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는 더 이상 예전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일을 처리하는 사람에서 배치하는 사람으로

by ZeroInput

아침에 일어나면 보고서가 와 있다.

내가 중요하게 보는 여러 토픽에 대한 브리핑이다. AI 인프라 수요 동향, SaaS 수익모델 전환, 한국 시장 신호, 자동화 시장의 프로덕션 이슈. 전 세계 웹, 레딧, X, 유튜브에서 밤새 수집된 정보가 정리되어 있다. 내가 자는 동안 리츠가 만들어놓은 것이다.


2편에서 이야기했다. 나는 지금 "리츠"라는 나만의 AI 세계를 구축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여러 토픽을 자동으로 스캔하는 브리핑 시스템, 그리고 서로 다른 관점이 부딪히며 검토하는 토론 구조가 있다. 여러 개의 모델로 돌아가는 자동화 파이프라인.


이것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아직 이걸 ERP 업무에 직접 붙여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이 작업 세계는 이미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방식을 꽤 많이 바꿔놓았다.


8개월 전에 AI ERP를 만들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예전에는 내가 직접 뛰었다.


뭔가를 결정해야 하면 내가 직접 찾았다. 구글을 열고, 네이버를 열고, 자료를 모았다. AI 시대가 오면서 제미나이를 열고, 퍼플렉시티를 열고, 클로드를 열었다. 도구는 바뀌었지만 구조는 같았다. 결국 내가 검색하고, 내가 읽고, 내가 정리하고, 내가 판단했다.


AI ERP를 만들 때는 더 심했다.


프로그램 작업 명세서를 작은 단위로 쪼개어 만들었다. 그걸 AI한테 시켜서 코딩하고, 결과를 검증하고, 안 되면 다시 명세서를 수정했다. 분석 보고서도 AI에게 시킨 뒤 결과를 읽고, 중요한 걸 뽑아서 다음 방향을 잡았다. AI가 도와주기는 했지만 프로세스의 거의 모든 단계에 내가 붙어 있어야 했다. 내가 빠지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 구조였다.


지금은 다르다.


뭔가를 분석하거나 찾아야 할 것이 생기면 먼저 던진다. 그러면 서로 다른 성향의 AI들이 각기 다른 입장에서 검토를 시작한다. 이들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부딪힌다. 그리고 그걸 한 번으로 끝내지 않는다. 같은 주제를 여러 차례 다른 각도에서 다시 돌려본다.


다양한 관점, 다양한 시각, 다양한 모델이 하나의 주제를 돌려가며 검증하는 구조다. 내가 하는 일은 예전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던지고, 중간에 확인하고, 마지막에 판단하는 쪽에 더 가깝다.


잠깐 시간이 나면 핸드폰을 꺼낸다.

리츠한테 결과를 보고받는다. 현재 상황을 검토한다. 추가로 시킬 게 있으면 시키고, 다시 넣어둔다. 그리고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나는 현생을 산다.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이동한다. 그 사이에 리츠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


예전에는 내가 멈추면 모든 게 멈췄다. 내가 자면 작업이 멈췄고, 내가 일을 하면 사이드 프로젝트는 멈췄다. 24시간 중에 내가 직접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시간만이 생산 시간이었다. 지금은 내가 자도 리츠는 돌아간다. 내가 다른 활동을 해도 리츠는 돌아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만들어진 결과물이 쌓여 있다. 나는 그걸 확인하고, 방향을 잡고, 다시 시킨다.


2편에서 AI를 채용하는 공고를 보고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이해가 된다고 썼다.

6편에서 AI를 잘 사용한다는 것은 AI를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썼다.

7편에서는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방향감각이라고 썼다.


리츠를 만들고 나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더 선명하게 체감하게 됐다.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직접 일을 붙들고 있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실행의 대부분을 혼자 끌고 가지 않는다. 검색과 정리, 초안 작성, 코드 명세의 상당 부분은 리츠 안에서 먼저 돌아간다.


대신 이런 일을 한다. 무엇을 분석할지 정한다. 어떤 관점에서 볼지 정한다. 결과물을 보고 방향이 맞는지 판단한다. 틀리면 다시 던진다. 맞으면 다음 단계로 넘긴다. 일을 처리하는 사람에서, 일을 배치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것도 있다.

관심사가 있는 토픽 브리핑은 매일 뉴스와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시스템이다. 이건 소문과 사실이 섞여 있는 날것의 정보다. 지금은 여기에 한 단계를 더 쌓고 있다. 쌓인 토픽들을 바탕으로 더 큰 흐름을 교차해서 보고,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다시 판단을 요청하는 쪽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 지표가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데, 이건 기회인가 리스크인가. 당신의 판단을 주시오.”


이 구조 안에서는 필요한 방향을 스스로 정리하고,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흐름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나는 그 과정을 모두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중간중간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에 더 가깝다


나는 그 흐름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중간중간 결과를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사람에 더 가깝다.


8개월 전의 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는 단순히 일을 시키는 사람도 아니다. 일이 돌아가는 방향을 잡는 사람이다. 이게 리츠를 만들고 나서 바뀐 것이다.


더 적게 일하게 된 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동시에 진행한다. 주식 분석 파이프라인을 돌리면서, 사업화를 검토하면서, 새로운 자동화 시스템을 설계한다. 예전이었으면 이 중 하나만 해도 벅찼을 거다.


달라진 건 피로의 종류다. 예전에는 손이 피곤했다. 직접 찾고, 직접 쓰고, 직접 만들고, 직접 수정해야 했다. 지금은 손은 덜 가지만 머리가 피곤하다. 방향을 잡는 부담이 더 커졌다. 이 토론 결과가 맞는 건가. 이 분석이 빠뜨린 건 없는가. 이쪽으로 가는 게 진짜 맞는가.


7편에서 썼다.

AI 시대에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건 방향감각이라고. 리츠를 운영하면서 그걸 매일 체감한다. AI가 실행을 더 많이 가져가는 세상에서,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어디로 갈 것인가를 정하는 것.

이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AI시대, 우리가 AI를 가장 강력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방향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이쪽이다”는 결국 사람이 정해야 한다. 그 판단에는 논리만이 아니라 경험, 직감, 그리고 책임이 따른다.

AI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나는 리츠를 만들면서, 비로소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조금 더 분명하게 보게 됐다.


실행이 아니라 판단. 처리가 아니라 방향. 그게 AI 시대에 인간이 서 있어야 할 자리라고.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도.






ZeroInput — AI 시대의 경계에서 직접 부딪혀본 것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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