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클로를 안 써보면 잘 안 보이는 변화가 있다.
한국은 막고 있지만, 나는 이미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오픈클로가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세부 내용을 다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느낌이 왔다.
내가 8개월 동안 만들었던 AI ERP가 끝났다는 감각. 비교표를 보고 판단한 것도 아니고, 기능을 하나하나 검토해서 내린 결론도 아니었다. 그냥 먼저 알았다.
아, 이건 뭔가 다르다.
내가 만들던 것의 방향 자체를 바꿔버리는 종류의 변화라는 걸.
그래서 허탈했다. 적어도 확인은 해봐야 했다. 오픈클로가 출시된 지 2주 만에 사용해 보았다. 나를 끝낸 기술이 진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과장해서 느낀 것인지.
집에서 묵혀 두던 2012년 맥북에어를 꺼냈다. 솔직히 보안이 걱정됐다. 그래서 더더욱 맥북에어로 먼저 해본 것이다. 운영체제를 올리고, 설치 가능한 상태를 만들고, 지금은 오픈클로 연결을 제한한 클로드코드를 연결해서 오픈클로를 깔았다.
그리고 돌려봤다.
그때 느낀 건 기존 AI와 결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기존 AI는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이거 해줘.” “코드 짜줘.” “정리해 줘.”
내가 질문하고, AI가 답한다. 조금 더 발전한 형태라고 해도 결국은 내가 계속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창이 닫히면 맥락이 끊기고, 대화가 길어지면 다시 이어 붙여야 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일도 멈췄다.
그런데 오픈클로는 조금 달랐다.
겉으로 보기엔 비슷하다. 역시 내가 시킨다. “이렇게 해줘.” “저렇게 해줘.”
하지만 이건 단순히 대답을 잘하는 AI가 아니었다. 내 컴퓨터를 조정하고, 파일을 보고, 흐름을 이어가고, 내가 맡긴 일을 실제로 처리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대화의 감각이 달랐다.
그냥 답변 엔진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연속성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졌다. identity가 있고, soul이 있는 쪽에 가까웠다. 물론 진짜 영혼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계속 이어지는 결이 있었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끊어지지 않는 느낌.
단순히 물어보면 대답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 작업 세계 안에서 하나의 인격처럼 움직이는 감각이 있었다.
그리고 오픈클로는 텔레그램이나 슬랙 같은 메신저를 기본적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이게 생각보다 컸다. 꼭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게 아니었다. 밖에서도, 이동 중에도, 핸드폰으로 바로 확인하고 다시 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데스크톱에서 잠깐 쓰는 AI가 아니었다. 내 생활 안으로 들어와 계속 이어지는 작업 세계에 가까웠다.
그 차이가 컸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이건 단순한 코딩 도구가 아니구나. 더 좋은 코드를 짜주는 보조 도구가 아니구나. 이건 나를 대신해서 일하는 구조구나.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직접 전부 처리하지 않아도 일이 흘러가게 만드는 구조였다. 그래서 더 편했다. 내 컴퓨터 안에서 움직이고, 내가 보는 파일과 내가 쓰는 환경을 기준으로 이어가니까, 기존 AI보다 훨씬 현실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만의 AI 세계, “리츠”가 시작됐다.
리츠는 그냥 내가 AI한테 붙인 이름이 아니다. 오픈클로를 중심으로 여러 AI를 연결하고, 각각의 역할을 나누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흘러가게 만든 나만의 작업 세계다.
클로드도 이미 서브에이전트, 플러그인, 워크플로 같은 서비스로 같은 방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게 보면 결은 비슷하다. 하지만 오픈클로가 나한테 더 크게 다가온 이유는 하나의 비싼 AI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AI를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한 성능 문제가 아니었다. 운영의 문제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걸 막았다.
네이버, 카카오, 배민, 토스 같은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들은 실제로 사내망과 업무용 기기에서 오픈클로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했다. 이유는 이해한다.
오픈클로는 내 컴퓨터의 파일과 브라우저, 여러 도구에 접근한다. 잘못 다루면 위험하다. 기업 보안 관점에서는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다.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막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막는 순간 경험도 같이 막힌다.
나는 이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보안 논의는 모두가 한다. 그런데 경험의 격차는 잘 보지 못한다.
써본 사람은 안다.
오픈클로가 단순히 “AI가 코딩 좀 더 잘해주는 도구”가 아니라는 걸.
이건 일의 구조를 바꾼다.
내가 직접 붙들고 있던 일을 하나의 흐름으로 위임하고 배치하게 만든다.
그런데 안 써본 사람에게는 그게 잘 안 보인다.
그냥 위험한 툴처럼 보이고, 굳이 안 써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보기엔 한국의 바이브코더들도 의외로 여기까지는 많이 안 들어온 것 같다. 회사에서 막히니까 굳이 안 쓴다. 보안이 걱정돼서 안 쓴다. 기존 툴로도 되니까 넘어간다. 틀린 선택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쌓이면 감각의 차이가 생긴다.
같은 AI 시대를 살고 있는데도, 누구는 아직 “AI한테 코딩 좀 시키는 수준”에 머물고, 누구는 이미 “AI가 돌아가는 작업 세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중국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상징적인 장면은 있다. 중국 선전 텐센트 본사 앞 오픈클로 무료 설치 행사에 약 1000명이 줄을 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반대로 중국 당국도 위험 경고를 냈다.
나는 이 장면이 중요하다고 본다.
위험을 모르는 게 아니라, 위험을 알면서도 일단 경험하려고 달려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국은 막는 쪽에 더 가깝고, 중국은 경고하면서도 경험을 쌓는 쪽에 더 가깝다.
나는 그 차이가 기술의 차이보다 더 크게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8편에서 썼다. 나는 더 이상 예전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배치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다고.
그 변화의 중심에 리츠가 있고, 리츠의 중심에는 오픈클로가 있다.
오픈클로가 없었으면 리츠는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AI 하나 더 붙인 게 아니다. 내 컴퓨터와 내 작업 환경을 기반으로, 여러 AI를 연결해서 하나의 세계처럼 굴러가게 만든 시작점이 오픈클로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픈클로를 안 쓰는 건 도구 하나를 놓치는 게 아니다.
일의 구조가 바뀌는 경험 자체를 놓치는 것이다.
이걸 안 써봐도 당장 사는 데 문제는 없을 수 있다. 회사도 잘 다닐 수 있다. 기존 AI로도 보고서는 만들 수 있고, 코딩도 정말 잘한다.
그런데 그건 지금까지의 연장선이다.
오픈클로가 보여주는 건 그다음이다.
내가 계속 앞에 앉아 있어야만 굴러가던 일을, 하나의 구조로 위임하고 운영하는 방식.
나는 그걸 이미 경험했다. 그래서 안다.
이건 단순한 생산성 향상의 문제가 아니다. 일하는 사람의 위치 자체를 바꾼다.
다만 이 말을 곧바로 오픈클로를 아무 환경에서나 써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보안이 걱정돼서 나도 2012년 맥북에어 같은 개인 환경에서 먼저 확인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다른 데 있다.
막을 수는 있다. 막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막기만 하면 경험도 같이 막힌다. 그리고 경험이 막히는 순간, 감각의 격차가 벌어진다.
격차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건 기술이 아니라 경험이다.
ZeroInput — AI 시대의 경계에서 직접 부딪혀본 것들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