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성격이 급한 편이다. 무슨 일에서든 결과를 빨리보고 싶어 한다. 나의 이런성격은 동전의 양면처럼 좋은 점과나쁜 점을 다가지고 있다. 장점은 일의 집중력과 추진력이다. 단점은 그렇게 한 번에 다다닥 쏟아부은 에너지의 고갈로 빨리 지친다. 한 가지 일에 쏟아붓는에너지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아이를 키울 때도 이 성격은 여지없이 나왔다.
아들이4살 때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옆집, 위집, 아랫집에 사는 아들 또래의 아이들은 이미 한글을 다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그 아기들이 쓰는 단어의 수준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 아이들을 따라서 이것저것 같이 시키기 시작했다. 내 아이도 빨리 한글을 읽고, 고급진 단어를 구사하길 원하면서 총총거렸다.
아들도 나도 과부하가 걸렸다. 방글방글 잘 웃고 조잘조잘 말이 많던 아이가 어느 순간 입을닫아 버렸다. 엄마의 급한 성격에 따른 부작용이었다. 아이마다 성장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미처 몰랐었다.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그냥 주변의 남들처럼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또래 아이들과 함께 하던 수업들을 그만뒀다. 부모로서 불안했지만 내 아이의 속도에 맞춰보기로 했다. 그렇게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은 과감히 쳐냈다.
고비가 왔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에 커튼을 쳤고, 입은 굳게 다물고, 눈빛은 반항기가 가득했다. '나 건드리지 마!!'라는 눈빛 레이저를 실시간 쏘았다.
사춘기 아들을 참아내고 기다려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속 터지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들은 성장하기 위해 나름 치열하게 자신의 내면과 싸우는 중이었던 것 같다.
유일하게 입을 열어 그나마 한 두 마디 하는 시간은 좋아하는 빵을 먹을 때였다. 아들과 그 짧은 시간만이라도 대화하기 위해 열심히 빵을 구웠다.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발효의 단계가 꼭 필요하다. 발효(ferment)는 '끓이다'라는 라틴어 'fervere'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발효를 도와주는 효모(yeast) 역시 '끓이다'라는 뜻을 가진 고대 영어 'gyst'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빵이 제대로 부풀고 맛있어지기 위해 거쳐야 하는과정인발효와 잘 성장하기 위해 심장과 머리에서 보글보글 끓는 열을 밖으로 발산해버리는 사춘기 아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발효과정에서는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일정 시간 유지해줘야한다. 아이를 키울 때도 과하지 않은,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사랑과 관심을적절하게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발효되어 성숙해질 수 있도록 그 시간들을 존중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성인이 된 아들이 어느 날 말했다
"부모님, 어떻게 참았어요? 만약에 과거의 내가 내 자식이라면 확 마 ..그냥 마.. 어후 진짜..."
"응. 아빠는 밤하늘 별 보면서 참았고, 엄마는 잔소리하고 싶은 거 바늘로 허벅지 찔러가면서 참았어. 여기봐봐. 바늘 자국 아직도 막 있는거 같아. 크크큭."
긴발효의시간을 잘 버티고 견디어 온 아이는 지금 본인의 인생을 예쁜 모양으로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또다시 2차 발효의 시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