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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름 Aug 06. 2024

쉿! 중식당에는 비밀이 가득해

중요한 손님이 오셔서 식사를 대접해야 하는 날

오늘은 부장님을 모시고 다른 공공기관인 A공단에 출장 가는 날. 지난겨울 A공단에서 자문을 구한다는 협조요청이 왔다. 그래서 몇 달 동안 간간히 회의를 진행해 왔는데 아무리 그쪽이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지만 매번 상대가 여기까지 오는 게 좀 걸렸다. 본사가 다 같이 서울에 있었을 때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는데 공공기관 지방이전 이후로 우리는 대한민국 지도 양 끝으로 쫓겨나 버렸거든. 2시간 회의를 하자고 왕복 5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는 게 말이 되냐고. 그래서 영상회의로 하자고 몇 번 말해봤지. 근데 그쪽 상사분이 단칼에 거절하셨다.


뭐라셨더라. 자고로 회의는 말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분위기나 전체적인 뉘앙스를 읽어가며 진행하는 게 제 맛인데 말할 타이밍도 못 잡아서 우물쭈물 거리는 것도 그렇고 자기는 영상회의가 영 정이 안 간단다. 자고로 사람은 이렇게 직접 대면을 해야 금방 친해지고 그런 거 아니겠냐는 말씀.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정도가 있지. 그래. 본인이 운전하는 거 아니다 이거야. 자기는 상석에 편히 누워 코를 골며 자다가 나온 김에 다른 지역 특산물도 먹고 일도 안 하고 얼마나 좋으시겠어. 나도 저런 상사 있었지. 하여튼 여기나 저기나 먹고살기 참. 쯧쯧.




기껏 큰 맘먹고 본사를 따라 이 시골까지 이사했건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줄줄이 잡힌 출장에 회사에 붙어있지를 못 한다. 정부부처들이 모여있는 공무원의 도시 세종시까지 사무관님들 뵈러 찾아가야지. 공정성이 중요한 시대 외부 인사들 모시고 하는 회의나 자문은 나날이 늘어가는데 지방까지 와서 참석하라고 하면 아무도 안 오잖아. 영상회의는 예의가 아니라 그러고. 결국 다 이고 지고 서울까지 날아가야 한다. 서울 출장자가 매일같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 회사에는 통근버스 말고 하루 1번 왕복하는 출장용 셔틀버스가 따로 있을 정도라니까.


우리가 외부 전문가로 모시는 분들은 다 그 바닥에서 한가닥씩 하시는 바쁜 분들이라 일정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거든. 그래서 부득이하게 가끔 조찬회의나 저녁회의도 한다. 그러면 아침 9시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는 자동으로 포기. 운 좋게 회사 출장차를 따내면 그나마 다행인데 공공기관이라 항상 자원이 부족한 탓에 출장차는 언제나 예약 전쟁. 그 차를 잡지 못하거나 혹여 운전할 사람이 없으면 그때부터는 진짜 지옥도가 펼쳐진다. 꼭두새벽부터 그 온갖 서류와 회의용 짐들을 다 끌어안고 지방이라 잘 잡히지도 않는 모닝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에 가서 부랴부랴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면 대중교통을 갈아타서. 아오오오. 그 짓을 집에 올 때 한번 더!


수도권 사는 윗분들이야 서울 출장 좋아하시지. 여기까지 출근 안 하고 바로 회의장 갈 수 있잖아. 하지만 순순히 지방까지 내려온 직원들은 고속도로에서 뼈가 갈려나간다. 전날 미리 가서 모텔 같은 곳에서 자면 안 되냐고? 직원들이 싫어하는 건 둘째치고 방만경영이다 뭐가 출장비 지급기준이 얼마나 빡빡한데. 까딱하다 불인정 판정이라도 받으면 일하냐고 억지로 잔 숙박비가 바로 내돈내산 행. 그나마 서울은 선녀지. 다른 지방 한번 가려고 하면 교통편도 안 좋아서 직행버스나 기차도 없다.


출장비? 교통비에 이거 저거 해서 돈이 몇만 원 나오긴 하는데 이 지방도시에서 터미널이나 기차역이 회사 앞에 있을 리가 없잖아. 별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하는데 왕복 택시비는 교통비로 인정이 안 된다. 하하. 노 어이. 게다가 출장비는 일비 개념이라 근무시간이 한참 지나 퇴근해도 초과수당도 안 나와. 결국 언제나 마이너스. 출장 때마다 길바닥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 기분이다. 근데 뭐 여기만 그러겠어? 공공기관 팔자 다 똑같지.




그러다 마침 다른 업무로 서울에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 예전에 A공단 부장님이 자기 회사에는 서울에 지역본부가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담당 과장님도 주말부부라 그랬었지? 서울에서 회의하자고 해볼까? 그래서 그쪽에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흔쾌히 반겨주신다. 이렇게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A공단 과장님. 아이고 배려는요 무슨. 같은 실무자끼리 으쌰으쌰 하는 거죠. 와 밥을 사주신다고요? 저야 좋죠. 저랑 부장님은 다 잘 먹어요.


“에이 번거롭게 운전을 뭐하러 해. 우리 그냥 회사 셔틀버스 타고 가자.”


예전 부장은 목적지가 코 앞이라도 직원이 운전하는 차가 아니면 못 간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담당자가 운전을 못하면 애먼 직원들을 억지로 붙들고 다녔다니까. 다행히 지금 부장님은 안 그래. 혼자서도 잘 다니시고 이렇게 배려도 해주시고 누구랑은 차원이 다르지. 덕분에 회의가 잡힌 팀장님 없이 부장님과 둘만 떠나는 출장길이 반갑기도 하다. 버스에서 각자 숙면을 취하고 오랜만에 탄 지하철에서 도란도란 근황 토크를 나눈다. 회의에서 무슨 얘기를 할까. 새로 온 막내는 잘 지내? 과장님은 힘든 점 없고? 항상 힘들다는 내 농담에 '어이구!'를 외치시며 짓궂은 표정을 지으신다. 그러는 사이 화사하게 드러나는 풍경. 한강이다. 맑은 하늘에 둥실 떠있는 뭉게구름. 햇빛을 만나 반짝이는 강물. 그림 같네. 한강이 유난히 예뻐 보이는 걸 보니 오늘 내 마음은 안녕한가 보다. 어쩔 수 없이 몸은 좀 고되지만 오랜만에 소풍 같이 즐거운 출장.


말로만 듣던 A공단의 서울 지역본부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고 예상은 했지만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으리으리한 빌딩. 와 세상에 건너편에는 백화점도 있네. 역세권인 것도 부러운데 좋겠다. 나도 지방이전 전에는 이런 곳에서 일했었는데. 본사는 우리처럼 지방으로 옮겨갔지만 국민들과 직접 대면하는 업무가 많아서 전국 각지에 여기저기 지사도 많고 그들을 관리하기 위해 대도시마다 거대한 지역본부가 있다는 이 회사. 너무 부럽다 진짜.  




“어서 오세요.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로비에 들어오자마자 대기 중이던 A공단 과장님을 만났다. 방문객용 사원증을 받고 스피드게이트를 통과하는데 남의 회사라 그런지 색다른 기분이 든다. 금지된 구역에 들어가는 느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사무실. 우와! 우뚝 솟은 남산타워가 정면으로 보인다. 여기서 보면 야경 너무 이쁘겠… 아. 아니지. 회사에서 야근하며 보는 풍경이 좋을 리가 있나. 절레절레. 커다란 회의실에 들어가니 익숙한 분들 옆으로 초면인 얼굴들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가방 안쪽의 명함을 꺼내 익숙하게 교환한다. 첫 출장 때 혹시 모르니 명함을 챙겨가라는 선배의 말에 어찌나 떨리던지. 인터넷으로 명함교환 매너를 검색하고 혼자서 연습도 했다. 하지만 두둑하게 챙긴 성의가 민망하게 딱 봐도 막내급인 나의 명함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인사조차 받는 둥 마는 둥 하는 그들 앞에서 부끄러워진 손은 슬그머니 주머니 속으로 명함을 숨겼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흑역사. 그랬는데 요새는 명함을 주는 게 다른 의미로 무섭다. 이게 돌고 돌아 나에게 새로운 일을 불러올까 봐.


명함에는 여기서 내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정보들이 짧고 굵게 담겨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작고 예쁜 종이에 불과하지만 그 내용에 따라 강력한 힘을 가진 전설의 명함들도 있지. 어떤 이의 명함은 뒤돌아서 바로 버려지는 반면 어떤 명함들은 멋진 보관함에 소중한 부적처럼 고이 간직되었다가 후임자에게 대대손손 전해지기도 한다. 나는 평생 만나 뵙지도 못할 귀한 분의 명함을 가지고 있다며 허세를 부리는 진상들도 있었지. 그게 자신의 업적인 양 거들먹거리는 모습. 근데 있잖아요. 그 사람도 당신의 명함을 당신처럼 귀하게 여겼을까요?




“시간이 다 돼서 회의는 그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늘 나눈 이야기는 아직 저희 쪽에서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서 대외비로 보안 부탁드립니다.”


암요 암요. 신입사원 때는 궁금했다. 회의만 하면 왜 맨날 대외비라고 하지? 이런 거 아무도 안 궁금해할 것 같은데? 이게 왜 비밀이지? 누구한테 비밀이라는 거야? 하지만 지금은 토를 달지 않는다. 회사에는 뭐랄까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것들이 있다. 대외비도 그러하다. 아주 중요한 비밀이 아니더라도 확정되기 전에 퍼져버리면 나중에 내용이 변경되었을 때 우리 입장이 당황스러울 수 있는 사안이니 소문에 주의해 달라는 이 긴 문장을 대. 외. 비. 3글자로 퉁칠 수 있으니 너도나도 쓰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애용하고.


“식사는 말씀드린 대로 중식으로 정했습니다. 괜찮으시죠?”


회의 후 중식당이라 아주 FM스러운 선택이다. 멤버에 따라 달라지지만 나름 격식 있는 비즈니스 모임에 맞는 식당을 찾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대접받는 느낌을 들게 해 주는 분위기, 호불호 적고 번거롭지 않은 깔끔한 구성의 메뉴, 소위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청탁금지법에 위배되지 않는 예산 범위, 해당 인원을 수용가능한 테이블, 마지막으로 대외비 내용을 편히 떠들 수 있는 별도의 룸. 딱히 정해진 룰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런 기준으로 엄선된 식당을 선택하는데 이런 요건을 고루 갖춘 식당을 찾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옛날옛적 막내 시절에는 회사빌딩이 모여있는 곳마다 이런 모임을 하기 좋은 큰 식당들이 많았다. 메뉴도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엄청 다양했지. 그러다 김영란법이 제정되면서 식사비용에 제약이 생기자 단독건물로 운영되던 오래된 한정식집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곧이어 불어닥친 코로나라는 토네이도. 대형식당들이 줄줄이 쓰러졌어. 부서사람들과 수습해제를 축하했던 유명갈빗집도 없어졌고. 곧 회복되기를 빌며 버티던 식당들도 계속 오르는 임대료와 회식을 기피하는 트렌드에 하나둘 사라졌고 그 자리를 카페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카페가 이렇게 많아도 점심시간에는 앉을자리가 없다니까. 예전에 본 카페공화국이라는 기사제목이 찰떡이다.


실무자의 이런 고민을 덜어주는 든든한 존재가 바로 중식당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지역마다 제법 큰 규모의 중국요릿집이 하나씩은 있다. 이들은 개별 룸에 근사해 보이는 코스요리까지 갖추고 있고 육해공을 넘나드는 각양각색의 식재료에 찜, 튀김, 볶음, 탕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호불호도 적은 편. 게다가 그 음식은 또 얼마나 화려하며 잘 먹는 사람들도 섭섭하지 않게 포만감을 채워주니 걱정이 없다. 혹시 저녁이라면 다양한 도수의 술까지 완벽하지. 그래서 과장님이 유선상으로 중식이야기를 꺼냈을 때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만한 선택지가 없지. 암 그렇고 말고. 역시 이 과장님 보통이 아니네.




처음 오는 곳이지만 낯설지 않은 붉은 장식과 동그란 테이블. 익숙한 게살수프를 호록 호록 떠먹는다. 이 집은 게살이 많네. 진짜 게살일까? 짭짤하고 따땃하니 회의동안 긴장되어 있던 몸이 사르르 풀린다. 종업원님이 바쁘지만 친절한 손길로 다음 메뉴인 유산슬을 덜어주신다. 이런 프로종업원님이 계신 것도 중식당의 아주 큰 장점. 아니면 서로 드시라며 어색한 손짓을 주고받거나 막내가 나서서 음식을 나눠드려야 하잖아. 보통 메인메뉴의 시작은 볶음요리다. 흐물흐물한 해삼과 버섯에 아삭한 죽순, 탱글한 새우, 쫀득한 돼지고기까지 다양한 식감이 조화롭다. 맛은 중식에서 은근히 보기 힘든 슴슴한 맛. 나는 특히 죽순을 좋아해서 이 요리를 아주 좋아한다.


한결 편해진 우리는 진짜 대외비 토크를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소문으로 들은 내용의 진실을 확인하는 시간. 담당 사무관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던데 진짜인지. 새로 오신 이사님은 어떠신지. 요즘 회사분위기는 어떠한지. 사면이 둘러싸인 방이지만 안심하지 않고 소곤소곤 대화를 나눈다. 사실 아주 새롭지는 않은 이야기다. 회사는 달라도 같은 업계라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이고. 다른 회사사람끼리는 엄연히 지켜야 하는 선이 있어서 대외적으로 밝힐 수 있는 내용만 답해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흥미진진한 것은 마치 수학여행 때 진실게임처럼 이 분위기가 주는 그 맛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처음 듣는 이야기마냥 그 좋아하는 유산슬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이 대화를 즐기고 있다. 한창 이야기에 빠져있다가도 드르륵 방문이 열리면 크흠흠 다시 조용해진다. 왜냐고? 첩보영화 같고 재밌잖아. 키키.


이번 메뉴는 튀김! 유린기다. 새콤 바삭한 유린기가 내 앞에 놓이기를 기다리는데 공단 부장님이 나에게 일한 지 얼마나 됐냐고 물으신다. 이제 좀 있으면 10년쯤 되어간다는 내 답에 부장님이 볼수록 너무 아깝다며 왜 자기 회사에 안 왔냐는 농담을 건네신다. 아 칭찬타임이구나! 역시 거기 과장님도 잘하시는데 왜 남의 직원을 탐내시냐며 웃으시는 우리 부장님. 하하 호호. 어색할 때는 그저 웃으면 밥을 먹으면 된다. 유린기를 한 입에 쏙! 이렇게 소스에 푹 절여졌는데 여전히 바삭하다니. 얇지만 바삭하게 잘 튀겨진 껍질 안에 촉촉한 닭다리살이 느껴진다. 이 집 잘하네. 거기에 느끼할 틈 없게 꽉 잡아주는 매콤한 고추의 향. 유린기가 다 넘어가기 전에 함께 주는 양상추도 얼른 입에 넣는다. 와작와작 신선한 맛에 레몬향이 더해져 입 안이 상큼해진다.




이어서 크림새우가 나온다. 와. 저 토실토실한 것 좀 봐. 내가 새우에 홀린 사이 부장님들은 사교육비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과장님도 아이가 있으시구나. 할 말이 없어 간간이 고개나 끄덕이며 새우를 베어 물었다. 도저히 한입에 먹을 수 없는 큼직한 새우. 아주 흡족하구먼. 뭐든 맛있다는 튀김에도 레벨이 있다. 그중 언제나 상위권을 독차지하는 우등생. 새우튀김은 맛이 없을 수가 없지. 거기에 땅콩가루가 넉넉히 들어간 이 크림소스까지. 캬아! 기가 막힌다. 매콤한 칠리새우도 맛있지만 난 크림새우파다. 남은 새우튀김에 그릇에 남아있던 소스를 듬뿍 묻힌다. 정말 맛있어. 하지만 큰일이다. 배가 부른데 식사가 아닌 새로운 요리가 들어온다. 언제 끝나는 거지?


'마지막 요리입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고추잡채와 꽃빵을 건네주시는데 으어어. 나만 배가 부른 건 아닌지 다들 약간 버거워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중식 코스의 묘미. 꽃빵을 만져보니 아주 따끈말랑 하다. 그래 이걸 어떻게 안 먹어. 말려있는 꽃빵을 쭉 뜯어서 접시에 놓고 고추잡채를 듬뿍 얹는다. 젓가락으로 호로록 싼 꽃빵을 꼭 붙들고 깔끔하게 쏘옥. 아작아작. 씹는 맛이 좋은 알싸한 고추잡채와 폭신하면서도 은근하게 달달한 꽃빵은 천생연분이다. 근데 너무 배불러. 날 바라보는 나머지 꽃빵에게는 미안하지만 젓가락을 내려놓고 헉헉거린다.


식사와 함께 후식으로 수박이 나왔다. 와 이건 도저히 다 못 먹겠다. 미안하다 지구야. 그렇지만 여긴 직장이고 난 선택권이 없었어. 국물이나 조금 먹어야지. 불맛이 훅 느껴지는 제대로 된 짬뽕이라 더 아깝다. 이렇게 홀대받을 맛이 아닌데. 좋아하는 목이버섯만 겨우 하나 집어먹고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이제 진짜 마지막 입가심으로 달달한 수박을 한입 하려는데 '호로로로로록' 내 양 옆으로 엄청난 소리가 들린다.  응? 다들 배불러서 한 입만 하신다더니 한 입에 다 드신 것 같은데? 역시 위대한 분들의 스케일은 남다르구나.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대외비 수다를 엿들으며 옆에 놓인 시원한 차를 마신다. 음~ 이 익숙한 구수함. 느끼한 입안이 씻겨 내려간다.




왜 이렇게 못 먹냐는 윗분들의 멘트에 당황하지 않고 너무 잘 먹어서 지금 겨우 날숨만 내쉬고 있다며 웃음으로 넘긴다. 크하하하. 쩌렁쩌렁 울리는 웃음소리. 이게 그렇게 웃긴가? 나 아재개그 스킬이 레벨 업되었나 봐. 공단부장님은 박수까지 치시며 역시 너무 아까운 인재라고 좋아하신다. 아하하. 영광이네요. 커피까지 사주시겠다는 그들을 완곡히 거절하고 부장님과 지하철 역으로 돌아가는 길. 부장님 혹시 저랑 이 주변 산책 좀 하실래요? 저 배가 터질 것 같아요. 다행히 반겨주시는 부장님. 30대가 되니 소화도 잘 안 되는데 큰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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