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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녕,극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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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아 Feb 20. 2024

오늘도 일어났다

딜레마

나의 죽음으로 빼앗긴 나의 존재를 찾기 위해, 난 오늘도 죽습니다.
  쓰는 작품마다 히트를 친 “대필”동화 작가 이지영. 일곱번의 자살기도 실패 끝에 여전히 죽지 못하고 여덟번째 눈을 떠 다시 유서를 쓰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존재, <무명>. 무명은 죽길 바라고 있는 지영의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며 약이라도 올리듯 죽음을 속삭인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지영. 그녀가 죽지 못하도록 옭아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살아야 하는 이유, 죽고 싶은 이유, 그리고 죽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살아가고 있는걸까?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태어난 김에 그냥, 혹은 무언가에 발목 잡혀서. 종종 “나는 왜 살고 있는가” 같은 생각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명확히 머릿속에 들어온 답은 없었다. 어쩌면 태어나서 사는 김에 어떠한 목적이라도 이루고자 하는데 그 목적에 발목이 잡혀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다 얻은 행운 혹은 바라지 않았던 시련 같은 이 삶이라는 것을 포기하기까지에 얼마나 많은 사고와 감정들이 오갔을 것인가. 물론 충동적으로 섬광이 인 결단일 수도 있을 테다. 허나 분명한 것은 어떠한 계기가 존재할 것이라는 것. 한 인간이 그것을 깨닫는데 이르는 시간은 생각보다 찰나라고 한다. 순식간에 그 찰나가 머리를 관통했을 때 인간의 마음은 두가지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 두려움, 혹은 확신. 그러나 그 갈림길 중 어느곳으로 이끌리더라도 예상하는 결과를 이루지 못할 변수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 작품의 이지영이라는 인물은 그런 인간상을 다소 극적인 형태로 보여주려 한다.

  그렇다면 죽음에 확신을 가졌을 때 조차 왜 그것을 쉽게 이행하지 못하는가. 삶이라는 것은 꽤나 다채로운 것들, 예컨대 가정, 사랑, 미련, 양심, 두려움, 반발심, 죄책감 등이 얽히고 설킨 타래와 같다. 이 타래에 발이 꼬여서, 아니면 외면하고자 했던 실낱같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이들을 살게 한다. 여기에서 마음과 정신이 죽은 채 살아가는 이들과 실제 육체의 숨이 거두어진 이들이 다를 바가 무엇일지 돌아보게 된다. 과연 무엇이 더 낫고 더 고통스러울지 감히 알 수는 없다. 단지 숨이 멎어 세상을 떠났는가, 또는 숨이 붙어 있는 채 삶의 의미를 잃었는가의 차이일 것이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인물 이지영과 의문의 존재 무명이 삶과 죽음의 아스라한 경계선에서 옥신각신 펼치는 이야기. 다소 우스꽝스럽거나 너무 무거워 보일 수 있으나, 오늘날 현실에 대입하여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면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하여 깊게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40222-240225, 공간222

날이면 날마다 창작해 中 오늘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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