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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Feb 06. 2024

마녀가 되는 주문_단요

사육장에서 일하는 수의사는 가축을 돕는 걸까, 사육장의 주인을 돕는걸까?


 제목과 표지만 보고 통통 튀고 발랄하고 가벼운 판타지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다윈영의 악의 기원>이 생각나는 스토리. 오히려 좋아. 몽글몽글 힐링, 성장 스토리의 청소년 소설이 아니라 피 튀기는 SKY캐슬 속 아이들의 슬픔과 분노, 비겁함을 다룬 청소년 소설. 생각할 거리도 많아졌던 책. (결국 사회가 나빴지... 애들이 무슨 잘못이겠어ㅜㅜㅜ)

 그리고 표현들이 하나같이 다 좋아서 소개하고 싶은 문장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번 글에서 유난히 인용한 문장이 많은 이유. 그냥 이런 장르 좋아한다면 읽어보시길. 제발!!!







1. 이야기


"사람 죽는 일이 퍼즐 게임 같아? 조건만 맞으면 확 치워 버릴 수 있게?"


도진은 엉망진창으로 쓰인 수식을 검토하듯 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학교도 그렇고, 세상 일이 원래 그런 식 아니야?"


 능력, 합리, 혁신을 슬로건으로 든 엘리트 고등교육기관. 영재원에서도 특출 난 아이들만 이 학교에 올 수 있다. 학교는 학비가 매우 비싼 대신, 졸업까지 유예된다. 졸업 전까지 대납해 줄 후원사를 구하면 연구원이 되고 학비걱정도 사라지지만, 그지 못다면 20년간 갚아야만 끝날 빚이 생기는 것이다.

 한 가지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예외 사항이 있다. 졸업 전 학생 사망한 경우 빚은 면제된다.


 서아는 3학년으로 아직 졸업까지는 시간이 남은 학생이다. 그러나 후원사를 구하지 못한다면 죽고 싶어 질 수도 있으니까 미리 죽을 연습을 하기 위해 옥상에 올라선다. 그런 서아에게 현이 다가온다.

 현은 자신을 가상현실 게임 서버를 통해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이른바 '마법소녀'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서아에게 이 일을 권유한다. 이 게임의 관리자가 되면 교수님의 연구실에 들어가 연구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그러던 어느 날, 서아는 게임과 관련된 수상한 죽음에 대해 알게 된다. 15년 전 사망 사건 5건, 사라진 선배 우연, 현과 싸우고 연구실을 옮겼다는 도진. 대체 이 서버 속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 생각하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아이들에게 따뜻할까? '서아는 때로 층수가 표시되지 않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멈췄는지 움직이는 지도 알 수 없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를 사각형의 공간에.' (29p) 이런 생각을 가지는 학생이 이 책 속의 서아 한 명뿐은 아닐 것이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를 생각하면 세상이 아이들에게 따뜻하기보다는 차갑게만 느껴질 때가 많다.


 '모든 진솔이 하율을 만날 수는 없으니까.' (135p) 서아는 현을 만난 덕분에 자신이 운 좋게 연구원이 될 기회를 얻었다고 말한다. 이 상황이 서아에게는 구원일까. 관리자 일을 하며 몰라도 될 진실을 알고,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연구원이 되는 것이 정말 더 좋은 일일까?


 '사육장에서 일하는 수의사는 가축을 돕는 걸까, 사육장의 주인을 돕는 걸까? 그걸 분리할 수 있을까?' (174p)  이 소설 속에서 사육장은 '사회'이자 학교이고, 수의사는 게임 서버를 관리하는 '마법소녀'들이다. 3장의 끝무렵 하율과 현의 대화로 이 질문의 답이 내려진다. 게임 서버는 지쳐버린 아이들에게 휴식을 제공해 주었으나, 이 역시 결국 사회에 속해있기에 아이들의 자살을 병사로 둔갑시켜 버리기도 했다.

 답은, '분리할 수 없다.'다.


"그냥 달리기 시합을 하면 다들 적당히 뛸 텐데, 10등 아래로는 죽는 규칙이라면 누구든 전속력으로 뛸 거 아냐. 평균 속도야 엄청나게 올라가겠지만... 그러다가 지친 사람은 그만 죽어 버리는 거지." (188p) 이 규칙 속에서 죽어라 달리는 것이 기업과 사회가 원하는 '쓸모 있는'사람이 되는 방법이다. 학생들은 이 규칙에 대해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지 못한다. 10등 안에 들면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책임은 탈락한 학생 개개인에게 돌아간다.  

 <다윈영의 악의 기원>이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결국 특권을 누리는 자가 존재한다면 모두가 합심해서 이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만약 이들이 용기를 내서 내부고발을 했다면, 아이들이 게임 속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쟁사에, 언론에 공개했다면, 과연 이 학교는 사라지고 아이들은 행복해졌을까?

  '비슷한 게 생길 거야."(244p), '그러니까, 세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268p) 이 책은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와 같은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아프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 당장 물러나더라도, 비겁할지라도 내가 어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지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만들어줄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현과 서아가 보통의 인물이어서 좋았다. 도진과 진솔도 비겁해서 좋았다. 모두가 매 순간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 누구에게도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래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 중 마음에 와닿았던 한 부분을 남겨두겠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란 가장 강력한 진실이면서도 가장 덧없는 거짓말이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중략)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슬퍼집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비겁해집니다.





3. 물음표

당신이 이 책 속의 관리자라면, 죽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서버를 열어줄 것인가?
서버와 관련된 인물들(하율,진솔,우연,현,도진,서아)중 가장 비겁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커다란 불행을 바라본 다음이라면 자신의 불행은 소박하게만 보이기 마련이다.
희망찬 응원과 정답은 대개 무책임하다. 누구든지,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이므로.
알지 못하는 것에는 고민도 책임도 필요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외면하는 데는 변명이 필요했다.
"이왕 비겁해질 거라면 제가 정확히 어떤 점에서 비겁한지 알아 둘래요. 어쩔 수 없었다거나 몰랐다거나 하는 말로 변명하는 게 아니라, 솔직해지고 싶어요."
세상이 문제이니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진단은 아주 쉽다. 시간제한도 없거니와 구체적인 삶을 다룰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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