을 다 막아주는 안락한 둥지에서 그저 바둥거렸던 아기새의 오만함이었다.
깨달음은 팬데믹 시기에 왔다. 이전에도 순간순간 스쳐가는 감정은 있었어도, 그래도 나의 투정을 받아주는 주변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냥 나를 내 멋대로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올 수 있었다. 펜데믹과 락다운으로 사람을 집 안에 가두자, 나는 마치 은둔하는 철학자 마냥 이 생각 저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은 괜찮았다. 너무 바쁘게 살아온 터라, 앞날이 걱정되고 당장에 놓인 가겟세부터 어찌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숨 돌릴 틈도 없이 달려오던 일상에서 갑자기 주어진 휴가 같아서 좋기도 했다. 게다가 오히려 너무 큰 충격은 사람을 될 대로 되라지~라는 심정으로 몰아넣어서, 갑자기 사방이 막히니까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도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며칠은 멍~ 하니 이게 뭔가 싶어서 넋 놓고 지내다가, 이렇게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밀린 집안일부터 해나가게 시작했다. 집에만 있다 보니, 눈에 거슬리는 잡다한 일들이 참 많았다. 처음에는 집을 정리한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나왔다. 그동안 너무 신경 쓰지 못했던 삶의 일부분을 정리한다는 생각도 들면서 이참에 쉬어가지 뭐~라는 편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사실 시터에게만 맡겨두고 애들에게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었는데, 이 참에 그동안의 미안함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처음 며칠은 꽤 잘 버텨내었다.
길어야 두어 달일 것이라고 여겼던 예상과는 달리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긴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했고, 집에서'만' 보내야 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도 아니라 그냥 나는 그야말로 '그냥' 집에 머물러야만 했다. 최근 몇 년을 정말 바쁘게 지내왔던 터라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손 놓고 기다려야만 한다는 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식당 문을 연지 6년, 이제 자리를 잡아 정말 올해에는 돈벼락 맞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 2년 장사가 잘 되던 시점이었다. 이 모든 것이 정말 화가 났다. 그동안 내가 고생했던 결실이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그 정점에서 코로나라는 대항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악재가 나를 덮쳤다. 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지물 인간이었다.
2021년 1월 어느 날 새벽, 나는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마음은 새벽 5시에 일어나고 싶었지만, 불가능을 도전하다가 그만두는 게 두려웠던 나는 현명하게도(?) 욕심내지 않고 6시 30분부터 시작해서 시간을 차츰 줄여나갔다. 2주 차에 5시 50분으로 기상시간을 셋업 했다. 그렇게 나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5시 50분에 일어나면 곧장 양치와 세안을 하고, 애들 잠자리 한번 봐주고 거실로 나와 문을 열어 환기를 하면서 따뜻한 물 두 잔을 마신다. 그리고 20-25분 정도 요가를 하고 마무리로 1분 플랭크를 한다. 그러고 나서 커피를 한 잔 내려서 일기를 쓰고, 이탈리아어/영어 책을 좀 읽던지 아니면 크로아티아어 공부를 한다. 그렇게 30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면 7시 15분, 아들들 기상 알람이 울리면서 나만의 시간이 끝난다. 펜데믹으로 우울했던 나의 마지막 30대를 그냥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해 지금 할 수 있는 뭔가를 하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나를 잘 알기에, 주말과 애들 방학에는 하지 않았다. 그냥 길게 나의 생활 패턴으로 만들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애들이 학교 다닌 후로 6시 30분쯤 일어나 일기 쓰고 간단한 요가하는 일상을 해오고는 있었지만 들쭉날쭉 이었다. 마지막 30대 내 인생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그 효과는 컸다. 아침을 알차게 보내니 오후가 여유로웠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자주 늦게까지 둘이 즐기던 와인도 줄었다. 신랑은 처음에는 아쉬워하더니만 내 새로운 방식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었다. 종래에는 바뀐 생활 패턴이 더 좋은 것 같다며 좋아해 주었다. 다시 등교하게 된 애들의 아침도 훨씬 여유롭고 풍족했다. 작은 변화지만 우리 모두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준 터라, 2022년 올해 들어서는 나의 모닝 루틴을 좀 더 업그레이드했다. 5시 30분으로 기상시간을 앞당기고, 따뜻한 물과 함께 유산균을 먹고, 요가를 30분 정도로 늘렸다. 그리고 커피 마시기 전, 그릭 요구르트에 치아씨드와 카카오 닙스, 꿀을 섞어 우선 먹으면서 일기를 쓴다. 빈 속에 커피 마시는 나쁜 습관을 고쳐볼 요량이었는데, 7월인 현재 아주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러면서 읽었던 'Atomic Habit-아주 작은 습관의 힘' 책의 영향도 컸음은 말할 것도 없다.
고요한 새벽 시간이 주는 에너지는 조용하지만 강하다. 겨울에는 깜깜한 한밤중과 같은 암흑이 날 반기고, 여름에는 지금이 새벽인가 싶게 환하다 못해 한낮처럼 밝다. 하지만 언제나 그 특유의 신선하고 선선한 새벽 공기와 부지런한 새들의 지저귐이 이른 아침이구나, 느끼게 한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시작부터 뭔가 해냈다는 이상한 뿌듯함이 올라온다. 나는 평생을 야행성 인간으로 살았는데, 펜데믹이 나를 바꾸어 놓았다.
내가 야무지게 세상을 헤쳐온 거라고 생각했던 나만의 착각을 깨닫고 나서 느낀 무기력감은 나를 암흑으로 몰아넣었다. 내가 잘하는 게 과연 뭐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라는 끝없는 물음이 나를 좌절하게 했다. 뭐를 하든 그 끝에는 누군가 항상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울려 도와가며 사는 게 당연하고, 나 혼자 뭔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다는 게 불가능한데, 그 당시의 나는 그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아마 바쁘게 살며 뭔가를 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렇게 멍하니 노는 나를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게 아닌가 싶고. 그 당시의 나는 잘하지도 못하는 집안 정리와 청소에 엄청나게 시간을 쏟기 시작했다. 정리정돈을 잘하는 편이 아닌데, 그런 나를 자책하면서 늘 유튜브 영상으로 미니멀리스트와 청소 팁을 봐가면서 일을 벌였더랬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도 모르게 있었던 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는 것도 없으면서 전전긍긍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불안할 때마다, 그냥, 지금 당장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질문하고 그 답을 행하면서 살자고. 갑자기 내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나, 일이 너무 많아서 뭐를 해야 할지 모를 때, 혹은 시간은 없는데 주어진 일을 다 못 마칠 것 같은 나를 불안하게 하는 순간들마다 나는 이제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뭐지?"
얼마 전 지인의 부탁으로 가게가 쉬는 날에 40명이 넘는 단체 식사를 진행했다. 감사한 일이었지만 쉬는 날 직원들을 부르기가 미안해서 둘이서 하기로 하고 시간 맞춰 출근을 했다. 얼마 전 한국-크로아티아 수교 30주년 기념행사로 공연을 마친 인천시립무용단의 점심식사였다. 공연 후의 만찬이라 메뉴가 제법 많았는데, 그중 연어회가 있었다. 우리 식당은 자그레브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 맞은편에 위치해서 늘 신선한 식재료가 최대 규모로 판매되는 지라 별 걱정 없이 갔는데, 휴일도 아닌 월요일에 어시장이 문을 닫은 거다. 신랑은 급하게 큰 마트로 연어회를 사러 가고, 나는 혼자 식당에 남아 준비를 하려는데, 눈앞이 깜깜하면서, 오늘 이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냥 연어회는 안된다고 하던지 물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취소를 할까 라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다가, 순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뭐지? 우선 시간이 제일 많이 걸리는 된장찌개부터 준비하자.'라고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둘이 그 많은 인원의 거나한 한상을 무사히 치렀다. 다 치르고 나니 신랑이 머리를 쓰담해주며, 많이 강해졌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때 알았다. 아, 나는 운이 좋아서 내가 다 책임지고 사는 인생을 안 살아도 되는 거였구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면 되겠구나.라는 걸.
근래 나의 화두는 "지금 나의 최선이 뭐지?"라는 물음이다. 마음이 지칠 때나 일이 버거울 때 이 화두를 던지고 답이 나오면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것에 집중한다. 40대를 시작하는 찰나에 그나마 이전보다 나은 행동습관을 가지고 출발하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40대를 맞이하는 나의 소망은 넉넉하고 우아한 40대의 여성이었다. 30대의 마지막에 맞이한 커다란 변화가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내 소망에 가까운 인간상으로 이끌어주었다고 믿는다. 나는 여전히 늘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흔들리는 인간이지만, 그 순간에 이제 나에게 묻는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