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그리고 아흔여섯 번째 시
언령
필요한 말만 하던 시절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운 혼이 어리던 때
말이 많아지고, 현란해지고
말로 뽐내기 시작할 무렵부터
힘은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한 번, 두 번 사용할 때마다
진정한 의미는 깎여나가고
공허한 껍데기만 남았다
사랑해 사랑한다고
예뻐 예쁘다고
습관적으로 지껄이다 보니
하는 자도 듣는 자도
별 감흥 없는
허튼소리가 되어버렸다
그 백 번의 사랑해가
다 진심이었을까
그만 화내, 사랑해
떠나지 마, 사랑해
나 피곤해, 사랑해
제발 그만해, 사랑해
이번 생에
단 한 번이라도
혼을 담아
말을 해본 적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