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가는 날이라 부랴부랴 매트와 운동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길거리에 부는 바람에 봄기운이 많이 빠졌다 싶었다. 습기도 슬슬 올라오고 후끈한 느낌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고작 몇 분 걸었을 뿐인데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좋다. 드디어 여름이 오는구나. 자타공인 여름맨인 나는 길고 지난 했던 겨울을 버티고 버텨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아 이제 부터 나의 계절이 왔다. 기다려라 바다야. 기다려라 더위야.
매해 이 맘때 쯤 처럼 마음 속 밑바닥부터 행복이 차오르기를, 삶의 지리멸렬함 정도는 쨍한 여름 햇볕에 탁 털고 일어나기를 기다렸지만 마음의 어떠한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왜 안 기쁘지. 왜 하나도 안 설레지. 그 춥고 긴 겨울을 견디기 위해서 여름에 찍었던 영상을 수 십번이나 돌려 봤던 나인데. 여름 휴가는 어디로 갈지 뭐하고 놀지를 고민하며 겨울을 버티던 나였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내 마음 속에는 행복을 담을 그릇 조차 없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행복한 것도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내일도 모레도 다음주도 다음달도 오늘의 내가 똑같이 지낼 거라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똑같은 삶의 반복, 단조로운 삶을 부정한다거나 벗어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조롭지만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부하고 경쟁했는데. 나는 내가 하는 일도 좋아하고 지금의 안락함도 마음에 드는데 왜, 더 이상 앞으로의 즐거운 미래가 그려지지 않은걸까.
요가를 하는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다. 동작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온통 신경이 다른 곳에 가 있으니 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저 온통 머릿속에는 지금 상황에 대한 원인을 찾고 있을 뿐이었다.
“연애를 안 한지 오래되어서 그런걸까? 아님 연애 보단 결혼을 하지 않아서? 열심히 하던 주식이 물려서? 남들은 승진을 위해 노력한다는데 나는 회사에서 하루 버티고 지내는게 전부라서? 내 친구가 집샀는데 나는 여전히 작은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어서? 도대체 이유가 뭘까?”
불행의 근본을 찾기 위한 여정은 시작되었지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게 이유였으면서도 동시에 그 어떤것도 정확한 이유라고 할 순 없었다. 모든 것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맞았지만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결혼을 해서 토끼 같은 자식이 있다고 한들, 물렸던 주식이 약전을 했다고 한들, 어찌되었든 조상신이 도와 저런 것들이 해결된다고 한들 나에게 그리 행복한 여름이 다시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행복한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을 때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었는데 불행한 이유를 생각하니 기다려따는 듯이 생각이 쏟아져 내린다는 것이 조금 무서웠다. 언제부터였던걸까. 두려움을 늘 끼고 살아가는 버릇이 되어버린게.
마음이 고장났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동시에 나의 여름을 찾아야만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고장나버린 마음을 고쳐야만 했다. 여름의 행복마저 잃는다면 나는 뭔가 사는 것에 대한 재미를 모두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다시 노트북 앞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껏 내가 여름이면 신이 나서 써 내려간 글들을 하나 둘 씩 모았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이 글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