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s in the Earth
The Mars in the Earth. 지구 안의 화성. 파그 Pag 섬을 가면 볼 수 있는 간판이다. 우리나라처럼 다도해인 크로아티아 달마티안 해안에 위치한 섬으로 크로아티아에서 5번째로 큰 섬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크로아티아의 여느 해안과는 확연히 다른 경관을 자랑하는, 크로아티아 내 이국적인 곳이다. 크로아티아의 해안은 돌로 이루어진 바위산들이 바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데, 그래도 해안가는 주로 해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거나 작은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어디를 가도 비슷비슷한 느낌이라 이제는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작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로 휴가를 떠나는 걸 선호하는데, 이 파그섬만큼은 순간 이집트라도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여느 크로아티아와는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유명한 소금 생산지답게 유독 짠 바닷물과 낮은 해수면이 뜨거운 햇살을 만나 찬란하게 빛나고, 나무라고는 도대체 찾아볼 수 없는 주변의 자갈과 돌로 이루어진 해안선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구가 아닌 마치 다른 행성인 화성쯤에 서 있는 기분.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와 생명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끝없는 자갈밭과 돌산들이 마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십여 년의 세월을 크로아티아에서 보내면서, 수많은 섬을 가봤지만, 유독 크로아티아 달마티안 해안 북쪽에 위치한 파그섬은 별로 내키지 않았더랬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고 싶어 했지, 중간에 떡하니 크게 자리한 섬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드디어 거의 모든 크로아티아의 해안도시들과 섬을 섭렵하고 나니, 커다란 파그섬에 한번 가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주변의 어디 어디가 좋다더라, 식의 말들에 별로 관심이 없고, 내가 발견하는 나만의 장소를 발굴하는 걸 좋아하는 터라 주변에 파그를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담조차 들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기대 없이 지겨운 펜데믹의 일상 속에 도망치듯 떠난 파그 섬은 이후로 나의 최애 여행지가 되었다.
십수 년간 본 크로아티아의 똑같은 해안의 모습에 잠시 싫증이 났었는지는 몰라도 파그섬은 내 마음을 홀랑 앗아가 버렸다. 뜨거운 태양과 그 태양 열을 그대로 받아 더 뜨거운 돌바닥들, 다채로운 해안선 덕분에 낮은 해수면으로 인한 상대적으로 따뜻한 바닷물. 달마시아 바닷물은 한여름에도 차가운 편이라 해변에서 햇볕에 몸을 충분히 달군 후 들어가지 않으면 입수하기 쉽지 않다. 물론 현지 사람들은 봄이 오는 4월부터도 해수욕을 즐기기도 한다. 혹은 날 밝은 새벽 이른 시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치료와 재활의 목적으로 바다수영을 즐기시는 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래도 나는 매번 차가운 바닷물에 입수하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막상 입수하고 나면 나오기 싫을 정도로 자유로운 기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탓인가 이곳의 해안은 바다와 나만 있는 기분으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관광지로 유명한 몇 곳은 제외이다. 그런 자연과 나만 있는 기분도 크로아티아 해안의 매력을 더해주는 요소 이기도하다.
파그 섬은 좋은 소금과 최고급 치즈로 유명한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낮은 해수면과 돌바닥이 만나 수분 증발이 잘되니 염전이 발달했을 테고, 풀 한 포기 없는 이곳 돌산에서 유일한 생계 수단은 가축을 키우는 것이었을 것이다. 특히 염소 치즈가 유명한데, 길을 달리다 보면 길가에 드문드문 풀을 뜯고 있는 염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늘 파그 치즈나 파그 소금은 믿고 자주 구입하곤 하는데 실제 생산지에 와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가 갔을 때는 2020년 여름 코로나로 인한 국경통제가 심했던 시기라 섬 자체가 굉장히 한산했다.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은 더 친절했다. 모두가 사람이 그립고 반가웠을 터였다. 크로아티아는 인구의 대부분이 관광업에 종사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관광이 국가 기반을 이루는 산업이다. 특히나 바닷가 쪽의 사람들은 숙소 렌트 사업을 하든 까페나 식당 등의 장사를 하든 늦봄부터 이른 가을까지 시즌 장사를 해서 일 년을 먹고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보통 4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약 6개월의 기간 동안 돈을 바짝 벌어서 비수기인 겨울을 버텨낸다. 그런 그들에게는 생계수단이 끊겼을 일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크로아티아 정부에서 펜데믹 초반 숙소 렌트와 요식업을 하는 사업자들에게 일정액을 보상해주기도 했다. 그랬던 터였으니 드문드문 들어오는 관광객이 더없이 반가웠을 터였다.
우리가 머물던 곳 바로 앞 바닷가 식당은 바다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밥을 먹으면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놀 수 있는 곳이었다. 낚시를 좋아하는 우리 집 삼부자는 밥을 먹으면서 피자 빵 쪼가리를 매달아 고기를 낚는다고 분주했다. 이런 소소한 장소들과 재미들이 가족 여행의 추억을 선사해준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밥 먹으면서 낚시하던 곳의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
크로아티아는 우리나라처럼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지 않다. 바닷가 마을이라도 우리나라처럼 생선을 손질하거나 파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작은 배로 작게 어업을 하러 나가는 동네 주민은 어디에나 있다. 작은 마을에 숙소를 잡으면, 운이 좋으면 밤에 어업을 마치고 들어오는 작은 통통배를 찾을 수 있다. 홀로 혹은 둘이서 작은 통통배로 서너 박스 정도 잡아오는 개인 어부에게 싱싱한 해산물을 싼 값에 사서 먹으면 그 맛과 분위기에 취한다. 욕심 없이 정도껏 잡아 온 어부 아저씨는 욕심 없는 가격으로 우리에게 기분 좋게 내어주신다. 시골마을의 동양 가족을 신기해하시며. 작은 통통배를 보는 재미와, 부둣가에서 직거래로 해산물을 사는 경험과 밤바다 특유의 내음에 취해 그날은 또 특별한 날로 기억이 된다.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틱 스퀴드, 아드리아해 오징어는 굉장히 유명하고 비싼데, 아저씨가 운 좋게 잡아오셔서 싱싱하기 그지없는 걸 맛볼 수가 있었다. 스캄피 skampi 또한 귀하고 비싼 식재료인데 더군다나 회로 먹을 수 있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운 좋게 알 굵은 스캄피 회까지 먹을 수 있는 신나는 기회가 되었다. 갓 잡아 온 오징어와 스캄피 회는 입에서 살살 녹았다. 배를 기다리는 과정부터 식재료 구입 그리고 요리까지 모든 과정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가족의 추억 한 페이지가 더 생긴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꼭 시간을 내어 가는 이유도, 가족이 공유하는 아름다운 기억을 많이 남기고 싶어서이다. 시간과 공간과 감정을 공유하는 특별한 경험이 나와 신랑과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값진 자산이자 삶을 헤쳐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고 믿는다. 돌아보고 꺼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인생이란 얼마나 멋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