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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빵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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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덕 Sep 29. 2022

내가 그렇게 만만하니 식빵.


"저기요... 길 좀 물어볼게요.

근데, 인상이 참 좋으세요. 얼굴에서 조상 덕이 보여요."

나는 길거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조상님이 로또번호를 꿈에서 불러주시면 좋겠다.


"어머니...."

고속버스 승차홈으로 걸어가고 있는 나에게 이 서글서글한 남학생이 말을 걸었다. 직접 만들었다는 목걸이를 사연과 함께 내밀면서 사라고 했다. 가끔 겪는 일이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학생들을 더러 만난다.


진입장벽이 다소 낮아 보이는 내 인상 때문일까. 사람들이 조금은 쉽게 나에게 접근한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다. 독일에서도 그랬다. 어린 동생을 안고 돈을 달라고 하던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곳은 동네 빵가게 앞이었다. 난민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며 빵이 먹고 싶다기에 2유로짜리 동전 두 개를 줬다. 그 아이는 주로 빵가게 앞이나 전철역 근처에서 구걸을 했고, 나를 만날 때마다 반갑게 다가왔다. 내 주머니 사정에 따라 3유로나 4유로(유로에는 1유로와 2유로짜리 동전이 있다. 그 당시 환율이 1유로에 1.500 원 정도였다)를 주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몹시 짜증 난다는 듯이 말했다.

"너는 왜 매번 동전만 줘? 지폐 줘."

혹시 그 아이에게 나는 동전만 나오는 자판기였나? 쨌든 해외살이로 살림이 빡빡했기에 지폐 자판기가 될 수는 없었다. 익숙하게 다니던 그 길을 슬쩍슬쩍 피해 다녔다.


가끔은 '내가 그렇게 만만하니?'라는 고개를 45도로 치켜들면서 눈을 희번덕거릴 때도 있지만, 계속해서 얼굴 근육에 힘을 빡 주면서 살 수는 없다.

그렇다. 난 좀 만만한 인상을 가진, 살짝 만만한 사람이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DNA를 가진 듯한,
만만해 보이는 식빵을 나는 좋아한다.


식구들이 빵을 구워달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빵이 그냥 식빵이다. 빵의 기본재료인 밀가루, 소금, 설탕, 이스트, 물 등을 섞어서 반죽하고 발효한 후 틀에 넣어 구워낸다. 재료도 만드는 방법도 나름 만만하다. 물론 제대로 만들려면 쉽지 않지만, 재료만 넣으면 반죽부터 굽기까지 한 번에 해주는 제빵기도 있어서 손쉽게 만들 수도 있다.


어느 빵가게에서식빵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화려한 맛과 자태를 뽐내는 빵들 사이에서 묵직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느 빵을 살까 고민하다가 선택하기에 좋은, 만만하고 평범한 빵이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취향과 식성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선뜻 손이 간다. 토스트로 구워서 바삭하게 먹거나, 버터나 잼을 발라 먹기도 하고, 치즈나 햄과 함께 양상추를 얹어서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또한 외국인들도 좋아한다는 'K-길거리 토스트'를 만들 수도 있다. 프라이팬에 버터나 마가린을 넉넉히 두르고 식빵을 앞뒤로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양배추, 당근, 파 등을 계란물에 넣어서 부친 소를 구운 식빵에 넣은 후 설탕을 솔솔 뿌리고 케첩이나 머스터드소스를 더하면 든든한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는 길거리 토스트가 된다.


본연의 순한 맛과 형태는 잃지 않으면서 첨가되는 재료들이 가진 특성과 장점을 넉넉하게 포용하는 식빵... 가볍게 집어 든 담백한 식빵과 각기 각색의 부재료들이 콜라보한 고품격 맛을 즐길 수 있다.


진입장벽이 낮은 식빵을 오물오물 씹으면서 뭐, 만만하다는 게 그렇게 실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뜬금없이 해본다. 오히려 인상이 만만해 보이는 것이 다행일 수도 있겠다 싶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편하게 다가와서 좋은 인연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무례하고 거만하게 굴면서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겐 만만하게 보이는 내 얼굴을 내 딴에는 살벌하게 세팅하고 응수한다. 그러니까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눈은 매섭고 가늘게 뜨고, 코 평수는 최대치로 늘리고, 입을 야무지게 붙인 후 무음 처리된 욕을 날린다. 표정 파이터다.


마, 내가 그렇게 만만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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