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2월 6일, 얼어붙은 땅 북유럽으로 해외 출장을 떠났다. 이번 출장은 이전에 비해 조금 여유가 있었던지라 주말에 잠깐 근교 구경도 하고, 업무를 마치고서는 바로 프랑스로 휴가도 다녀왔다. 이번 출장을 계기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 '바쁘게 일하면 시간이 잘 간다'는 말은 살짝 거짓말이다. 바쁘게 놀면 시간이 더 잘 가더라.
한국으로 돌아와 시차 적응으로 고통받기를 며칠, 새벽에 다시 잠들기를 포기하고 사진들을 정리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항상 여행에서 복귀를 하면 나의 첫 번째 숙제는 사진을 정리하는 것. 과거 앨범을 들여다보며 '사진은 기억보다 강하다'는 말의 본질을 이해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남기고 싶은 순간을 만나면 꼭 셔터를 누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항상 카메라 용량이 한계에 다다르곤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한 달 새 600장이 늘어나 있었다.
잘 나온 사진을 추리고 그중에 몇 장은 다시 보정하기를 반복하다가, 문득 아직은 이 몇 장의 사진보단 내 기억이 더 선명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한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영원히 붙잡는 것이다.”는 브뤼송의 유명한 말이 있다. 사진을 찍는 것도, 그것을 정리하면서 추억하는 것도 어쩌면 포착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함이 아니라 스치듯 지나가버린 찰나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닐까.
그렇다면 찰나가 되어버린 순간에 여전히 짙게 남아있는 것, 사진에 없지만 나의 기억엔 아직 남아 있는 것, 그것보다 사진이 선명해지기 전에 여기에 남기고 싶어졌다.
산타마을, 핀란드 로바니에미를 다녀오다.
출장지에서 차로 다섯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산타 마을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산타의 고향이 핀란드라니, 정부에서 지정한 공식 산타가 있다니. 심지어 그곳엔 산타 우체국, 산타 사무실, 루돌프 목장 등... 나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콘셉트(?)의 마을이었다.
(참고로 산타의 원 모델인 성 니콜라오의 고향은 튀르키예라고 한다.)
명성에 비해 마을이 크진 않았다. 도보로 반나절 정도면 구경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다만 여기저기에 귀엽게 즐길만한 관광 상품들이 있었는데, 첫째로는 유튜브 라이브 카메라. 북극권의 경계역할을 하는 Arctic circle에 cctv 화질의 라이브 카메라가 있었다. 내 얼굴이 정확하게 나오진 않지만, 인증샷 정도는 남길만했다.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산타 사무실로 들어가면 두 번째 상품이 나온다. 바로 산타와의 오붓한 포토타임. 이 산타 마을의 메인이벤트라고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비용이 꽤나 비쌌다. 사진 인화는 5만 원 정도, 사진 원본 파일과 산타와 만나는 순간을 찍은 영상을 담은 usb는 10만 원 정도였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사람 숫자를 세고, 사진을 찍고 나오는 시간을 계산하며 산타의 시급을 유추하고 있을 때, 내 앞에 서있는 아이가 아버지에게 '올해 받을 선물을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이의 이야기를 못 들었는지 뭐라 했냐고 되물었다. 그도 아마 산타의 시급을 계산하고 있었으리라.
30분쯤 기다렸을까, 겨우 산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만나자마자 악수를 건넨 산타의 손은 두툼했고, 덩치가 굉장히 크셨다. 어린 시절 내가 그렸던 산타의 모습과 굉장히 비슷했다. 국적만 다른 채로.
어디에서 왔느냐, 얼마나 핀란드에 머무르느냐 정도의 간단한 질문들을 건네셨던 것 같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너무나 쉬웠지만, 내 감정은 많이 복잡했다. 그 순간에 내가 느끼는 긴장과 설렘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길에서 몰라본 채로 스쳐 지나간 오랜 친구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면 비슷한 기분일까. 반가움, 과거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망각에 대한 슬픔, 혹은 미안함, 그런 것들이 뒤섞여 복잡한 기분.
처음 그곳을 나왔을 땐, 그 뒤엉킨 감정이 불쾌함에 가까웠다. 산타 고용 잘했네, 얼굴이 살짝 붉은 것도 화장한 건가? 등의 가십을 동료들과 나눴다. 그 가십 안에는 동심을 이용해 돈을 번다는 것, 마을을 만들고, 산타를 고용하고, 비싼 돈을 받아 정부의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섞여있었다.
그렇게 조금은 찝찝한 마음으로 다음 장소, 산타 우체국으로 이동했다. 이름에서도 유추가 되듯이 이곳에서 보낸 편지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서 전 세계 어디든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우표 하나에 1.5유로, 엽서 한 장에 2.5유로, 역시나 쉽지 않은 가격에 조금은 소극적인 태도로 구경을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한 장 써야 하나 고민을 하며 가게 구석에 위치한 널찍한 테이블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60대로 보이는 노부부가 열심히 편지를 쓰고 계셨다. 책상 귀퉁이에는 엽서가 10장 넘게 쌓여있었다. 누구에게 그렇게 많이 편지를 쓰시냐 물었더니, 손녀 손자들, 그리고 당신의 자식들에게 보낼 거라고 하셨다.
아마도 노부부의 아들과 딸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일 것이다. 다 커서 20대 30대가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그녀는 무슨 말을 전할까. '메리 크리스마스! 나는 지금 25년 2월 핀란드에 있어. 올 한 해도 잘 지냈니? 언제나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와 같은 뻔하지만 애틋한 덕담이겠지. 그런 흐뭇한 상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 그녀는 usb를 편지 봉투에 함께 넣었다. 산타와 함께 찍은 사진이냐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셨다.
"우리 아들은 무려 12살까지 산타를 믿었어요. 보면 좋아할 거 같아서 함께 보냅니다. 세상에나 진짜 산타가 있었어!라고 적었어요. 오늘 산타를 만났다고요."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산타의 미소가 겹쳐 보였다.
"아들이 정말 좋아할 겁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녀와 인사하고 나는 진열대로 가서 마음에 드는 엽서를 몇 장 집었다. 이젠 아홉 살, 조카의 나이는 벌써 내가 산타를 믿지 않기 시작했던 그때의 나이가 되었다. 불과 두 달 전 산타에게 기도하며 눈을 질끈 감던 아이에게, 열 달 뒤 어쩌면 엄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달라고 보챌 아이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편지의 첫 문장을 한참 고민하다가 노부부가 떠올라서 이렇게 적었다.
'삼촌이 오늘 산타를 만났어. 함께 사진도 찍었단다.'
산타는 존재한다. 내 조카는, 나보다 조금은 더 오래 그 사실을 믿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