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드리는 편지글
그대에게,
안녕, 잘 지냈나요 ? 하루아침에 코끝에 닿는 바람이 차가워졌어요. 무기력해지기 딱 좋은 계절이지만 그간 안녕히 지냈길 바라요.
혹시 그런 적 있나요 ? 정말 설레고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던 순간을,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요. 아직도 낯선 23년의 11월 두 번째 주, 저는 지금이 그렇네요.
곧 공연 하나를 앞두고 있어요. 첫 공연이 이틀 정도 남은 상황이고 두 달가량 준비한 공연이에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연출님의 작품이라 오디션 연락을 받았을 때 얼마나 신났는지 아직도 생생해요. 데뷔 작품 이후로 이렇게 재밌게 준비한 작품이 오랜만이라서 제게는 참 소중한 공연이에요.
저는 우울증이 있었어요. 중증은 아니고, 그냥 감기처럼 오는, 딱 그 정도. 원래 INFP 인간이 잡생각들이 많아서 쉽게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냥 그런 거예요. 그래서 사실 그동안 끊임없이 작품을 해왔는데 그 과정이 조금 고통스러웠어요. 분명 나는 내가 하고 싶어서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연습하고 무대 위에 서있는 동안은 너무나 즐거운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빼곡한 칼 위를 걷는 것만 같았어요.
그런데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는요, 마냥 행복했어요. 연습하러 가는 날이 기다려졌고 연습하러 가는 길의 발걸음이 가벼웠어요. 음식으로도, 운동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난리를 쳐도 채워지지 않던 마음에 드디어 무언가 잔뜩 차오르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기대했고, 열정을 쏟았고, 빨리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공연날이 다가오는 게 두렵더라고요. 이 공연이 끝나면 얼마나 공허해질지 참 두려워요. 갑작스럽게 차가워진 날씨처럼 마음을 채우고 있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그 빈자리가 차게 식어버릴까 봐 두려워요. 이렇게 사서 걱정하는 버릇을 좀 고쳐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저의 요즘은 계절만큼이나 싱숭생숭하고 오락가락해요. 빨리 왔으면 싶다가도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 내일 아침 해는 곧 다시 떠오를 테죠. 잠에서 깨어난 제가 느낄 감정이 예상이 가서 잠들기가 싫은 새벽이에요.
그래도 우선 지금은 이 눈치 없는 두려움을 묻어둬야겠어요. 두려움만큼 절 설레게 하는 기대감에 애써 더 집중해보려고 해요.
혼자 밤중에 생각이 또 많아져서 이렇게 편지를 써봤어요.
그대는 오늘도, 내일도, 이번주 내내 행복으로 충만하시길 바라며,
2023년. 11월. 08일.
녕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