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 들었던 생각은 ‘특이한 냄새가 난다’ 였다. 지금까지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 향기라고 말하기에는 불쾌한 구석이 있었다. 공항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 그 냄새는 더 진해졌다. 텁텁한 공기 속에 아주 진하게 알싸한 냄새가 배어있었다. 주변을 구경할 틈도 없이 너무 진한 냄새가 어지러워 벤치에 앉아 쉴 수 밖에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얼마나 기다렸던 여행이었는데. 비행기에서 딱 내리면 바르셀로나의 야경에 압도당한다거나 이국적인 문자에 혼란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겨우 특이한 냄새에 곤욕을 치르는게 전부라니 믿을 수 없었다.
이 여행은 절대로 별로여서는 안되었다. 왜냐하면 준비만 몇 달이 걸렸으며 유럽 땅을 밟아보고 싶다 마음을 품은것 까지 합친다면 몇 년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을 꿈꾼건 학생 때가 아니었다. 어렸을 때 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 관심이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대학생활 할 때는 이미 유럽 배낭여행이 보편화가 되긴 했지만 그때도 딱히 유럽에 대한 동경은 없었다.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형편에 유럽 여행이라니 언감생심이었다. 물론 돈을 악착같이 모았으면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는 편을 선택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주 작은 망설임도 하지 않았다. 삶과 정신을 살 찌우는 일은 늘 현실을 살 찌우는 일 뒷편에 서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유럽 땅을 꼭 밟고야 말겠다 다짐한건 아이러니하게 모두가 직장 생활로 인해 유럽 여행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였다. 현실에 치이고 건조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때 자신이 보낸 유럽의 시간들을, 그것이 배낭여행이 되었든 유학이 되었든, 아름답게 기억하고 회상하는 직장 동료와 친구들을 보며 나는 묘한 소외감이 들었다. 특히 그 당시 만나던 연인은 꽤 오랜시간 독일에서 유학을 했었는데 그녀의 입을 통해 듣는 유럽 생활이라는건 내가 절대로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류의 것이었다. 4월의 베를린이 얼마나 활기찬지, 이탈리아의 관광지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이야기 할 때 마다 그녀는 지금의 현실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멋지다 생각했고 나중에는 부러웠으며 결국에는 열등감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행복의 조각을 쥐고 사는 사람 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노력의 부족이 아니라 타고난 가난으로 인해 생겼다는 사실이 나를 그녀 앞에서 더 작고 주눅들게 만들었다.
자격지심으로 인해 가진 유럽에 대한 동경은 운이 좋게도 남들보다 길게 휴가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얻었기에 멀지 않은 미래에 실현할 수 있었다. 사실 나의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유럽에 가는건 조금 무리였지만 강행하고 싶었다. 남들 다 경험한 것만 같은 세계여행이라는 미션을 깨고 싶었다. 남들만큼 경험하고 행복하고 싶었다. 짠돌이처럼 한 푼 두푼 어렵게 모은 적금을 그따위 열등감때문에 깬다는게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떤류의 열등감은 그걸 가지지 않고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으니 말이다.
나는 애써 떨어진 기분을 일으켜 세우며 반나절을 비행기를 타서 거의 초죽음 상태인 육체를 버스정류장으로 질질 끌고 갔다. 반드시 이 여행은 반드시 좋아야만 했다. 1년 중 가장 붐빈다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바르셀로나가 이렇게 별 볼일 없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남은 힘을 짜내 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호텔로 이동하는데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꾸욱 참았다. 이 여행은 반드시 좋아야만 하는데 왜 별 볼일 없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주변에 이국적인 간판들과 불빛들을 보며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다음날부터 시작된 바르셀로나 여행은 내 인생에 가장 많이 걸어다닌 여행이었다. 일주일 여행 기간동안 하루에 평균 4만보씩 걸어다녔다. 유명하다는 관광지는 다 돌아봤는데 평소에 관심도 없던 건축물을 하루에 몇 개씩 봤다. 가우디라는 사람도 교과서에서 이름을 들어봤을 뿐이었는데, 여기와서는 꼭 보지 않으면 안 되는것 마냥 구경을 했다. 성 파밀리아 성당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 아 이런게 신성한 느낌이구나 ‘ 라는 기분을 받았지만 나머지는 그냥 그랬다. 사실 나는 우리집 앞에 어떤 건물이 있는지도 잘 모르고 살 정도로 건축물에 관심이 없는 편인데 거길 간다고 갑자기 건축물이 좋아질리 만무했는데 뭘 기대했던걸까. 그래도 열심히 돌아다녔다. 내가 그리도 원했던 유럽의 한복판에 서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혼자 지내는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완전히 혼자인 상태에서 일주일간 관광만 한다는건 참으로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1인분의 음식에는 늘 한계가 있었으며 나의 감정과 상태를 누군가가와 나누지 못한다는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일기를 쓰고 글을 남기는 것은 늘 만족되지 않은 행위었다. 나중에 갔을 때는 작은 음식점에서 만난 옆 노인들에게 까지 말을 거는 상황까지 다다랐다. 외로움이 사무친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나는 숙제를 풀어야 하는 소년과 같은 마음으로 일주일을 지내고 바르셀로나를 떠나오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 아 정말 이 도시 떠나고 싶다. “
한국으로 돌아온 후 바르셀로나 여행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정말 바르셀로나 별로야”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지루한 관광지가 가득한 도시이며 찌릿한 냄새가 늘 둥둥 떠 다니는 도시라며 이야기 해줬다. 그럴 때 마다 사람들은 그럴리없다고, 그 도시가 얼마나 미식이 가득하며 매력적인 도시인지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려 했지만 나는 듣지않았다. 바르셀로나는 나에게 실망의 다른 이름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유럽의 환상을 품은 사람들을 다소 냉소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보니 별거 없는데 괜히 있어보이려고 좋아한다며 말이다.
그러다 얼마전 사진첩을 정리하다 바르셀로나 사진을 보고 있는데 정말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도시가 그립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속에서 억지로 웃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 스럽긴 했지만 그때의 분위기와 감정들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아 여기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내가 낯설었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여기 다시는 안가! 라고 다짐할만큼 완전히 별로인 여행은 분명 아니었다.
관광책자에서 꼭 가봐야할 바르셀로나 명소들을 대부분 둘러보았고 유명한 맛집에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몇 군데 관광지는 줄을 서서 사진을 찍을 만큼 아름다웠고 유명한 맛집은 놀라울 것 까진 없었지만 여기 왔으니 줄서서 먹을 정도의 가치는 분명 있었다. 같은 숙소를 묵는 사람들이랑 술도 먹었고 길가다가 만난 여행객이라 커피도 같이 마셨다. 뭐 별로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였지만 완전히 낯선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한다는 설렘이 있었다.
길거리를 걷다가 예뻐 보이는 옷 가게에 가서 가방을 사기도 했는데 거기서 만난 사장님이 너무 멋있어서 사진도 찍었다. 사장님은 내가 입은 옷이 멋지다고 칭찬을 해줬는데 나는 조금 부끄러운 마음에 비싸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다. 분명 멋지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왜 비싸지 않다고 이야기 한 걸까. 아름다운것과 비싼것을 나는 자주 혼동하곤 한다. 저녁에 할 일이 없을 땐 동네에서 바게트 하나를 사서 귀퉁이를 뜯어먹으며 와인을 먹기도 했으며 조금 비싼 재즈 공연도 봤다. 우리 나라로 치면 5일장이 열리는 곳에 가서 구경을 하며 담배를 피고 있는데 게이아저씨가 자기 집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들이대기도 했다. 세상 살면서 첫번째 받은 헌팅인데 아쉽게도 거절해야 한다는게 우스웠다.
무엇인가를 느껴야 한다는 강박감이 이런 사소한 즐거움을 즐길 수 없게 만든 셈이다. 내가 이런 사소한 즐거움을 즐기려고 여기 온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끊임없이 가로 막았다. 태어나서 처음 여행하는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이곳 저곳을 꽤 많이 여행해서 “여행은 살아보는거야”라는 광고의 캐치프라이즈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는데 무엇인가가 있을거라는 믿음 앞에서는 그런 일상의 기쁨 같은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바르셀로나를 그리워하는 내 모습을 보며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루하루를 매일 퇴근을 기다리며 괴로워 하는게 꼭 가우디를 전전하던 내 뒷모습과 조금 닮아 있는 것 같아서, 무엇인가 이뤄야 하는게 있다는 믿음으로 나아가던 그 날과 지금이 조금 닮아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괴로운 마음이 모든걸 망쳐버린 그때의 여행처럼 내가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는게 아닐가 하는 조바심도 들었다.그때 내가 그냥 흘려보냈던 음식점과 카페와 재즈공연과 옷가게 사장님과 게이아저씨의 플러팅처럼 재밌고 유쾌한 일을 아무것도 아닌것 마냥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영화 <소울>의 대사처럼 인생에 목적이라는건 없고 그저 즐거운 순간들을 기억하는것이 의미일 뿐인데 그걸 자주 까먹고야 만다. 이걸 까먹으면 점점 매력없는 사람이 되는걸 아는데도 쉽지않다. 바르셀로나를 별로라고 말하는 할아버지는 그래도 귀엽기라도 한데 삶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할아버지는 영 매력없을 일인데 말이다. 후자가 될빠에는 “ 야 의외로 대단한건 아무것도 없어 “ 라고 말하며 아무거나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