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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덕 Jun 03. 2021

소보로빵으로 소심하게 대든 며느리입니다.

"우리 며늘아 될 아가 인물이 없어서......"

결혼 전 시댁에 첫인사를 드리러 간 날이었다. 부모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요래조래 부린 나를 시부모님과 때마침 마실 오신 아버님 친구분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거실에는 이미 어머님께서 차려 놓으신 점심상이 있었다.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에서의 식사인지라 무엇을 먹었는지, 맛은 어땠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식사  어머님은 빵 덕후이신 시아버님을 위해 친구분이 사 오신 소보로빵과 커피믹스를 내어주셨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씹는 소리와 호로록 커피 마시는 소리만 있었다. 아버님께서 불쑥 말씀을 꺼내셨다.


"우리 며늘아 될 아가 인물이 쪼매 없어서.. 그래도 우짜노 지들이 좋다카는데 결혼시키야지"

 내 남편 될 아는 식후 화장실에서 볼일 중이었고, 나는 그저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아버님~~~ 눈, 코,  입 하나씩 자세히 보면 제가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데요. 호호호' 목구멍으로 나오려는 말을 꿀떡꿀떡 삼키면이 난관을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잠시 흐른 적막을 깨고, 친구분이 수습에 나서 주셨다.


"얼굴 뜯어먹고 사나? 시어른 공경 잘하고, 아 잘 낳아 키우면 되지"


맞은데 또 맞은 기분이었다.


 결혼 후 시댁에 갈 때마다 아버님께 드릴 빵을 사 갔다. 물론 아버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그 소보로빵만 쏙 빼고 말이다. "아버님, 소보로 빵이 다 팔렸다네요."

뒤끝이 두루마리인  그렇게 소심하게 그날의 복수(?)를 했다. 하지만 얼마 후 내 빵 봉지엔 소보로빵이 제일 많았다. 그때 아버님께서 하신 며느리 인물 품평은 못난이 곰보빵이라고도 불리는 소보로빵을 앞에 두시고 아무 뜻 없이 내뱉으신   아버님의 언어였다는 것을 식구가 된 후에 알았기 때문이다.

속 좁은 며늘아를 아버님께서는 늘 예뻐해 주셨다. 


소보로빵을 만들면서 옛날 일이 생각나서 피식 웃었다.


내가 어렸던 시절부터 빵가게에서 굳건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보로빵의 원형은 독일의 Streusel(슈트로이젤)이라는 설이 있다. Streusel은 밀가루, 버터, 설탕 등으로 만든 것으로 독일의 쿠헨(kuchen)이나 페스트리 등의 토핑으로 주로 쓰이는 재료이다.


동네 빵가게입니다. 독일 Bad Homburg


독일 거주 중인 나에게는 "우리 Oma(할머니)레시피로 Streuselkuchen (슈트로이젤쿠헨) 만들었어요" 라면서 나눠주는 이웃이 있다. 대대로 내려온 비밀 레시피라면서 자랑도 추가한다.

또한 빵가게에Streusel이 토핑으로 올라 간 빵들은 우리의 소보로빵처럼 늘 한 칸씩을 차지하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체리 또는 사과를 같이 넣고 만든 슈트로이젤쿠헨이 눈에 많이 띈다. 그래서 소보로에 관한 여러 설 중에서 독일 원형 설에 나는 마음이 간다.


독일 Streusel(슈트로이젤)은 버터, 설탕, 밀가루를 1:1:2로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취향에 따라 각 재료의 양을 추가하거나 줄여서 만든다. 말랑말랑한 실온의 버터에 설탕을 넣고 섞은 , 밀가루를 넣고 가볍게 섞어 준다. 손으로 보슬보슬한 상태로 만든 후에 그대로 굽거나 쿠헨 등에 토핑으로 올린 후 구워준다.


한국식 Streusel인 소보로는  버터와 땅콩버터, 설탕, 밀가루, 소금 한 꼬집 등으로 만든다.

과정은 똑같다. 내 입엔 소보로가 더 맛있다.


막 구워 낸 빵을 한 입 깨물었을 때 바삭하면서 보슬보슬한 식감과 그 후 입안에 퍼지는 고소한 땅콩버터의 맛과 향이 나는 좋다. 아버님도 그런 이유로 소보로빵을 좋아하신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하늘에서 이 글을 읽으시고 "맞나? 허허허.." 웃으실 아버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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