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우리는 보통 데이트할 때 대중 교통 보다는 자차를 이용해서 만났다. 지하철이 없는 곳에 내가 살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자주 만나기 어려우니 막차 시간이나 기타 제약으로 부터 자유롭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 날은 근데 왜 둘 다 지하철을 타고 만났던 걸까.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하게 기억나는건 처음으로 각자가 타야하는 지하철 플랫폼 중간 즈음에서 그녀가 나에게 한말이었다.
아 그럼 여기서 우린 헤어지면 되겠다!
사실 나는 당연히 여자친구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 모습을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상대의 플랫폼까지 데려다 주는게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기꺼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당신을 위해서 사용하겠다는 의미였기도 했다. 마음같아서는 집까지 데려다주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것을 생각했을 때는 여기까지는 충분히 해줄 수 있는 문제였다. 조금 더 오바를 하자면 다시 그녀가 나를 데려다주고 내가 그녀를 다시 데려다주는 사랑의 트레드밀을 몇 번이나 걸을 각오까지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달랐다. 굳이 왜 왔다갔다해야해?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우리 에너지가 허락하는한 충분히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당신을 더 피곤하게 만들고 싶진 않아. 각자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내일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휴식하는게 훨씬더 의미있는 일이라구. 당신이 나를 위해 희생해주려는 고마운 마음만 받을테니 얼른 지하철 타러 가.
나는 조금은 당황한 마음을 느꼈지만 반박할 수 없는 논리 앞에 뒤돌아 설 수 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지하철안에서 처음 겪는 오늘의 사태를 돌이켜 봤다. 사랑과 효율이란 말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명사들이었나? 고등학교 때 누군가가 사랑의 본질을 미분과 적분에 비유해 설명해준적이 있었다. 함수를 적분한다음에 미분하면 원래랑 똑같은 함수가 되겠지만 그 사이에 생기는 미분상수가 어쩌면 사랑이 의미 아니겠냐고. 굳이 할 필요 없지만 에너지를 쏟는 일. 나에겐 사랑은 그런거였는데.
내가 맞다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고 그녀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따. 그저 그녀의 세상에서의 당연한 것과 나의 세상에서 당연한 것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발점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 사이에는 ‘굳이?’ 와 ‘당연히!’가 격렬하게 부딪히는 순간들이 꽤 많이 일어났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었다. 나에게 여행이란 것은 즉흥과 동의어였다. 내가 그 도시에 잘 곳, 반드시 봐야할 곳 혹은 반드시 먹어야 할 것 몇 가지 정도만 말뚝을 박아놓고 떠나는 것이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은 어차피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 아니라고 믿기에 우연성에 몸을 맡긴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속상한 것은 없었다. 원하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종류의 어떤 것을 ( 영 안되면 나중에 웃으면서 ‘야 그때 우리 못했던거 알지?’ 라고 안주 삼을 수 있는 에피소드라도 ) 얻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부류였다. 그러므로 굳이 계획을 꼼꼼하게 짜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여행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이 분명했고 똑소리 났다. 여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 우연성과 즉흥성보다는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을 살뜰하게 챙겼다. 내가 사는 고장에서는 먹기 어려운 음식들과 우와 이런 장소가 있단 말이야? 하는 가게들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나 같은 사람들은 여행 갔을 때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엄청 많다면 그녀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해서 훨씬 여행이 알차게 진행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계획이란 반드시 꼼꼼하게 짜야 하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고는 하지만 복수로 인정하기엔 너무 양극에 서 있는 답안지를 가진 셈이었다. 우리의 세계 간극은 꽤 넓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게 된걸까. 옛 가수의 말처럼 반대가 끌리는 이유 같은 걸까. 하지만 이유를 찾는 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너무 많이 빠져버렸으니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같은 연인은 세상엔 너무나 많았다. 그들이 제시한 방법은 서로를 오답이 아닌 또 다른 정답으로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성향을 mbti를 이용해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Infp인 나와 esfj인 연인. 각자 유형의 특징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닌 그저 다른 성향일 뿐임을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우리의 다른 성향이 오히려 더 운명같다고 생각했다. 검정치마의 노래처럼 내가 모자란만큼 너는 조금 모난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그리고 가장 도움이 되었던 방법은 우리 사랑에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결국 너와 내가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이 관계의 가장 핵심이자 본질이다. 당신의 굳이와 나의 반드시 정도의 차이는 비본질이기에 그것마저 신경쓸 수 없는 법이다. 나와 당신의 다른점을 ‘굳이’ 지적하고 고치려 하는 태도 자체가 성숙하지 못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사랑에서도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이라면 어느정도의 차이는 흐린눈하고 넘어가는 유도리가 필요한 셈이다.
이러한 서로의 노력이 늘 유효했다고는 할 수는 없다. 아주 자주 너와 나의 차이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처음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러한 간극을 ‘굳이..?’ 라는 말로 보려 하지 않는다는 거다. 저 친구는 이런 사람이지. 아 그럴수도 있겠다.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어떠한 사랑은 적분 상수 같은 모양을 가지기도 하지만 오늘 나의 사랑은 타인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함을 주저하지 않는 것, 그 노력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