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가 없는 복수물 신데렐라
신데렐라가 요즘 만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악을 향한 사이다 장면이 있냐, 아느냐다. 괴롭힘 당하는 소재는 마지막에 가해자에게 복수해 관객에게 사이다 장면을 선사한다. 신데렐라는 이런 장면이 없다. 그럼에도 불편하지 않다. 왜 그런 건지 오늘 신데렐라 이야기로 설명하겠다.
계모와 의붓언니는 신데렐라를 지독하게 괴롭혔지만 신데렐라는 보복하지 않았다. 가해자는 잃거나 처벌받은 게 없다. 시녀 한 명 잃었을 뿐. 대주택도 돈도 모두 이들 소유다.
정신 못 차린 새엄마는 신데렐라에게 복수하지만 실패한다. 해당 내용은 신데렐라 3에 나온다. 전개를 보면 디즈니가 주는 교훈에 씁쓸함도 느껴진다. 친절이 신데렐라 인생을 구했지만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친절이 전해지지 못했다.
신데렐라가 답답하다 느낄 테지만 이런 모습은 고대 철학이 가진 모습을 보여준다. 고전 철학에서 악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기에 악한 행위를 하지 말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말한다.
가능한 행동은 악한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설득하고 본인은 악에 물들이지 말고 이성 있게 행동해야 한다. 물들여지지 않으면 악행이 우리 신체는 갉아먹어도 영혼을 괴롭히진 못한다.
영혼이 괴롭다 여기는 건 마음이 괴롭다 믿기 때문이니 마음을 굳건히 세우라 말한다. 몸은 영혼을 담는 시체니까. 신데렐라도 이런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악이 되지 않는 게 목적이었을 터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이런 철학은 소수 사람만 알고 있다면 의미 없고 자료가 부족한 과거 토대이자 유물인걸. 거기에 무엇도 해결, 방지해주지 못한다는 걸. 물들여지지 않아야 하는 건 옳지만 내버려 두는 건 방치, 방관이며 악을 싹 틔운다.
죄 없는 영혼을 먼저 괴롭힌 존재와 망가진 영혼이 가진 마음은 다르다. 하지만 보복은 옳지 못하다. 이유 없이 상대를 괴롭힌 가해자와 보복을 원하는 피해자 마음은 같진 않으나 똑같이 옳지 못하다.
다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죄를 묻고 처벌을 내리는 모습은 정당하다. 보복은 옳지 않으나 처벌은 옳고 처벌받길 바라는 마음도 옳다.
보복은 감정이 풀릴 때까지 행하는 폭력이다. 처벌은 사회가 정한 법과 제도 안에서 재판하고 판결해 합당한 벌을 내리는 행위다. 처벌은 사례가 돼 사회에 퍼져 범죄를 예방한다. 보복은 옳지 않아도 처벌은 옳다. 사회가 약속한 범위 안에서 약속을 안 지키면 미리 알려준 범위 내에서 처벌하기 때문이다.
처벌 수준이 불합리하면 해당 정책에 항의해야 한다. 사회는 항의하고 조율하며 약속을 지키는 구조다. 감정에 따라 무력을 휘두르는 건 사회를 역행하는 행위다. 피해자가 만족하는 처벌이 내려지고 제도화하면 예비 가해자는 함부로 피해자를 만들지 못한다.
누군가를 괴롭힌 행위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가 가져올 모습과 누군가를 괴롭혀도 설득만 할 뿐인 사회가 가져올 모습 중 여러분은 어디에 유년기를 보내고, 아이가 지내길 원하는가?
신데렐라는 왜 복수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본인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갚아줄 기회가 있지만 넘어갔던 기억이다. 때는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
중3 때 정치질로 나를 왕따 시킨 아이가 있었다. 친구라 생각했는데 자기가 돋보이기 위한 도구로 날 사용했다. 친구라 믿은 애들도 날 버렸다. 혼자서 중학교를 마무리했다. 졸업 후 3개월 만에 입시 학원에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났다.
녀석은 학원에서도 꾸준히 정치질하고 친구 급을 나누었다. 하지만 고3 되면서 행위는 자신에게 돌아갔다. 친구였던 아이들은 모두 그 아이를 차단하고 무시하고 피했다. 뒤에서 험담하고 정치질하는 아이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참고로 본인은 남자다. 남자끼리는 뒷담을 잘 안 한다. 흥미롭지도, 좋은 주제도 아니니까. 녀석은 혼자가 되면서 우리 둘 입장은 3년 전과 반대가 되었다.
학원 왕따가 대수인가 할 텐데 본인은 입시미술을 했어서 학원에서 지내는 게 학교보다 길었다. 주 6일에서 7일, 매일 12시간을 학원에서 보냈다. 학생 수도 한 반에 30명은 되었다. 해당 환경 때문에 학원 왕따는 학교 왕따만큼 힘든 고통이다.
이때 왕따 당하던 녀석이 나에게 의지했다. 같이 밥 먹자 하고 말을 걸었다. 고민이 많았다. 중학생 때 친구라 생각했던 놈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까라고. 결국 같이 밥 먹어줬다.
무난히 관계 유지하고 대학가며 헤어졌다. 신데렐라도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굳이 나까지 괴롭힐 필요 없다는 생각, 볼일 없고 상대하기도 귀찮으니까, 두 가지 감정이 아닐까.
신데렐라가 어떤 감정으로 가해자에게 보복하지 않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해당 모습이 우리가 원하던 장면이 아닌 건 알고 있다. 관객이 원한 건 신데렐라가 행복해지기 바란거지, 가해자가 고통스럽길 바라며 영화를 보진 않았다.
덕분에 사이다 장면이 없어도 관객은 답답한 마음 없이 웃으면서 신데렐라를 감상했다. 우리가 원하던 진짜 모습은 신데렐라가 복수에 물들어지는 게 아닌 웃으면서 행복을 되찾는 모습이니까.
복수해야 행복해진다면 관객은 원했겠지만 신데렐라는 행복을 되찾는데 복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엔딩 장면 나오고 계모, 의붓언니 생각 따위는 나지 않는다. 신데렐라가 웃으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게 중요하며 해당 장면이 맴돌 뿐이다.
오늘은 신데렐라 엔딩을 보며 불이익 없는 악과 그런 악을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는가? 왜 관객은 사이다 장면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을까를 주제로 이야기했다. 내용이 유용하고 도움 되며 영화를 폭넓게 감상하는데 도움 되었기를 바란다. 다음에도 신데렐라 이야기로 찾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