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순간

교육자의 기쁨

문자가 왔다.

“선생님, 커피 말고 아이스티로 바꿔도 돼요?”

“그럼요~” 얼른 답장을 보낸 후에 화장을 마무리 짓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복지관 1층 카페테리아에서 내가 음료수를 사주기로 한 날이다. 수강생들이게 지난 시간 미리 주문을 받아놓은 상태였지만 실버님이 지난주와 달리 마음이 바뀐 모양이었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 아이스커피 4잔과 복숭아아이스티 3잔을 주문했다.

“칠. 천.. 원입.. 니다.”

음료 7잔에 7천 원이라니...

알고 있었지만 들을 때마다 신기하고 놀랍다.

뇌성마비장애인 시설이라 직원들도 뇌성마비 장애인들이다. 카드를 내밀자 현금만 받는다고 했다. 지갑을 여니 5천 원짜리 1장과 천 원짜리 1장이 있었다.

“죄송하지만 아이스티 한잔은 취소할게요.”

직원이 주문 수정을 누르는 동안 동전지갑을 열어보니 백 원과 오백 원짜리 동전이 두둑하게 들어있었다.

내 음료를 빼려고 했는데 동전을 보니 다시 주문해야겠다 싶었다.

“정말 죄송한데, 아이스티 다시 주문해도 될까요? 처음 주문한 대로 주세요.”

직원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주문을 다시 한번 천천히 꼼꼼하게 확인한다. 표정은 없지만 이들의 표정 가지고만 감정을 파악하지 않는 게 훨씬 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눈치는 보지 않기로 한다. 주문을 자꾸 번복한 것에 대해 미안했지만 복잡한 감정 소모는 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커피숍에서 주문을 번복했다면 직원이 기분 나쁠거라는 생각에 그들의 표정을 보며 눈치 살피느라 잠시 피곤했을 것이다.

솔직하게 소통하는 것이 뇌성마비 장애인들과 대화할 때 가장 좋다는 것을 알았다. 오해 없이 선입견과 편견 없이 말하는 그대로 믿고 받아주는 것.

이들과의 소통방식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중이다.

음료수를 달랑달랑 들고 2층 교실로 올라갔다. 모두에게 음료수를 나눠주었다.

그때 기도를 좋아하는 아멘님이 기도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종교가 없는 나지만 아멘님의 기도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고 진지하며 또 재미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우리 선생님 돈도 없는데 음료수를 사줘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애들이 잘 자라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아이언님 건강하게 도와주시고 아이언님이 행복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음료수 감사하다는 시작으로 아이언님의 행복을 빌어주는 결말로 끝난 기도였지만 요즘 부쩍 아이언님에게 “오빠 ! 오빠!”하면서 챙기는 모습을 보고 있었기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저 재미있고 사랑스러울 뿐

수업이 시작되었다.

“우리 2주 전에 명암에 대해 배웠지요?

오늘은 사물을 정해서 명암을 넣어 볼 예정이에요.”

나는 하트 비슷한 형태를 스마트칠판에 그리며 말했다.

“이런 형태로 사과를 그려보세요~”

모두 힘을 주어 펜을 잡고 집중하기 시작한다. 조용하다. 나는 이 순간이 가장 좋다. 몰입의 순간들, 누구 하나 흐트러지거나 딴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그림에만 집중하고 있는 이 시간.

나는 천천히 리듬감 있게 걸어 다니며 수강생들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다가가 예시를 들어 보이거나 설명을 하고 조금 더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나의 도움으로 누군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현장의 순간들을 사랑한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이 정말 잘 맞다고 새삼 느끼고 있다.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능력과 재능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이 직업은 희열 이상의 감동까지 준다.

나의 가치는 사람들에게 배움의 즐거움과 기쁨을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일탈자 없이 모두가 몰입하고 있다면 이것만큼 최고의 감동적인 순간도 없을 것이다.

이분들이 나를 최고의 선생님으로 만들어준다.

우리는 오늘도 즐겁게 그림을 그렸다.

이 시간, 이 순간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