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행복 중 어느 한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는가?
최근 디스토피아 소설들을 즐겨 읽던 차에, 디스토피아의 원조격인 조지오웰의 소설을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마침 엄마의 책장에 꽂혀있던 <1984>를 발견했고 읽기 시작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생각나나기도 했는데 그 작품은 조금 판타지적이었다면 이 작품은 현실에 더 가까워서 힘들었다. <동물농장>은 조금... 다른 책들로 환기시킨 다음에 도전을 해야겠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있는 책들은 어째 읽을 때마다 너무 힘겹다. 고전은 다 어려운 걸까?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1984년 극단적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 국민들은 정치 기구인 당의 통제를 받으며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빅 브라더'라는 인물을 숭배해야만 한다. 텔레스크린, 마이크로폰, 사상경찰들로 모두 감시당하고 있으며 감시당하지 않는 자들은 같은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무상계급이라 불리는 노동자들 뿐이다.
반역자 '골드스타인'을 향해 증오하는 시간을 의무적으로 가지고, 일기라는 것을 쓰거나 편지를 보내는 것도 제한된다. 사람들이 스스로 사고를 하지 못하도록 세뇌시키며, 인간의 기본욕구 중 하나인 성욕도 없애려 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러한 당의 체제에 의문을 가지며 맞서려 한다. 그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어요. 그들은 당신이 무엇이든 말하게끔 할 수는 있지만, 믿게는 할 수 없어요. 당신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으니까요." (235p) 당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할지라도 윈스턴 같은 사람, 줄리아 같은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일종의 돌연변이처럼 소수일지라도 아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암울한 사회에 존재하는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쓰인 시기는 1949년으로 그 당시 이 소설은 미래에 대한 경고로 읽혔다고 한다. 지금은 2024년. 1984년은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과거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어떤가. 이 소설처럼 자유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냐고 물으면 답은 '아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정말 자유롭기만 한가? 그에 대한 답 역시 '아니'일 것이다.
우리는 안전과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수많은 시스템들에 의해 감시받으며 살고 있다.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했을 때 확진자의 동선이 상세하게 전부 보고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카드를 사용하면, 휴대폰을 사용하면, 카메라가 있는 곳을 지나가면 모든 행적이 낱낱이 기록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부여받아야 하는 주민등록번호 역시 기본적으로는 통제의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무섭지 않은가. 이에 더해 SNS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인간은 자유와 행복 중 어느 한편을 선택해야 하는데, 대부분 행복을 더 선호한다.' (366p) 여기서 말하는 행복을 안전이라고 바꿔서 생각해 보자.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에는 자유가 포함될 테니.)
자유와 안전 중에 무엇을 더 선호하는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고 싶은가. 자유만 있는 세상은 통제받지도 않겠지만 보호받지도 못한다. 반대로 안전한 세상에서는 보호를 위해 자유를 헌납해야만 한다. 당신에게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이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말은 윈스턴이 오브라이언을 만났을 때부터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무력했다.
작품을 쓸 당시 조지 오웰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더 암울하게 쓰였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태였다면 과연 결말이 바뀌었을까?
충분히 자유롭다고 느끼는가?
자유와 행복(혹은 안전)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미래를 향해, 과거를 향해, 사고가 자유롭고 저마다의 개성이 서로 다를 수 있으며 혼자 고독하게 살지 않는 시대를 향해, 진실이 존재하고 일단 이루어진 것은 없어질 수 없는 시대를 향해.
그들은 의식을 가질 때까지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반란을 일으키게 될 때까지는 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무서운 것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죽이는 게 아니다. 그들의 견해가 옳을지도 모른다는 게 무서운 것이다. 도대체 둘 더하기 둘이 넷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아무래도 인간은 사랑받기보다 이해받기를 더 바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