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책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로 Sep 02. 2023

서른의 반격_손원평

1988, '반격'할 것인가 '현실'을 따를 것인가



 손원평 작가님의 <아몬드>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있다는 말이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용이 이렇게 까지 암울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좋았다. 그리고 다음으로 읽은 <튜브>는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다. 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에. 이번 <서른의 반격>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다. 원래 처음 제목은 <보통사람>이었다고 하는데, 그 제목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1. 이야기

 1988년생 김지혜. 학창 시절 수많은 김지혜들 사이에서 키가 크지 않기 때문에 '작은 김지혜', 두 번째 순서여서 '김지혜B'등으로 불렸던 주인공. 현재 대기업 DM의 산하 아카데미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이다. 인턴을 뽑을 때는 정규직 전환의 기회가 있다고 했지만, 그냥 하는 말이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인턴 기간을 계속 연장할 뿐. 그런 그녀의 인생은 회사에 새로운 인턴 규옥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바뀌게 된다.


 규옥은 언제나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힘든 내색 없이 모든 일들을 도맡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지혜에게 왜 무료 아카데미 수강권을 쓰지 않냐며 함께 우쿨렐레 수업을 듣자고 권유한다. 그 우쿨렐레 수업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다. 글을 쓰다 슬럼프에 빠진 작가 무인, 사춘기 딸을 둔 평범해 보이는 아저씨 남은 등등.

 언젠가부터 무인, 남은, 규옥, 지혜는 자주 모여 회식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 작은 '장난'을 치는 동지가 된다. 첫 장난은 지혜의 불만에서 시작되었다. 김부장이 매번 아무 때나 트림을 하는 등 매너가 없는 행동을 한다며 불평을 하자 규옥이 김부장의 책상 위에 익명으로 '이 가엾은 돼지님아!'로 끝나는 경고 메시지를 남겨둔 것이다. 그렇게 남은의 복수, 무인의 복수까지 하게 된다.


 그날 이후 점점 생기가 사라져 가던 김부장은 모종의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하게 되고, 회사를 나가며 지혜를 정규직으로 추천한다. 그렇게 그녀는 드디어 인턴에서 벗어나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그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지혜는 무인, 남은, 규옥과의 만남에서 위로를 얻고 동질감을 느끼지만 실은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함을 깨닫는다.




2. 생각하기

 이야기 속에서 지혜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사람'이다. 특별할 것 없고 사회의 부조리를 경험하며 분노하지만 반격하기보다는 현실에 수긍하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 규옥은 지혜에게 '현실에 균열을 일으킬 용기'를 가져보자 이야기하고. 반면 지혜의 동생 지환은 '현실을 영리하게 따르라'라고 정 반대의 조언을 한다.

 나는 그 둘 중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항상 지혜와 비슷했다. 이쪽 말도 저쪽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는 못하고 중간에 걸쳐있는 그런 '보통사람' 말이다.


  규옥은 매 순간 부당한 현실에 주눅 들지 말고 '반격'하라고 외친다. 그 과정에서 지혜에게 '도망치고 있다.'며 강하게 말했다가 다시 안아주며 위로했다가, 병 주고 약 주고 한다. 그런 모습이 조금 무례해 보였다.

 도망치는 것 역시 지혜의 선택이고 그것이 항상 비겁한 일은 아니다. 각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고, '반격'을 위해 나의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움직이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것 또한 맞는 말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정답이 있다며 그 답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을 비난하지 말고, 스스로 충분히 고민하여 방향을 결정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그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끼숲>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당장 '현실'과 '반격' 둘 중에 한 가지를 꼭 고르지 않아도, '유예' 역시 하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여 줬으면 한다.


  그들이 하는 작은 '장난'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수준의 '반격'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장난'을 통해 얻은 것은 잠깐의 통쾌함일 뿐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이 부분이 중요하다.) 타인을 창피한 상황에 처하게 했을 때, 그것을 보며 통쾌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같은 맥락에서 '참교육'이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때문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지혜에게는 오래된 '정진'이라는 친구가 있다. 회사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친구가 왔다며 나가버리는 통에 회사 사람들 모두가 '정진'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지만, 그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지혜가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를 위해 만들어둔 하나의 도피처로, 상상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정말, 진짜'있다는 뜻의 '정진'. 규옥은 그런 정진의 정체를 알아채고 그녀에게 다가가 자꾸 정진씨와 만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나 혼자이고 싶은 시간이 있는 법이고, 가끔은 도피처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가상인물까지 만들어 냈다면 그 시간을 그냥 인정하고 존중해 줄 수는 없었을까? 그런데 이럴 수가 그녀가 그 말에 흔들린다. '정진씨'를 만들게 된 것은 사실 나를 위로해 주고 함께 있어 줄 '진짜'사람을 원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면서 지혜는 규옥을 좋아하게 된다.

 지극히 현실적인 전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반갑지 않았다.


 주인공들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들이 규옥을 만나 하게되는 행위들 역시 거창하지 않다는 것은 좋았다. 부당한 현실에 그저 순응하고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던 것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점 역시 좋았다.


 나는 1988년생이 아니다. 지혜와는 나이차이가 꽤 난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부당한 일들에 놀라지 않을 만큼은 답답한 현실에 대해 알고 있다. 최근에도 정말 다양한 부조리가 주변에 가득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며 분노했지만, 출근하고 또 출근했다. 어떤 방식으로 헤쳐나가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손원평 작가님은 작가의 말을 통해 '조언과 지침으로 지쳐 있을 그들에게 단 한마디도 보태고 싶지 않다.'라고 하셨다. 또한 '반격이 먹히지 않아도 마음속에 심지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도 했다. 내겐 규옥과 지혜의 이야기보다 오히려 그 말이 더 공감이 가고 위로가 되었다.




3. 물음표

추구하는 '반격'과 '현실'의 비율은?
나에게 '정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내가 해 본 '반격'이 있다면?













 그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언제나 동질감과 위로를 느꼈지만 실은 그 동질감이야말로, 내가 가장 벗어나고 싶은 것이었다.
 지환은 현실을 영리하게 따르라고 강조했고 규옥은 현실에 균열을 일으킬 용기를 가져보자고 했다. 정반대에 놓인 두 개념에 공통점이 있다면, 어느 쪽이든 마주하긴 괴롭다는 거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만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이 작은 공원에도 돌아야 하는 방향이 있다. 그 방향을 어긋나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생각 없는 사람이 되는 거다.
"우리는 모두 보잘것없다는 것. 정말로, 하찮기 그지없는 존재들이죠. 특별한 척해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누구나 아등바등 살아가요. 어떻게든, 그저 존재를 확인받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내가 우주 속의 먼지일지언정 그 먼지도 어딘가에 착지하는 순간 빛을 발하는 무지개가 될 수도 있다고 가끔씩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하면, 굳이 내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힘주어 소리치지 않아도 나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 그 생각을 얻기까지 꽤나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조금 시시한 반전이 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애초에 그건 언제나 사실이었다는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윈 영의 악의 기원_박지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