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비가 오는 여름날이었다. 오래 준비한 이별이라 담담하게 헤어질줄 알았는데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까지 엉엉 울었다. 장례식장이 근처에 있는 카페였는데 상황만 보고 있으면 급작스러운 가족상을 당한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뭐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대의 절반을 함께한 그 사람을 나는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가족보다도 더 특별한 관계였다. 나의 가장 찬란한 순간에도 가장 참혹한 순간에도 항상 그 사람이 옆에 있었으니 말이다. 이별과 죽음의 차이가 무엇일까.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자면 두 개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그 순간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사람과 진배 없었을 것이다.
수백만가지 이유로 당신이 좋았는데, 아직도 수백가지 이유로 당신이 좋은데, 고작 2~3가지 이유로 인해 헤어진다는 것이 우스웠다. 우리는 정말로 특별한 연인인 것 만 같았는데. 만나서 밥먹고 영화보고 차 마시며 헤어지는 그저 그런 연인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 자체를 알아보는 그래서 절대로 헤어질 수 없는 소울메이트라 믿고 만나왔는데, 사실은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현실적인 이유로 헤어지는 삼류 연애 소설의 서브 주인공 정도일 뿐이었다. 우리의 인연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던 학창시절 언니네 이발관의 '산들산들'을 싸이월드 BGM으로 해두었다는 것도 이터널 선샤인을 너무 좋아해서 몇 번을 돌려 보았다는 것도 사실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하나 없는 힙쟁이들이 모인다는 카페에 앉으면 그딴 취향의 사람을 한 트럭 만날 수 있었는데 왜 그 따위것들을 보며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연인이라고 믿었던 걸까.