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고도 선한 사람들의 무해한 팬데믹 극복일지, 소심함의 강점?
소심한 사람들에게는 '네가 소심하다고?'라는 말을 듣고, 대담한 사람들에게는 '너는 왜 그렇게 걱정이 많아!'라는 말을 듣는 자의 <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 읽기.
생각보다 공감되고 생각보다 답답했다. 누군가에게는 '어 이거 난데!' 하며 읽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 왜 저래.. 답답해!' 하며 읽을 수 있는 책. 일단 가볍게 읽기에 좋은 무해한 책이다. 정말 말 그대로 무해하고 평화롭다. 그래서 글을 쓸지 말지 고민하다가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있었기에 써보기로 함!
수면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버린 세상. 정부의 바이러스 관련 규제로 집에서만 생활하던 '소심한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수면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소심한 사람들은 감염되지 않았다. 왜일까?
소심해서 밖에 나가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소심한 사람들만 걸리지 않는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걸까?
배급이 끊겨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집 밖을 나선 선동. 보급소 직원인 나나를 만나 다른 집 보급을 돕게 된다. 그렇게 오타쿠 여중생 지우, 워리어스라는 조직을 만든 리더 최강자 등 여러 인물들을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다.
사람들은 선동을 보며 소심한 사람들 중 가장 덜 소심하다며 리더취급을 하고, 나나는 쿠션어를 매일 쓰지만 나름의 리더십이 있다. 지우는 자신의 세계에 빠져 대담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집에 돌아가서는 소심하게 카톡을 보내오고, 최강자는 전혀 소심해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은 그런 척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과연 이들은 함께 팬데믹을 이겨낼 수 있을까?
소심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를 배려하면 팬데믹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로 전개된 이야기다. 주인공들처럼 소심한 사람들에게는 공감이 가고 재미있게 읽히겠지만, 소심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답답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내게 이 책은 공감이 되려 할 때쯤 답답하게 느껴지고, 그렇지만 또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의 반복이었다.)
소심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다.'이다. 지나치게란 어느 정도 일까, 조심성이 많은 이유 역시 다양할 것이다. 이 책의 인물들은 정말 단순히 소심한 사람들이었을까?
'그러니까 다들 소심하게 잘 살고 있었다.'(122p) 이들이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소심한 사람들이 모여서가 아니라, 소심하고 선한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식량을 더 가져오고 싶은데 그랬다가 싸움이 날 까봐 가져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들이 먹을 것도 있어야 하니 이걸 가져가도 괜찮을까? 하고 배려하는 것은 '소심함' 보다는 '선함'에 더 가깝다.
요즘은 개인주의를 가장한 이기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낀다. 할 말은 해야 한다며 솔직함으로 무례함을 포장하는 사람들. MZ세대를 바라보는 시선만 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 모두가 이 책의 등장인물들처럼 조금만 말을 삼킨다면 지금보다는 더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코로나 블루를 겪는 사람들이 많았다. 블루가 레드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은 적어도 우울이 분노가 되기 전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역할을 해 주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이 한 가지 있다면 '확실히 소심한 사람들이 취미에 몰입하나 싶었다.'(147p)라는 부분이었다. 취미에는 정적인 취미와 동적인 취미가 있다. 소심한 사람들은 비교적 정적인 취미를 가지는 듯해 보인다. 퍼즐을 맞추고, 뜨개질을 배우고, 덕질을 하고, 문구류를 좋아하고. 대담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스포츠 같은 취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몰입은 어떨까. 소심한(사실은 '내향적인'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몰입할 기회가 조금 더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편안하게 여기고 그 시간을 오래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나'와 '취미'에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까?
"투잡을 가져라, 외국어를 배워라, 주식을 배워라··· 같은 말들이··· 지금 상황에서는··· 이상하게 보여요."(122p) "저는··· 미래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 일상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잘 지내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세상은 망했지만··· 우리는 같이 다니면서 재밌는 일을 많이 했잖아요···.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254p) 영만이라는 인물이 한 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은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 두 문장을 남기고 마무리하겠다.
나는 소심한가? 대담한가?
최근에 내가 무언가에 '몰입'했던 경험이 있다면?
어차피 세상이 망했으니 머리 색깔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을 테고,
재밌을 것 같으면서도, 워리어스가 실패할까 같이 긴장해야 하니 무서웠다. 소심한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소심하다는 게 뭘까요?"
"잘 될 거야. 앞으로 일어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야 마음이 편하잖아···. 해결할 수 없다고 믿으면 다들 절망에 빠져서 정말 아포칼립스가 되겠지. 그러니까 잘 될 거라고 믿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