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쓸모

by 박모범

잠깐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 일을 할 때 였다. 동네에 젊은 남자라곤 사장님과 나 단 둘 뿐이었기에 마을에 힘쓸일이 있으면 간혹 불려갈 일들이 있었다. 보통은 사장님 혼자 가곤 했는데 그 날은 일손이 좀 많이 모자랐는지 나까지 따라 가야만 했다. 무너진 돌담을 보수하는 일이었는데 기술자분께서 오시기 전에 쓰러진 돌을 다른 곳으로 나르고 길을 내는 작업을 해야했다. 할머님들은 우리를 격하게 반기셨고 마실것부터 해서 간식까지, 거기다가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는 조금 과분하다 싶을 정도의 용돈을 챙겨주셨었다.



평생 도시에서만 자라서 시골집을 몇 번 본적도 없는 사람이 제주도에 와서 돌담을 수리하는걸 도와주고 있다니 생경하고 우스웠다. “언제 제가 이런걸 해보겠어요” 나의 너털웃음에 사장님은 “뭐라도 배워두면 좋아. 나중에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곳에서 그게 쓰인다니까. 그리고 지금은 내가 배우고 있는게 전부인것 같지만 나중에 그거 아니고 전혀 다른 걸 써먹고 살 수도 있어. 나 봐. 항해하는거 배우고 그 긴시간을 배타다가 이렇게 제주도에 와서 살 줄 누가 알았겠냐. 너도 뭐라도 배우고 그래. 누가 아냐 돌 쌓는걸로 먹고 살지.” 라고 말하시며 멋쩍게 웃으셨다.



항상 과묵함을 유지하고 어떤 종류의 조언 보다는 항상 고개를 끄덕여주시는 편이었던 사장님의 예상 못했던 이야기는 죄송하게도 듣고 금방 까먹어버렸다. 뭘 배우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었고 특히 제주도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면 이내 늦은 군입대를 했어야 했기에 그런 종류의 유익함은 금방 휘발될 수 밖에 없었다.



사장님의 이야기에 무릎을 치며 ‘아 진짜네’ 했던건 군입대를 하고 자대를 정할 때 였다.



나는 공군 병사로 입대 했었는데 그때 당시만 해도 자신의 병사 특기를 시험을 통해서 배정받는 시스템이었다. 훈련소에서의 실기 성적과 필수 군사 지식을 바탕으로 한 필기 점수를 합산하여 높은 점수 순서부터 자신이 원하는 특기에 지원할 수 있었는데 좀 편하다고 소문난 특기에 가기 위해서 모든 훈련병들은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하고 활동에 참여했다.



남들보다 족히 5~6년은 늦게 입대했기에 나는 훈련기간 동안 진짜로 열심히 해서 특기라도 좋은걸 받아야 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어떤 실기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고 죽기 살기로 뛰고 또 뛰었다. 운동과 체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이건 생존과 관련된 문제 (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 할 필요도 없었는데; ) 라고 스스로를 최면 걸며 이 악물고 버텼고 결론적으로 실기 점수는 꽤 높은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은 필기 시험이었다. 이럴수가. 나름 머리 쓰는건 자신 있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점수가 아주 형편없었다. 실기시험으로 아무리 만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보나마나 가장 힘든 특기로 배정될 것이 뻔했다. 이럴거면 그냥 실기도 망쳐버릴껄. 미쳤다고 구보도 끝까지 뛰고 유격 훈련도 끝까지 받은걸까.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 왔었다. 어쩌지. 내 군생활 진짜 큰일났구나.



절망에 빠져 있을 무렵. 옆에 있는 동생이 내가 너무 슬퍼하고 있는게 안쓰러웠는지 조심스럽게 팁 하나를 알려줬다. “형 혹시 컴퓨터 자격증 가지고 있는거 없어요? 정보처리기능사랑 기타 몇 개만 있었도 정보통신특기로 빠질 수 있는데 형이 지금 가야 하는 부대 보다는 여기가 훨씬 편할거에요. 저도 시험은 엉망이지만 자격증이 많아서 그쪽으로 빠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요?”



컴퓨터 자격증. 그때로부터 부터 10년도 전에 한참 it 버블이 가득 끼었을 때 프로그래머의 꿈을 안고 몇 년 열심히 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전공도 프로그래밍으로 할까 할정도로 고민했었지만 내 성향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쿨하게 포기 했었는데... 그때 따 뒀던 자격증이 십년후의 나를 구하는 유일한 희망처럼 다가왔다. 나는 다행스럽게 자격증 보유자로 분류되어 최악이라 일컬어지던 몇 가지 특기를 피한 뒤 정보 통신 특기를 받았고 꽤 수월한 자대에 배치될 수 있었다.



나를 군대로 부터 구원해준 배움의 쓸모에 대한 믿음은 그 이후로도 꽤 유효한 삶의 지침처럼 느껴졌다. 예를 들어 대학교때 적응못해서 도망치듯 다녔던 대안학교 생활이 취업 면접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을 때 라던가 스스로 예민한 기질이 너무 힘들어서 배우기 시작한 비폭력 대화의 습관 덕분에 나의 연인에게 이성적 호감을 살 수 있었던 일 같은 것을 겪을 때면 역시 배워두면 나쁠게 없어! 라고 생각이 들기 충분했었다.



그러나 배움이 언젠간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것만으로 모든 종류의 불안을 잠재우는건 조금 역부족이었나보다. 즐거움으로 배우고는 있지만 너무나 무용하여 안타까운 나의 최애 취미인 글쓰기와 독서를 마주할 때면 나는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 돈이라던가 혹은 돈을 될 수 있는 밑바탕을 다지는 것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영역이기에 나는 글을 쓰거나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을때면 내가 지금 시간 낭비 혹은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이곤 한다. 진짜 모둠 배움은 쓸모가 있는걸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상상의 세계를 읽는 것이, 누군가가 잘 여며놓은 삶의 한 면을 읽는 것이, 사회를 날카롭게 베어 놓은 단면을 읽는 것이 혹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출발하여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문장과 단락을 쓰는 것이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나가서 전단지라도 한 장 더 돌리는 것이 삶이 더 유익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밀려온다. 지금은 꿰어 놓지 못하는, 아니 꿸 수 있는 방법 조차 가늠이 안되는 이러한 파편들이 어떤 쓸모가 되어 미래에 나타날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쓸모라는 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일때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이라면 나의 글쓰기와 독서는 돈이 되어야만 한다. 월급은 언제 올랐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슈퍼마켓에 단호박은 벌써 4000원이 넘어 버렸고 월급이 얼마나 오를지 기약이 없는데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서는 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조금 더 나은 생존을 위해 노력해야할 때 한가롭게 글쓰기를 배우고 연마하고 있는 나를 보면 자주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글쓰기와 독서의 현실적 쓸모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인터넷에 유행했던 말로 하면 ‘덕업일체’ 같은 의미로 말이다. 나의 즐거움을 어떻게 하면 다른 재화도 바꿀 수 있을까. 책을 덮고 내가 갈 수 있는 방향을 두리번 거리고 있다. 배움은 배움을 벗어난 공간에 있을 때 유용해질 때가 많았으니 말이다. 찾을 수 있을까. 확신은 없다. 다만 이러한 과정을 실패함으로 인해 또 어떠한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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