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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Sep 01. 2023

다윈 영의 악의 기원_박지리

벽돌책, 그리고 '惡(악)'을 찾아서



 어느 날, 지인이 내 독서 목록을 보더니 '이 책 네가 좋아할 것 같아!' 하고 책을 한 권 추천해 줬다. 무려 850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 제목도 정말 재미없어 보이는 <다윈 영의 악의기원>. 제목 때문에 다윈의 종의 기원에 관련된 책인가? 내용은 진화론에 대한 설명 뭐 그런 건가? 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와,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스토리 진행도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인물들이 생명력 넘치게 살아 움직였다. 매력적이었다. 여러모로 진입장벽이 높은 책이지만 진입하고 나면 중도하차는 불가능할 것이다. 시간이 충분히 있을 때 한번 도전해 보시길! (다 읽고 나서야 알았는데,  뮤지컬로 무대에 올랐던 작품이었다. 보러 가고 싶은데 재연.. 안 해주나..?)






1. 이야기

 1 지구부터 9 지구까지 나뉘어있는 계급사회. 주인공 다윈 영은 1 지구에서도 특별히 우수한 학교인 '프라임 스쿨'에 다니는 학생이다.

 다윈의 아버지 니스는 어릴 적 친구 제이의 추도식을 30년 동안 빠짐없이 참석하였다. 늘 다윈과 함께.

다윈은 그곳에서 제이의 조카인 프리메라 여학생 루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같은 또래의 다른 학생들보다 모범적이고 순수했던 다윈은 루미와 친해지게 되며 이전이라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루미는 삼촌 제이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그 과정에서 고위 공무원인 다윈의 아버지를 이용하고 다윈을 그 일에 끌어들인다. 경찰은 제이의 죽음을 60년 전 일어났던 '12월의 폭동'의 상징인 후드를 입은 사람이 침입했던 것을 단서로 삼아 단순히 아직 남아있던 후디가 일으킨 소동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루미는 할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을 모아둔 삼촌의 사진첩에서 '12월의 폭동'과 관련된 사진 몇 장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며, 그것이 삼촌의 죽음과 관련 있다고 생각해 단서를 찾기 위해 다윈과 함께 9 지구로 향한다. 9 지구의 실체는 아이들이 들은 것과 달랐다. 범법자들이 가득하고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휑한 도시에는 사람이 몇 없는 죽은 도시였다.

  

 다윈의 또 다른 친구 레오는 '프라임스쿨'에 다니고 있지만 상위계층의 위선, 불평등에 대해 비판하며 선생님과 매번 논쟁을 벌이는 학생이다. 레오는 하위지구 사람들의 신분 상승을 위한 사건인 그 '12월의 폭동'에 대해서도 그것이 왜 폭동이 되어야만 했는지, 그 원인은 결국 상위지구 사람들에게 있다고 이야기한다. 선생님이 '설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똑똑하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순간에도, '그 설계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다시 울타리를 부수는 일이 진짜 재앙.'이라며 맞선다.


 



2. 생각하기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순수하지만 단단한 다윈과 그에게 무한한 사랑을 내려주는 아버지 니스의 관계가 참 보기 좋았다. 그리고 루미가 나타났을 때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루미가 재미있었고, 또 프라임스쿨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늘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레오가 멋있었다.

 그러나 읽어나가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대할 때 어딘가 날 서있는 니스의 태도도, 엄마를 4 지구의 여자 아빠는 7급 공무원이라 말하며 무시하고 주말에도 프리메라 교복을 입고 다니며 '프리메라 여학생'이라는 위치에 집착하는 루미의 모습도 불편하게 다가왔다.

 니스와 루미에게는 출신과 배경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고, 내게도 이렇게 열등감이 나타나는 부분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 생각이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상위계층에 속하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이 누리는 혜택을 모른 체하지 않는 레오가 점점 더 좋아졌다. 비중이 큰 인물은 아니었지만 레오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준 작가님에게 감사하다.


 소설 속에서 1 지구는 이 사회의 핵심이다. 그래서 오히려 1 지구 속에서의 계급은 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세세하고 확실하게 구분된다. 그 중심이 바로 '프라임스쿨'이다.

 그러나 1 지구사람들은 이에 대해 불평하지 못한다. 자신이 1 지구 사람이기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은 결국 아래에 2 지구, 3 지구가 있기 때문이고 그들 역시 그 불평등을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 지구에서 하위지구를 방치하냐 물으면 그건 아니다. 하위지구로 갈수록 기차요금이 무료로 바뀌는 등 복지혜택도 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이 오히려 하위지구 사람들이 상위지구로 올라올 수 없게, 그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선을 긋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우리는 지금 모든 인간 존중받아야 하고 평등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솔직히 우리 사회 역시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9가지의 계급으로 나뉘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이 없어질 수 있을까? 사실 그 이전의 사회에서도 다른 방식의 계급은 항상 존재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급을 나누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무의식적으로도, 의식적으로도.

 많은 이들이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스트리트우먼파이터', '퀸덤'에 열광했다. 모두 일반적인 탈락이 아닌 '계급'이 존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최근 방영된 '퀸덤 2'에서는 출연진들을 실력으로 1군, 2군, 3군으로 나누는데, 너무 자극적인 방식이라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보다 조금 더 흔하게는 학벌, 직업, 재산, 가정환경 등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급을 나눈다. 소위 스스로가 급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급이 낮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상위로 올라가려 애쓰거나 오히려 그들을 먼저 배척하기도 한다. 인간의 본능일까?


 책의 제목인 '악의 기원'에 대한 내용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며 나타난다. 추리적인 요소가 있는 작품이기에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자세히 서술할 수 없음이 아쉽다. 소름 끼치는 결말을 책의 흐름을 따라가며 이 글이 아닌 책 속에서 직접 마주하시길. (설마설마하며 읽어나갔는데... 레오가 너무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버렸다.)

 





3. 물음표

'계급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악'이란 무엇인가?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기 안에 그런 모습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쓰디쓴 사탕을 천천히 녹여 먹는 일과 같았다. 사탕의 형체는 줄어들어 결국 사라지겠지만 한번 경험한 맛은 영원히 뇌리에 남을 수밖에 없다.
 "존재와 비존재는 단순히 많고 적음의 차이랑은 비교할 수 없는, 아예 다른 차원의 일이잖아. 희박하지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가능성이 생길 수 있는 거니까."
"진짜 재앙은 그 설계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12월에 다시 울타리를 부수는 일이겠죠."
진실의 가치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그것이 내가 믿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진실이다.
"정상이 아닌 산등성이는 그대로 완전합니다. 만개하지 않은 꽃은 그대로 완전합니다.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새는 그대로 완전합니다. 여러분이 남몰래 알 수 없는 불안과 시련을 겪고 있다 해도 역시 그대로 완전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내일을 위해 희생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매 순간, 여러분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게 완성되어 있습니다. 오늘을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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