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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덕 Jun 28. 2021

베이글은 주부 편파중계 맛!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게 구워진 베이글에 기분이 업된 나에게 아들이 말한다.

"엄마, 베이글 비주얼에 신경 좀 써보세요. 요즘 SNS에 보면 빵이나 디저트들 사진 많이 올라와 있거든.  레알 예쁘고 먹음직스럽던데,. 근데 오늘 베이글 맛있다."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야무지게 발라서 '짭짭 '소리까지 내고 먹으면서 한마디 더 한다.

"엄마, 음식은 밥이든 빵이든 특히 디저트류는 눈이 먼저 먹고 그리고 입이 먹는 거래요."


옆에서 남편이 거든다.

"그렇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잖아. 참 어제 된장찌개에 고기가 많이 들어가서 난 좀 느끼하더라. 장금이처럼 맛을 그려서 주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나게 해 봐."


이미 내 얼굴은 울그락불그락이지만 아무도 눈치를 못 챈 것 같다. 


누군지도 모르는 SNS 유명 파티시에 조선 중종 때의 어의녀, 드라마에서 수라간 최고 상궁까지 한 장금이와 비교당하고 있는 것이다. 감히 경쟁자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들의 아우라에 쪼그라든다.


하지만 여기서 기죽으면 안 된다. 자존심이 상하려고 시동 거는 이 순간, 바로 이때 필요한 건 로지 나만을 위한 편파중계이다.


 자, 그럼 주부인 제가 저만을 위한 편파중계를 시작합니다!


"지금 남편 선수와 아들 선수가 스스로 자기들 무덤을 파고 있네요. 베이글 비주얼에 대해 지적하고 있죠. 거기에 남편 선수는 어제 먹은 된장찌개까지 태클을 걸고 있는데요. 아.. 안타깝네요. 원아웃 만루 상황에서 병살타를 치는 격인데요. 앞으로 베이글은 영영 못 얻어먹을 것 같네요. 눈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편과 아들 선수인데요. 앞으로 집빵 먹는 걸 포기하겠다는 건가요?


오늘 만든 베이글.. 정말 맛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비주얼도 끝내주는데요. 정이 느껴질 정도로 적당한 빈틈도 보여주면서 동시에 통통한 베이글 미를 자랑하고 있죠. 그 자태가 기가 막힙니다. 어떻게 이렇게 멋진 베이글이 구워진 거죠? 가 만들었지만 자랑스럽습니다.


맛이 최고지, 비주얼이 최우선이 돼서야 쓰겠습니까? 모양은 반질반질 예쁘지만 내용이 부실한 거랑, 모양은 좀 허당미가 있어도 맛이 끝내주는 거랑.. 뭐가 먹고 싶은 걸까요? 


베이글이 그냥 뚝딱 나오는 건 아닙니다. 재료 계량하고, 반죽하고, 1차 발효의 시간이 지나면 적당한 그램으로 분할, 중간 발효, 모양 만들어주는 성형 그리고 2차 발효 끝나면 베이글의 정체성인 그 특유의 식감을 위해 약하게 끓는 물에 살짝 데쳐줘야 하는데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잠시 말려준 후 굽는 거죠. 


이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 나온 맛난 베이글인데 말입니다. 비주얼 지적이라니요? 저 선수들 아무래도 잘못된 주루 플레이하는 것 같은데요. 아... 저러다가 홈에서 아웃당하기 딱이죠.


어디 집빵뿐이겠습니까? 우리 주부들이 가족들에게 건강한 집밥을 제공하기 위해 부엌에서 쏟아내는 그 열정적인 시간을 외면하는 간 큰 선수들도 있죠. 어디서 반찬 트집인가요? 이 선수들 공쳐봤자 땅볼 아웃입니다. 우리 주부들이 한 꼬집 한 꼬집 정성을 넣어서 만든 집밥인걸 모르는 건가요? 


맛과 영양에 진심인 한 끼 식사를 위해 추우나 더우나 심지어는 몸이 아플 때도 부엌에서 애쓰고 있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건 아니겠죠? 자꾸 집밥 꼬투리 잡으면 하루 세끼를 밥과 조미김만 먹을 수 있다는 현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진 아웃당하기 전에 정신 차려야 할 텐데 말이죠."


한바탕 쏟아낸  편파중계로 속은 조금 시원해졌다.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아서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풍성하게 발라서 먹 본다.

약간 꾸덕하면서 질긴 베이글을 한입 깨물고 질겅질겅 씹어본다.

역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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